한국희곡

윤대성 '출발'

clint 2017. 12. 8. 11:41

 

 

 

 

윤대성의 데뷔작. 한국 단막희곡 중 최고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윤대성의 '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단막이면서 치밀한 구성이며 깊이가 길잡이가 될 정도로 잘 쓰여진 작품이라 하겠다. 꿈으로 대변되는 사내와 현실인 역원과의 오래된 간이역 대합실에서의 만남과 대화는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났다가 돌아온 사내보다 그 꿈을 질투하여 대신 짐을 떠넘기고 홀가분하게 열차에 뛰어드는 역원이 더 동정을 받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기차가 서지 않는 작은 역, 한 남자와 기차역원의 대화. 둘의 대화 속에서 이 남자가 잊지 못하고 찾아온 여자 마리아가 결국은 이 기차역원과 강제로 결혼하게 되었으며, 이후 기차역원에 의해서 갓난 아이와 함께 죽임당했다는 사실이 서서히 밝혀진다. 결국 다시 돌아올 것이면서 왜 그 때 그 여자를 떠났나며 원망아닌 원망을 하는 기차역원. 그 여자를 따라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이 역에서 기차를 탈 것이라는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므로 여기에서 기차를 탄다는 것은 기차길에서 기차에 치여 죽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가 기차길에 들어서는 것을 막는 기차역원. 하지만 역원은 자신의 부인과 이 남자가 죽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가 기차길에 들어서는 것을 막고 자신이 기차길에 들어선다. 기차길에 들어서 죽음을 맞기 전 역원은 그에게 봉투 안에 든 그녀의 뼛가루를 내민다. 그녀가 그를 사랑한 이유는 그에게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철 2호선 순환선 같은 인생이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언가 이 모든 것을 초월한 꿈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고 그녀는 그와 그의 신념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출발점으로 돌아오고 만다는 역장의 허탈한 깨달음, 떠나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이 근거 있는 것처럼 제시되면서도 등장인물들이 작품의 마지막에 마치 죽음을 통해 그 순환의 초월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믿으려 하는 발버둥. 그리고 흩날리는 하얀 뼛가루.      

 

 

 

 

작가의 글
내가 이 작품을 쓴 시기는 은행원으로 근무하며 드라마센타 극작 워크숍에서 희곡을 공부하던 때다. 그때 나는 27세의 총각으로 한 여행원과 연애 중이었다. 그러나 난 결혼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작가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여자의 가족들로부터 압력이 가중되었다. 결국은 헤어지자는 통보가 왔다. 내가 결혼을 해서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은행원으로 남느냐 아니면 불확실한 미래만이 보이는 작가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런 기로에서 고민했다. 그 여자와 헤어지는 마지막 만남은 교외선을 타고 가다 창동근처의 어느 야산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도시로 변했으나 1965년에는 한적한 농촌 들판이었다. 돌아오는 길의 간이역은 한산했다. (이 작품의 무대가 된다.) 나의 현실, 나의 육체는 땅을 딛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정신은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꿈속을 헤메고 있었다. [출발]의 역원은 나의 육체를 대변하는 인물이며 사내는 나의 꿈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나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도 해서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꿈은 나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한번 출발한 사람(꿈을 갖는 사람)은 영원히 신기루를 쫓아야 한다. 그에게는 종점이란 없다. 예술가는 부단히 창조하는 속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갖는 사람이니까..... 만일 꿈을 갖고 출발한 사람이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그는 이 작품의 사나이처럼 꿈도 사랑도 잃어버린 패배자로 영원히 방황하게 될 것이다. 꿈을갖는다는 게 끔찍한 일임을 알게되고.... 역원처럼 현실을 선택한다면? 그는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꿈 없는 육체만을 소유한다면 과연 행복할 것인가? (이 작품에서의 신은 인간의 꿈을 상징한다.) 결국은 이상과 현실의 갈등, 괴리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이상주의자는 결국 죽음조차도 선택할 수가 없다. 현실에 발을 디딘 자가 죽음도 선택하고 사랑도 차지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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