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곽노흥 '침묵의 강'

clint 2026. 5. 29. 13:35

 

 

진영은 선천적 농아로 전혀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가련한 여인이다.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장애를 비관하게 되고 심한 우울증과 자기 컴플렉스에 의해 사회생활에 순응하지 못할 
정도의 중증의 정신 장애도 앓게 된다. 그러던중 성당에서 결혼대상자인 규철을 만난다. 
그는 같은 농아이지만 진영보다는 훨씬 정도가 양호하여 약간 들으며 말도 어눌하게 할 
수 있다. 진영은 일찌기 수녀 후원인으로 맞아 성당에 다녔는데 거기서 창환이란 신학생을 

만나 짝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 뿐 청각장애자로써

 자신의 입장을 서글퍼하던 중 규철이란 같은 장애인을 만나면서 새로운 생활을 찾으며, 

창환은 오히려 진영의 후원자가 된다. 그들은 후원자인 수녀와 창환의 도움으로 결혼을

하지만 2세의 출산을 앞에두고 심각한 대립을 하게 된다. 
진영은 자신이 농아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역시 농아가 분명할 것이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남편은 모든게 운명이니 낳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수녀와 창환은 천주교 교리에 의해 낙태는 살인이며 죄악임을 이유로 출산을 권고하며 
진영에게 용기를 심어준다. 심한 산고 끝에 출산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기쁨도 잠시  
아기는 자라나며 청각신경의 이상으로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부부는 실의에 빠지고 
매우 어려움을 당하는데 마침 규철도 농아란 이유만으로 다니던 직장에서 제일 먼저

감원대상이 되어 쫓겨나게 된다. 딸의 문제와 실직으로 이중고를 겪게 되자 매일 

술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심한 부부싸움으로 화풀이하게 된다. 

동네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는 그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슬픔이었다. 
어느 날 심한 부부싸움 끝에 동네 주민까지 합세하여 이들 부부를 공격한다. 진영은

차라리 낙태해서라도 딸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게 했어야 옳았다고 후회한다. 

그래서 딸을 죽인 어미를 죽여달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현실은 

냉정한 것이다. 자기가 낳은 딸을 살해한 죄는 누구도 용서받을 수 없는 엄청난 

죄악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태도 또한 냉정하기만 했다. 

규철 또한 아내의 살인을 이해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어미로서 자식을 죽여야만 

했던 심경을 정상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재판부에서는 

그녀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농아인 어미로 자신의 딸을 살해해야만 했던 비장한 

범죄동기를 그나마 참작하여 집행유예로 석방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자유를 주고 석방한다고 해서 딸을 죽인 어머니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란 의문을 남기고 막이 내린다. 

 

 

곽노흥 작 정운 연출로 극단 제3무대, 청음장애극단이 1996년 합동공연하였다.
1996년 서울연극제 특별공연 이후 백상예술대상과 동아연극상 등을 수상하며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우리 현실사회에 팽배한 극단적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 속에서 
장애자들의 존재는 과연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죽어서라도 소리쳐 불러보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적 이상심리의 
어머니 마음을 정상인들인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현실적 사회복지 문제가 이제 
어떻게 변환되어야 할런지, 이러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청각장애인(농아인)들의 애환과 삶의 제반문제들을 사건실화를 바탕으로 
사실성있게 간파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무관심과 방관으로 소외된 채 절망적 현실에 
부딪치고 있는 장애인들과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차별적 가치관의 병폐를 지적하여 
일반인의 관심을 유도해내고 적극적 사고전환의 계기를 부여하고 있다. 



작가의 글 - 작가 곽노흥
침묵의 강을 탈고하면서 만나기 시작한 농아극단단원들은 그 만남이 잦을수록 나에게 어떤 사명감 같은 묵시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정말 이들로 하여금 무대공연을 성공시킬 수 있겠나?"란 부정적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한여름 삼복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달리는 이들을 보며 점차 긍정적 확신으로 굳어졌다. 대사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수없이 반복해 소리치는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뒤돌아 눈시울을 붉힌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품을 탈고해 연습을 시작하며 수백 번의 수정작업을 해야 했다. 불편한 토씨 하나라도 그들을 위해 작가의 모든 걸 팽개치고 자르고 붙여가며 작품을 완성했던 것이다. 희곡작품과 드라마의 대본은 문학과 비문학의 장르적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들만 을 위한 대본화에 철저했다. 사실상 이 작품은 국내 어느 극단에서도 엄두를 낼 수 없 는 작품이다. 우선 배우선정에서부터 수화와 구화, 수화노래, 수화무용등을 완벽하게 소화해 낼 극단이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장애인들 중에 청각장애인들은 아예 장애인으로 조차 보아주질 않는다. 물론 외관상으로는 장애인으로 볼 수 없다.  그들은 정상인들과 똑같이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만큼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도 드물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 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본다면 남들에게 정상인으로 보이는 현실이 가혹하리 만큼 안 타까운 실정인 것이다. 시속 70킬로의 속도로 달려오는 자동차를 보고 불과 몇미터 앞 에서 피한다는 것은 그들의 운명을 천운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천 둥소리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연습실을 나서며 항상 불안한 것은 우리 단원들이 밤 늦게 연습을 끝내고 귀가해야 하는데서 오는 생활상의 문제 때문인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제작을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정운 선생님을 도우려 여름부터 가을까지 계속해서 협찬사를 구하기 위해 그럴듯한 기업체를 전전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결 과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장애인들과 함께 연극을?” 겉으로는 좋은일한다며 관심을 갖다가도 돌아서면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역겹게도 지금까지도 이명으로 들려오는 듯 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맨발로 뛰어서라도 이 작품을 만들자” 라고 이러한 우리 단원 들의 노력이 헛된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용기를 내라, 우리의 장한 청각장애 배우들이 여!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도 무대위에서 관객을 위해 연기하고 무용하며 목이 터져라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보여주리라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