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선비가 가마를 탄 기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기둥서방이라 보기에는 젊고
수줍은 기색마저 띈 선비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표정의 기생.
혜원의 이 그림에서 젊고 낭만적인 선비 수석과 나이 먹은 기생 해어수가 탄생한다.
수석은 극 초반 제대로 찌질한 서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치 해어수와 어떻게
한번 운우지정을 나눠볼까 골몰하는 듯한 모습의 수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깊은 사랑을 드러내며 해어수를 감동시킨다. 여기까진 좋다.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개 2마리가 흘레붙는 조금은 민망한 장면을 웃으며 보는 여인과 몸종이 있다.
여기서 남편 수석을 오래 동안 보지 못해 외로운 여인 서희와 몸종 달래가 탄생한다.
남편이 기생과 눈이 맞아 떠난 여인, 그것도 한창 욕망에 충실할 젊은 나이의 여인을
설명하는데 이만한 풍경이 있을까? 이 외에도 혜원의 걸작 ‘월하정인’, ‘월하밀회’ 등을
통해 서희와 희윤의 로맨스, 달래의 애절한 짝사랑이 탄생한다.
그림을 통해 탄생한 각 모티브는 결코 멀리 가지 않고, 자체적으로 완결된 형식을 취한다.
그럼에도 각 모티브 사이의 행간을 읽어내는 과정을 통해 관객은 극의 전체적 플롯이
완성된다. 흔히 문학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행간 읽기가 연극에서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6년간 서로 다른 곳에서 사랑을 키워가던 수석과 서희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 길과
인생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달래를 주인공으로 한 혜원의 ‘기다림’을 마지막으로
극은 끝난다.

여기 17폭의 그림이 있다. 우리의 시선은 그림을 향한다.
구불구불 이어진 선과 알록달록 칠해진 색이 망막에 닿고,
우리의 머리는 시각적 정보를 종합해 사람과 풍경의 형상을 읽어낸다.
그들이 입은 의복을 보고 조선시대라는 배경을 읽어내고,
그들의 행동을 해석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림 같은 시절>은 혜원(蕙園) 신윤복의 풍속화 17폭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시대극이다. 혜원의 그림이 실제로 어떤 일관된 플롯을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 정영훈의 대본과, 박상현의 연출은 특별한 비약 없이 그림에
딱 들어맞는 플롯을 만든다. 여기서 특별한 비약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상에 담긴 의미와 하등 관계가 없는 이야기를 풀어내며 소위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어휘로 면죄부를 얻는 것이 최근의 흐름 아니던가.
그에 반해 <그림 같은 시절>은 그림에 대한 해석에 제한을 가하며
그림이 정말 말하고 있음직한 이야기와 주제를 풀어낸다.

굳이 그의 춘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혜원의 그림에는 당시의 에로티시즘이 은밀하게- 은밀하다는 어휘만큼 에로틱한 어휘도 드물다-드러나 있다. 현대 관객에게 먹힐만한 주제를 찾는 극작가 혹은 연출가가 가장 선호할 예술가라 하겠다. 하지만 과거를 빌려 현재를 말한다는 기획 대부분은 작가의 자의식을 맘껏 드러내는 대신,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지우는 우를 범한다. 퓨전 사극이라는 신조어는 이러한 상황을 변명하기 위해 급조된 발명품이다. <그림 같은 시절>이 특별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나쁘게 말해 <그림 같은 시절>에서 드라마 <다모>, <주몽> 같은 현대적 감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달 밝은 밤, 서로를 원하면서도 계속해서 망설이는 서희와 희윤의 모습은 원나잇 스탠드를 말하는 현대 관객에게 낯설기 그지없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과거를 빌려 현재를 ‘제 멋대로’ 말하는 안일한 방식 대신, 과거를 충실히 재현하며 현대인도 공감할 만한 주제를 건드리는 길을 통해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라는 공감 대신 ‘그 시대에는 저런 사랑과 아픔이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이 가능해진다. 그 깨달음은 현재적 의미의 사랑에 대해 돌아보는 관객의 반성을 통해 사랑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재생산한다.

작가의 언어로 그림을 깨우다. - 작가 정영훈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을 유심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 당시 노중상봉과 기다림. 두 장면을 마지막으로 해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여러 그림들을 찾게 됐죠. 일부러 신윤복의 그림만 찾았던 건 아니었는데, 근대적인 의미에서 여성을 그리고 있는 건 신윤복 밖에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주요 인물들과 어렴풋한 이야기 얼개만 가지고 그림들을 찾았고. 결국 이런 방식으로 만들게 된 거에요. 사실 17점 중 두어 점은 혜원의 그림이 아니고 후대에 그려졌다는 얘기들도 있다고 하네요. 이렇게 그림들을 골라놓고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2002년에 연극원에서 하는 실험연극제에 출품할만한 얘기를 세 장면 정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했어요. 그래서 다른 장면보다 완결성울 가진 서희와 희윤. 달래의 얘기를 먼저 써서 실험연극제에 참여했고 전체 작품은 2003년쯤에 완성한 거죠. 작풍을 쓸 때는 사실, 각 그림처럼 이야기가 시작하면 좋겠다는 기대 정도만 가지고 있었어요. 물론 17개 그림의 세트를 모두 만들 수는 없으니, 무대에 영상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학교를 나와 처음으로 일반 관객들과 극장에서 만나니 사실 좀 얼떨떨해요. 이 작품이 2003년에 씌어졌으니 벌써 오랜 시간이 훌쩍 지나 무대화 된 건대요.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 손을 떠난 텍스트는 자기 나름의 운명을 가진다고 믿거든요. 그런대 이 작품은 유난히 험한 운명을 가졌던 것 같아요. 다행히도 박상현 선생님께서, 어떻게 보면 무모할 수도 있는 결정을 하셔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 무모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흔히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작품의 정지된 순간만을 감상하려 든다. 물론 조금 더 나아가서 이 작품은 이런 장면을 그린 거구나. 이 인물의 표정을 보니 이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라는 추측을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그림을 모아서 한 편의 이야기를 꾸여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희곡 <그림 같은 시절>은 남녀 사이의 은근한 정을 그려낸 조선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작품 17점을 모아 그 조각들의 여백을 채워 넣었다. 한 장 한 장 곱게 꿰어져 ‘말맛 나는' 희곡 한 편이 세상의 빛을 보았으니 작품을 보는 내내 마치 그 이야기들이 실제로 있어. 그들의 절절한 이야기 한 복판 어딘가에서 해원이 붓을 들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림 같은 시절>은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구성된 이야기기에 당연히 시각적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던지지만, 무엇보다 이 희곡의 진정한 백미는 '말'에 있다.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는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는 언어유회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그 맛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가공되지 않아 싱그럽고 담백하다. 연극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와 달라야만 하기에 무대 위에서만 유용한 언어. 개별성율 가진 언어들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작가 정영훈은 자신의 글쓰기도 그러한 과정 위에 있다고 얘기한다. 무엇보다도 인물의 이름을 정하는 일이 가장 쉽지 않았다며, 극 중 풍원이라는 이름이 본래는 풍헌이었으나 이는 조선시대 낮은 관직을 일컫는 호칭이었기에 고쳐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그는 못내 아쉬운 마음을 나타냈다. 여전히 처음 만들었던 이름에 대한 애정을 비추는 작가를 위해 본 희곡에서는 인물의 이름을 풍헌으로 고쳐 기재한다. 그리고 덧붙여. 아직은 어떤 작품을 쓰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신진 작가가. 조만간 그만큼의 에정을 가진 또 다른 인물을 만들어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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