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현정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

clint 2025. 12. 2. 09:58

 

 

대한민국 지방 소도시에 있는 시립정신병원 콜센터.
외주용역 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콜센터 상담원 두 명은
매일 100통이 넘는 정신과 환자와 보호자의 전화를 받아낸다.
8년 넘게 감정노동에 시달린 관리자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 직원은 서로 원활한 소통을 해내지 못한다.
둘뿐인 콜센터는 좁은 공간만큼이나, 바깥 세상보다 더 차갑고 황량하다.
환자들과의 통화 역시 종종 일그러진 채로 끝난다.
어느 날, 심각한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창조자'라는 인물이 약을 요구하며 전화를 걸어온다.
콜센터 상담원들과 중증 정신질환자.
세상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끼리,
힘겨운 상호작용을 감행하는 변주곡이 시작된다.



연극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함께 본다는 특성이 있다.

이를 의학계에서는 '사이코드라마' 처럼 치료 혹은 심리, 징후 등을

이해. 교정하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박현정 작가의 작품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 또한 '의학 연극'에 대한

섬세한 관심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주요 인물은 시립정신 병원 콜센터에 근무하는 직원 태랑과 창성이다.

환자와 가족은 전화기 너머로 나타난다. 총 5개의 장은 시간과 소리에 따른

공간 안 인물들의 모습을 제시하는 유사한 형식이다.

근무 전, 점심시간 이후, 퇴근 전 시간 속 태랑과 창성의 일상에는 51병동에

10분 뒤 입원을 알리는 방송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8년이 넘게 상담업무를 한 태랑은 신입사원인 창성에게 대화를 하지 않고

'벽을 세우면서 매뉴얼에 맞게 응답해야 불필요한 상황을 면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한다. 그와 달리 환자에겐 대화에 가깝게 동료에겐 차단하는 창성,

이 두 사람은 감정 노동자의 양면처럼 보인다.

 

 

 

창성은 일에 익숙해질수록 언어유창성 장애가 심해지고,

태랑은 그간 지켰던 원칙들이 허무할 정도로 상담자가 문제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상황에 익숙한 듯

혹은 무심한 듯 접근하는 상담사와 전화를 건 환자와 가족들을 보노라면

정상 기준이 무엇이며, 제대로 된 소통 혹은 상호작용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 조현병 환자에 대처하는 상담사의 미묘한 변화로

상황이 달라지는 끝부분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콜센터는 환자가 증상을 처음 이야기하는 곳이면서, 아무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모호해졌으며,

개인의 취향이 강조되는 시대이다. AI가 발달하고, 온라인 교류가 늘어나지만

여전히 인간은 상호영향을 받고 있다. 극본은 익숙하게 대처하던 콜센터 직원이

경찰신고 과정에서 매뉴얼의 허술한 면모를 경험하는 것으로 모순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텍스트는 환자, 가족, 의료진, 그 외에 그들이 마주하게 되는 제 3자적

시선들이 매뉴얼처럼 펼쳐지도록 잘 고안되어 있다.

무대 이전 상황의 섬세한 변주 과정을 잘 제시한 이 작품을 텍스트로 경험하며

또 다른 무대를 상상해보길 추천한다. 정명문(연극평론가) 

 


작, 연출의 글 - 박현정
조현병을 다르는 의학연극 대본을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정신병원 콜센터에 직접 취업헤 1년간 근무했습니다.
처음에는 환자의 언어와 증상에 집중했지만 
곧 환자뿐 아니라 그들을 응대하는 상담원들
그리고 단순한 문의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아프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연극은 정상/ 비정상 이라는 이분법보다는
서로에게 닿고자 하지만 끝내 어긋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말이 어긋나고, 상호작용은 실패하고 그 실패는 반복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실패와 아픔 속에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만이 감지할 수 있는 어떤 리듬이 있다고 믿고,
그 생각에 무대화하기를 희망했습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꼭두각시 인형극 '돌아온 박첨지'  (1) 2025.12.03
김나정 '해뜨기 70분 전  (1) 2025.12.03
장소현 '별따기'  (1) 2025.12.01
신성우 '남작부인'  (1) 2025.12.01
성준기 '도둑들의 바캉스'  (1) 2025.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