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

clint 2025. 11. 27. 15:53

 

 

콘트라베이스라는 거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한 남자.

자신의 연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무대 한가운데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는 일생을 꿈꿔도 주어지지 않을 초라한 삶을 살고 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어둡고 낮은 음을 내는 자신의 악기와 달리

화려한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지닌 아름다운 프리마돈나.

그러나 그는 여인에게 사랑을 알릴 방법이 없다.

그의 옆에는 백 명도 넘는 교향악단 동료들이 있고,

그 중 맨 뒷자리에 초라하게 앉아있는 사람이 그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우주를 품고 있지만 그 속을 다 드러내지 못해 애타는 ‘콘트라베이스’.

오히려 큰 덩치 속으로만 파고들어 낮은 소리를 내던 그가 어느 날 결심을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관객이 모인 자리에서 연주 도중 목이 터져라

그 여인의 이름 ‘사라!’를 부르겠다고.

자신의 존재와 사랑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그는 족하다.

외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행복인지도 모른다.

속으로 파고들다가 일생 썩은 가슴만 안고 사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는 연주회장을 출발하고 그의 결심대로 만인의 앞에서 그 여인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사고를 쳤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연극은 거기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배우 명계남 (94년도 공연)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이 작품을 1984년 스위스의 디오게네스 출판사를 통하여 발표하였으며, 이것은 그 이후 현재까지 독일어권 나라에서 가장 자주 무대에 공연되어지는 희곡으로,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비록 역할은 중요하나 아무도 그것을 선뜻 인정하여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느끼는 한 평범한 시민의 절망감과,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이 제도와 관습과 인식의 굴레에 얽매이며 살아가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저린다.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부추기면서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확인시켜 주는 배우의 힘겨운 몸짓은 차라리 따스한 위안을 안겨 준다. 작품 '콘트라베이스'에서는 모노드라마라는 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배우의 목소리를 높게, 아주 높게, 혹은 낮게, 아주 낮게 처리하여 독자의 정서적 흥분도(감정상태)를 조절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갖게 하는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배우 박상원 (2020년 공연)

 

쥐스킨트의 작품 '콘트라베이스'는 남성 모노드라마로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배우가 연극을 통해서, 그 악기가 갖고 있는 속성과 오케스트라에서의 신분적 위치를 바탕으로 한 평범한 소시민의 생존을 다룬 작품이라고 작가 자신은 소개하고 있다.
오케스트라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차지하는 미천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눈에 띄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외부에 인지시키기 위해선 미친 척 외쳐야 한다.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남으로써, 일상적이고 순조로웠던 흐름을 깨뜨림으로 해서 시선을 끌 수 있는 존재라는 건, 글쎄, 어떨까...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의 내력과 특성,오케스트라에서의 위치,연주자들의 어려움 등등 콘트라베이스에 관계된 거의 모든 것을 연주자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그러나,중요한 것은,그로 하여금 신세타령을 하게끔 한 것이 콘트라베이스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여가수라는 점이다. 그러나 작가는 관객에게 열린 결말을 내놓는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연주회장으로 떠나는 데서 다음의 대사를 하며막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제 가 보겠읍니다. 연주회장으로 가서 소리를 지르겠습니다. 그럴 용기만 있다면 말입니다.여러분께서는 내일 신문에서 그것에 대한 기사를 읽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파트리크 쥐스킨트

1949년 독일 암바흐에서 태어나, 뮌헨 대학과 엑 상 프로방스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시나리오와 단편들을 썼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그러다가 34세 되던 해 한 극단의 제의로 쓴 작품<콘트라베이스>가 성공을 거두면서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남성 모노드라마인 이 작품은 ‘희곡이자 문학작품으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런 관심 속에서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장편소설<향수>(1985)를 발표하였다. 냄새에 관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 그르누이가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기상천외의 이 소설은 30여 개 언어로 번역·소개되었고, 순식간에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그는 평생을 사랑과 죽음 앞에서 도망치는 별난 인물을 그린<좀머씨 이야기>(1991)를 발표하면서 또 한번 전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일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문학상 수상(구텐베르크 문학상, 투칸 문학상, F. A. Z 문학상 등)을 거부하며 은둔자로 살아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향수>,<비둘기>,<콘트라베이스>,<깊이에의 강요>,<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사랑을 생각하다>,<사랑의 추구와 발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