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막 4장으로 구성된 희극 <그런 일은 없어요>는
망명지의 어느 도시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러시아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건은 미국에 살고 있는 백만장자가 친척을 찾는다는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된다.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망명지 러시아인들은 서로 자신이 친척이라면서
다 함께 친척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백만장자가 허름한 거지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실망한다.
결국 이 거지꼴의 청년이 진짜 백만장자였음이 밝혀지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그러나 친척을 찾으러 왔던 백만장자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 친척이 아니라,
자신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준 고아 소녀 마릴카와 미국 행 비행기에 오른다.

테피의 이 작품은 1920년대 러시아 망명 극에 나타나는 희극의 주요 발전경향과 궤를 같이한다. 1917년 혁명 후 러시아를 떠나온 망명 작가들은 볼셰비키가 장악한 러시아를 고발하려 했지만, 망명지의 관객들은 비극이 아닌 희극을 보고 싶어 했다. 따라서 1920~1930년대 러시아 망명 문학에서는 희극 또는 희비극 장르가 발달했다. 이런 배경에서 다양한 상황을 주제로 한 희극이 창작되었는데 그 가운데 '도망'과 '가족관계'가 주요 주제로 다루어졌다.
테피의 희극 <그런 일은 없어요>에서 이 두 가지 주제를 찾아볼 수 있다. 도망자 신세인 망명지의 러시아인들은 이전의 신분, 위치, 상태, 확신들을 상실한 채, 심지어 이름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망명지에 서의 '삶'을 위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들을 '가족'으로 묶어주는 것은 백만장자의 방문 소식이다. 벼락부자 친척, 거대한 상속에 대한 갑작스런 소식은 도망자 신세인 망명자들의 삶을 바꾸어 줄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망명지 러시아인들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기대했던 상속은 취소되면서, 도망자들은 다시 예전 가난한 삶으로 돌아간다.
주인공 아담과 고아 소녀 마릴카의 순수한 사랑은 작품에 멜로드라마 요소를 더하면서 작품을 해피엔드로 끝맺는다. 테피 특유의 유머가 빛나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속물적인 망명지 러시아인들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더 주목할 점은 테피가 그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따뜻한 시선과 공감으로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은 파리의 '러시아 극장'을 위해 특별히 창작되었고, 1939년 봄, 시대를 앞선 천재적 연출가로 오늘날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에 의해 초연되었다.

테피는 1901년 페테르부르크의 잡지 <북방>에서 시인으로 데뷔한 후 유머러스한 풍자 저널리즘의 한 장르인 펠리에톤과 단편, 희곡, 수필, 번역 등 저널리즘과 문학의 경계를 오가며 러시아 문학사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인기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19년 프랑스로 망명한 뒤 테피는 러시아 국내외에서 독자 및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무엇보다 테피가 여성이자 망명 작가였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다. 다행히도 1990년대 이후 그녀의 작품들이 러시아에서 출간되기 시작하면서 오랜 시간 잊혔던 테피가 다시 러시아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유머 단편들이다. 극작가로서 테피는 여전히 독자들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테피의 극작품은 20세기 초 러시아의 대도시 극장들과 망명지 러시아 극장의 인기 레퍼토리였다.
그녀의 첫 희곡은 1907년 창작되어 그해 페테르부르크 '말르이 극장'에서 상연된 단막극 <여성 문제>다. 그뿐 아니라 테피는 1908년에는 페테르부르크의 카바레극장이자 러시아최초의 미니어처 극장인 '휘어진 거울'의 창단회원 중 한 명으로서 새로운 연극형식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테피의 희곡은 대부분 단막극이었고 모두 카바레와 미니어처 극장 상연을 위해 창작된 것이었다. 잠시 20세기 초 러시아 카바레와 미니어처 극장에 대해 소개하기로 한다. 테피의 희곡이 이러한 유형의 극장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카바레는 20세기초 유럽에서 젊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창조적 실험의 무대이자 세기 말 세기 초의 사회, 정치, 도덕, 문화를 비판하는 풍자 무대였다. 유럽의 카바레가 러시아로 유입된 것은 1908년의 일로 이때는 이미 유럽 카바레의 인기가 정점을 찍고 하향 곡선을 그려 가고 있던 때다.
1908년 러시아 전역에서 소규모 극장이 문을 열었다. 1912년에는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만 약 120여 개의 카바레와 미니어처 극장이 동시에 개관되었을 정도로 새로운 형태의 극장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조우하면서 1918년까지 약 10년간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미니어처'라는 용어는 앞에서도 언급한 카바레 극장 '휘어진 거울'을 개관했던 연극 비평가 쿠겔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쿠겔은 예술 주점으로서의 '카바레'를 '미니어처' 연극의 첫 시도를 가능하게 해줄 하나의 예술적 대안으로 보았고, 이것이 연극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자 현대적 경향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에서 연극 형식으로서 '미니어처는 이후 '미니어처 극장'이라는 연극 장르로 발전했다.
테피의 초기 희곡 작품이 모두 단막극 형태의 가벼운 장르로 쓰인 것은 20세기 초 러시아 공연 예술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녀의 작품 <사랑의 수레바퀴, 또는 어떤 사과 이야기> (1908)는 '휘어진 거울'의 개관 공연으로 상연되어 극장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패러디와 웃음 이면에 풍자적인 태도와 진지한 세계관이 숨어 있는 그녀의 초기 희곡들은 당시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거의 모든 미니어처 극장에서 상연되었다.
1918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작가 테피는 계속해서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가는데, 그녀의 주요 장르는 일간지의 펠리에톤, 단편, 단막극 등이었다. 한편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테피는 마침내 프랑스의 <러시아 극장> 무대를 위해 장막극을 창작하게 된다. 그 첫 작품이 <운명의 순간>(1937)이고, 두 번째 작품이 <그런 일은 없어요> (1939)다. 이 두 작품은 그동안 소규모 작품만을 고집하던 테피의 창작세계에서 보기 드문 장편 장막극이어서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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