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윤미 '경성스타'

clint 2022. 3. 21. 18:21

 

 

 

식민지 시대 대중연극에서 친일연극까지 고난과 억압의 변방연극사를 재조명한다. 이 작품은 한국 연극 100년의 흔적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1920-1930년 대중극 시대부터 1940년대 친일연극 시대를 관통한다. 억압과 검열의 시대 속에서도 연극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불우한 연극인들의 삶과 작업을 무대화하는 것이다.

대중 극작과 임선규와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가 만났다면... 한국 연극 최초의 근대극 여배우 이월화와 극장가 임선규는 실제 만난 적이 없고 같이 작업한 적이 없지만, <경성스타>에서는 두 사람이 같이 만나 연극 작업을 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라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식민지 상황 속에서도 양반과 민중의 차별이 분명했고, 남성 중심주의가 활개 치던 삶의 공간에서 한국의 근대 여성 연극인은 어떻게 세사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는가를 탐색한다.

 

 

 

 

연극 '경성스타'는 아랑, 고협, 청춘좌, 현대극장 등 1940년대 전반기를 대표하는 극단들의 등장과 언급만으로 일제 통제 하에 있었던 연극의 암울함을 드러낸다. 여기에 임선규, 박진, 차홍녀 등 일제강점기의 배우, 연출가, 극작가는 당시의 신파, 역사극, 만담, 육자배기, 마임 등을 재현한다. 그 첫 문을 여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나 감상적이고 통속적인 신파로 불리기도 한 임선규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연극 '경성스타'에는 이 외에도 '빙화', '동학당', '부활' 등의 공연장면을 재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 극중극 형식은 극적 환상을 의도적으로 파괴, 무대 위의 상황 또한 실재를 가장한 연극임을 알린다. 더불어 제작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그에 따른 고뇌와 이념, 아픔 등을 그려낸다.

이 작품에는 시대를 웃기고 울렸던 연극들이 묵직한 비중으로 존재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연극을 이끌어간 사람들이다. 퇴물 여배우 월희는 무대 뒤 대기실에서 말한다. "조선의 여배우들은 연극을 하기 위해 모두 집을 나갔어. 그래서 조선의 여배우들은 모두 노라야. 집 나간 노라가 어디로 갔겠어? 바로 극장이야."

국내 연극의 이면사를 다루기 위해 억, 소리 나도록 변하는 입체적 무대와 수많은 배우의 등장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연극 그 자체를 바라보게 한다. 친일과 월북에 대한 직접적 언급 또한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연극에 대한 문제다. 시간이 흐르고 인물들은 하나씩 시야에서 사라지며 그들을 비추던 조명이 꺼진다. 연극을 했지만 죽거나 떠난 많은 사람, 그들이 살아있는 연극 '경성스타'는 예술에 밥 말아 먹던, 오로지 연극에만 안착했던 시대의 연극인들을 통해 표면적인 억압과 환멸, 표출되는 이념과 사상을 주장하는 대신 내면의 고뇌와 저항, 동기를 부각시킨다. 겁탈당하는 우리네 여자들을 보면서도 딴전을 피우며 퉁소나 부는 조선 남자들의 입장, 분노한들 그게 조선의 현실이 아니던가. 연극에서 환상을 걷어내고 이제 우리 정직해지자는 임선규의 주장은 '연극에 이데올로기는 없다'는 직접적 발설보다 절실하다.

 

 

 

 

작가의 글 - 김윤미

<경성스타>는 식민지 시기 초창기 극장의 풍경을 그리는 데서 시작되었다. 연극과 영화, 쇼가 하나였던 시기, 나는 그 시기의 연극과 여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 그대 여배우들의 삶은 나에게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러 명의 여배우를 한 사람의 여배우로 만들어서 주인공으로 설정했지만, 그들은 자꾸만 개별적인 모습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럼에도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부여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삶이 윤색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경성의 스타가 되기를 원하는 오누이를 발견해냈다. 오누이를 성악가와 영화해설가가 꿈인 그들이 한껏 멋을 내고 옷보따리를 들고 서울역에 도착한 저녁 비가 내린다. 이렇게 시작된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식민지 시기에 대한 연극관련 논문과 책들을 참조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지만 한계가 있었다. 희곡 <경성스타>보다 더 연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이들 책에 실려 있었다. 나는 그 책들의 십분의 일도 다 담지 못했다.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식의 문제와도 결부된다. 이런 나의 한계를 이윤택 선생께서 보완해 주었다고 믿는다. 또한 이 희곡이 탄생할 때 많은 영감을 준 책 조선의 여배우들(새미, 2006)의 저자 김남석 선생께서 드라마트루기를 받아주어서 기쁘다. 이 외에도 여러 학자의 연구를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이두현 선생의 한국연극표면사, 공연예술 제1대의 예술인들/대담 : 이두현 국립문화재연구소편. 피아, 2006)과 고설봉 선생의 연극마당 배우세상(이 가격, 1996), 김만수 김동현, 일제강점기 유성기음반 속의 대중희극(대학사,1997) 그리고 반째서 편지, 만담 백년사 (백중당. 2000)를 참조하였다. 또한 김미도, 1930년대 대중국 연구), 박명진(1930년대 경성의 시정각 환경과 극장문화), 이상우 인센주의와 여성, 그리고 한국 근대극)선생들의 논문을 읽고 새로운 시각으로 당시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당시 잡지와 신문들을 보았다. 작품을 쓸 때 자료들은 모두 녹아 없어져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자료들을 나열하는 것은 선행 작업들이 존재했기에 인물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희곡 <경성스타>는 세포분열을 덜 끝낸 작품이었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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