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자 이모의 사랑 이야기가 처음 연극무대에 등장한 것은 2016년 10월 평택에서 상연된 <그대 있는 곳까지>이다. 그 후에 숙자 이모들이 출연하는 무대가 뮤지컬에서 연극으로 장르가 바뀌면서 <문밖에서>가 상연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연극의 중점은 미군‘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트라우마 치유가 목적이었다. ‘우리를 이용하러 왔냐’고 날카롭게 반응하던 이모들이 치유의 터널을 지나온 흔적은 이번 <문밖에서>에 여러 장면으로 나타난다. 연출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모들이 대본 읽으며 기지촌 생활에 대해서 ‘이건 이런 게 아니야’ 라면서 먼저 설명해주거나 ‘뭐든 다 써도 돼’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숙자 이모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예전에는 가슴에 돌덩이가 무겁게 있었는데 연극을 하면서 돌덩이가 잘게 부서지고 흩어져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경희 이모는 “이 나이에 연극하는 것이 행복이고 출세죠, 생전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었는데 늦게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치유의 과정과 시간이 있었기에 이번 <문밖에서>는 기지촌에 대한 예민한 사안들을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미군전용 클럽에 오갈 데 없다는 고향 후배를 소개한 이야기, 1992년 1월 기지촌 여성의 자치회인 ‘국화회’ 창립총회 당일 스케치, ‘위안부’라는 말이 싫다는 여성들의 의견을 받아 꽃 이름으로 모임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이야기, 몽키 하우스라고 불리던 낙검자 수용소 이야기 등. 다만 이러한 이야기가 무겁게 연극을 구성하지는 않았다. 이양구 작가는 “기지촌 여성의 삶을 보여주기(재현) 하려고 했다기보다 당사자가 꼭 사람들 앞에서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한편 그런 얘기들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서 무대 연출이나 구성 흐름을 통해 별도 장면처럼 만들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문밖에서>에는 연출가와 배우, 숙자 이모, 향자 이모, 경희 이모와 조시현, 최설화 등 연극배우들 사이에 오랜 시간 축적된 관계가 있었고, 그 이해와 신뢰 덕에 예민한 장면도 함께 그려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러한 이해와 신뢰는 <문밖에서>를 보러온 관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그들은 숙자 이모의 사랑 이야기에 피해자성을 소환하지 않을 수 있었고, 젊은 날 있을 수 있는 사랑 이야기로 들을 수 있었던 거라고. 숙자 이모를 숙자 이모 그대로, 향자 이모를 향자 이모 그대로, 경희 이모를 경희 이모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누구의 인생이든 아름다운 순간들과 후회스러운 순간, 슬프거나 억울한 순간,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로 이루어진다는, 이 보편적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건 연출의 힘이기도 했을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태도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게도 필요하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해하는 것, 스테레오 타입의 피해자성을 소환할 게 아니라 다양한 피해자를 보면서 피해자성의 폭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공연을 보고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감상이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승길 '진짜거지 가짜부자' (1) | 2021.05.09 |
---|---|
마미성 '폭풍의 그늘' (1) | 2021.05.09 |
한수산 '회선' (1) | 2021.05.08 |
박상우 '캘리포니아 드리밍' (1) | 2021.05.07 |
유화량 원작 `노래' (부제: 현과 율) (1) | 2021.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