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도영 '왕서개 이야기'

clint 2021. 4. 15. 14:21

 

 

2020년 제57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2020년 월간 한국연극 선정 2020 공연 베스트7, 2020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2020 올해의 연극 베스트3, 2020년 공연과 이론 작품상을 수상한 '왕서개 이야기'1950년대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을 배경으로 전쟁범죄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가족을 잃고 이름과 국적을 모두 바꾸고 살았던 '왕서개'21년간 묵혀온 진실을 듣기 위해 가해자들을 만나면서 극이 시작된다. 가해자들을 만나는 여정은 오랜 세월 묵혀온 복수인 동시에 진실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오래된 궤짝에 물품을 담아 배달하며 1950년대 일본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 살아가는 '왕겐조'. 1930년대 만주에서 매사냥꾼으로 가족과 함께 살아가던 왕서개는 전쟁이 끝난 후 국적과 이름을 모두 바꾼 채 살아간다. 지속적으로 거래를 해오던 일본인 이치고가 그 궤짝에 대해 물어본 어느 날. 그는 울분을 토해낸다. 그 궤짝은 한 살도 안 된 그의 딸을 묻었던 관()이었다. 만주의 사냥꾼 마을이 쑥대밭이 됐을 때 왕서개의 아내와 딸은 세상과 작별했다. 이치고는 그 마을을 쓸어버린 일본인 다섯 명 중 한명이었다. 왕서개가 이치고에게 요구하는 건 자백서와 아내를 어디에 묻었는지에 대한 정보뿐이다. 대학 선생이 된 이치고는 왕서개와 실랑이를 벌이다 만주의 다섯 명 중 한명이었다는 자백서를 써준다. 하지만 자신은 잔인한 학살의 장본인은 아니라고 끝내 부인한다. 그렇게 완성되지 않은 자백서를 들고 왕서개는 여정을 시작한다. 일종의 '로드 시어터' 형식의 연극이다. 왕서개가 두 번째로 찾아간 임팔과의 만남에서도 그 흐름을 따라간다. 그는 만주의 다섯 인물 중 가장 포악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군국죽의로 똘똘 뭉쳐있다. 자신으로 인해 제3차 세계대전이 촉발된다면 대환영이라며 죽음도 불사할 기세다. 임팔은 현재 외무성 직원인 그의 훈장을 손으로 뜯어낸 뒤, 죽일 기회를 가지고도 죽이지 못한다. 그로부터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끝내 끄집어낼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일본 천황에게 던졌던 빠칭코 알 두 개를 보여줄 뿐이다. 다음으로 나카노를 찾아가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나카노의 아내 하나코에게 그의 사진과 편지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며 자신이 정해둔 답을 찾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삶에 시달리고 있는 하나코 역시 시대가 낳은 또 다른 피해자처럼 보인다다음으로 찾아간 릴리는 반신불구가 돼 있는 상황이다. 왕서개는 감각도 없는 그의 다리를 계속 주무르며 듣고 싶은 답을 그에게 계속 요구한다. 그리고 아내가 어떻게 처참하게 죽어갔는지를 듣게 된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에게 항의하는 사냥꾼의 집단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겁쟁이 왕서개가 홀로 살아남은 것에 대해 파고든다. 그가 죄책감을 벗고 과연 과거와 화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마지막 장면에 모든 은유가 응축돼 있다. 매사냥은 매를 훈련시켜 야생에 있는 먹이를 잡는 사냥방식을 가리킨다. 그럼, 매는 어디서 구할까. 앞서 릴리와의 대화에서 왕서개는 둥지에서 훔쳐온다고 답한다. 1년 정도 매가 돌아오는 훈련을 시키고 사냥을 하는데, 사냥 역시 1년도 못한다고 한다. 철이 바뀌면 남쪽으로 가니까. 철이 바뀌면 다시 돌아오지만, 사냥꾼의 팔에는 다시 앉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또 새끼를 훔쳐오는 일이 반복된다. 그 이야기를 듣던 릴리는 "복수하러 오는 거"라고 응수한다. 만주의 초원처럼 텅빈 무대에서 왕서개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자신의 왼팔을 철썩철썩 때리며 이쪽에 앉으라고 권한다. 하지만 매는 오려다 멀리 도로 멀리 가버린다. "가지 마! 돌아와! 복수해야지!" 왕서개의 마지막 외침은 토로가 아닌 초원을 헤매는 인간의 질문 같다. 만주의 다섯 인물 중 다섯 번째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걸 봐도, 이 연극은 복수를 겨냥하지 않는다.

 

 

 

 

대본을 쓴 김도영 작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한 남자의 대서사시를 그리지 않는다. 피해자의 진실 추적에 방점을 찍는다. 작가는 "복수를 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어떤 복수를 할 것인지, 일본은 사과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어떻게 사과할 것인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극을 통해 '왕서개'에 어떻게 공감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도영 작가는 '수정의 밤(2019)', '무순 6(2018)', '나는 개새끼로소이다(2017)' 등 역사를 통해 인간을 탐구하는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왕서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김도영 작가가 지금까지 꾸준히 고민해온 '과거를 통한 인간성 회복에 대한 탐구'를 담아냈다. '왕서개 이야기'는 초고 단계에서부터 '날카로운 필력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피해를 입은 생존자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더해진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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