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1부 1장
1850년 초여름 해질녁, 캐버트 농가의 두 아들 시미언과 피이터는 노을을 보면서 감상에 젖다가 켈리포니아 금광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그리곤 두달째 집을 나가 소식이 없는 아버지가 죽었길 비는 은밀한 바램을 나눈다. 이때 마침 그들의 이복동생인 에번이 나타나 저녁식사를 알린다.
1부 2장
저녁식사 도중 세 형제는 탐욕스런 아버지에 대한 각자의 증오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한다. 에번은 아버지가 죽은 어머니의 농장을 빼앗았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학대로인해 죽었다는 믿음으로인해 그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1부 3장
동틀무렵 읍내에서 돌아온 에번은 형들에게 아버지가 집을 나간 이유는 새장가를 들기위함 이었다는 소문을 들려주게 된다. 두 형은 켈리포니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에번은 뱃삯과 형들이 상속받을 농장의 몫을 교환하자는 조건의 협상을 제시한다.
1부 4장
멀리 아버지와 계모가 오는 것을 본 세 형제는 속히 협상을 체결하고 에번은 어머니의 땅을 되찾는 희망에 부푼다. 두 형은 돌아온 아버지와 계모에게 빈정거림과 욕설을 남기고는 금광을 찾아 떠나간다. 젊고 예쁘지만 어딘가 탐욕적인 냄새를 풍기는 계모, 애비는 자신의 굉장한 새 보금자리에 만족해 하며 집안을 둘러보다 우연히 에번을 발견하고는 곧 그의 젊음에 매혹된다. 에번 역시 육체적으로 강하게 끌리는 자신을
느끼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거친 반응만을 보인다.
2부 1장
어느 일요일 오후 현관에서 마주친 애비와 에번은 서로를 의식하지만 애번은 애써 욕정을 달래기 위해 과장된 욕설만을 퍼붓는다. 애비는 모욕감과 질투심으로 남편에게 애번이 자신을 탐하려 한다는 거짓을 말해 노하게 하고는, 농장을 소유하기 위함이란 명목하에 캐버트에게 아들을 낳아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2부 2장
그 날 저녁, 캐버트가 애비마저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한탄하면서 잠자릴 옮기자 애비는 당장 애번에게 달려가 사랑을 구걸한다. 애번이 계속 뿌리치자 그녀는 애번의 죽은 어머니의 방으로 그를 유인한다.
2부 3장
그 방에서 애비는 모성을, 에번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가장한채 서로에게 빠져 든다. 그리고는 마침내 서로의 사랑을 토로하게 된다.
2부 4장
서로의 사랑을 거듭 확인한 두연인은 행복감에 잠기고, 애번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했다는 생각에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3부 1장
다음해 늦은 봄 캐버트의 농가에선 애비가 아들을 낳은 것에 대한 축하연이 한참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모인 사람들은 모두 에번의 아들임을 눈치채고 노골적인 비웃음과 농담을 던지나 캐버트만이 영문을 모른채 기뻐날뛴다.
3부 2장
집밖에서 마주친 에번과 캐버트는 말다툼 끝에 애비가 농장의 상속을 위해 아들을 낳았다는 오해를 심어주고 에번은 이로인해 애비에 대한 증오심을 품게된다. 애비는 오해를 풀고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위한 방법으로 아기를 죽일 결심을 한다.
3부 3장
애욕에 눈이 먼 애비는 마침내 아기를 죽이고 그 사실을 에번에게 알려 다시 사랑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에번은 자신의 아기를 죽인 애비를 더욱 증오하면서 그에 대한 복수로 치안관에게 고발하러 가고, 애비는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
3부 4장
애비는 캐버트에게 아기를 죽인 사실과 그 아기는 에번의 아들임을 밝히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는 에번임을 고백한다. 캐버트는 배신감에 몸을 떨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더욱 농장에 대한 집착만을 키운다. 한편 돌아온 에번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아직도 애비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마침내 치안관은 애비를 체포해 가고 에번 역시 그 뒤를 따라간다. 노을 속으로.
어느 일요일 오후 현관에서 마주친 애비와 에번은 서로를 의식하지만 애번은 애써 욕정을 달래기 위해 과장된 욕설만을 퍼붓는다. 애비는 모욕감과 질투심으로 남편에게 애번이 자신을 탐하려 한다는 거짓을 말해 노하게 하고는, 농장을 소유하기 위함이란 명목하에 캐버트에게 아들을 낳아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2부 2장
그 날 저녁, 캐버트가 애비마저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한탄하면서 잠자릴 옮기자 애비는 당장 애번에게 달려가 사랑을 구걸한다. 애번이 계속 뿌리치자 그녀는 애번의 죽은 어머니의 방으로 그를 유인한다.
2부 3장
그 방에서 애비는 모성을, 에번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가장한채 서로에게 빠져 든다. 그리고는 마침내 서로의 사랑을 토로하게 된다.
2부 4장
서로의 사랑을 거듭 확인한 두연인은 행복감에 잠기고, 애번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했다는 생각에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3부 1장
다음해 늦은 봄 캐버트의 농가에선 애비가 아들을 낳은 것에 대한 축하연이 한참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모인 사람들은 모두 에번의 아들임을 눈치채고 노골적인 비웃음과 농담을 던지나 캐버트만이 영문을 모른채 기뻐날뛴다.
3부 2장
집밖에서 마주친 에번과 캐버트는 말다툼 끝에 애비가 농장의 상속을 위해 아들을 낳았다는 오해를 심어주고 에번은 이로인해 애비에 대한 증오심을 품게된다. 애비는 오해를 풀고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위한 방법으로 아기를 죽일 결심을 한다.
3부 3장
애욕에 눈이 먼 애비는 마침내 아기를 죽이고 그 사실을 에번에게 알려 다시 사랑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에번은 자신의 아기를 죽인 애비를 더욱 증오하면서 그에 대한 복수로 치안관에게 고발하러 가고, 애비는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
3부 4장
애비는 캐버트에게 아기를 죽인 사실과 그 아기는 에번의 아들임을 밝히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는 에번임을 고백한다. 캐버트는 배신감에 몸을 떨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더욱 농장에 대한 집착만을 키운다. 한편 돌아온 에번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아직도 애비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마침내 치안관은 애비를 체포해 가고 에번 역시 그 뒤를 따라간다. 노을 속으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파헤친 작품>>한상철 평
1920년대 오닐의 첫 장막극 시기가 시작되던 때의 작품으로 가장 잘 쓴 극일뿐만 아니라 그의 전 작품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 이<욕망>이다.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의 초연은 언제인지 잘 모르겠으니 오랫동안 공연금지를 당해오다 작년말에 비로소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으나 그리 좋은 평은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번 재공연에서는 먼저번의 미비한 요소들을 보완하여 상당히 개선된 공연을 보가주었다. 우선 연출(권오일(의 포인트가 분명해졌고 연기의 디테일이 섬세해 졌다. 먼저와 동일한 연기진들이었지만 그들이 각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연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트를 극장에 알맞게 개조했고 셋트의 공간을 보다 넓게 활용하여 지난번의 옹색함과 답답함을 덜어주었다. 성좌가 공연한 두번째 오닐 작품으로<밤으로의 긴 여로>에 비해 우수한 공연이었으며 미국 희곡으로 재작년에 무대에 올린 아서 밀러의<세일즈맨의 죽음>에 비견할만한 공연이었다. 이 작품은<밤으로의 긴 여로>의 초고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 간의 갈등을 주요 모티브로 하는데 그 점이 이 작품을 우수한 것으로 만든 원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오닐은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잘 알고 있고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잘 표현해낼 능력이 있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오닐의 성공작은 대개가 사실주의 내지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인데<욕망>도 그 중의 하나이다. 프로이드의 이론을 적용하기에 가장 알맞는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과 열정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서구 고전비극이 즐겨 다룬 주제와 일치하는 점이 많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오이디푸스, 메디아, 페드라, 햄릿의 주제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반항, 친자식을 죽이는 어머니, 전처의 아들을 사랑하는 계모, 죽은 어머니를 복수하는 아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욕망과 폭력과 섹스로 점철되어 있으며 특히 근친상간과 영아살해라는 비윤리적인 사건이 적나라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공연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무대에서 영아살해는 결과만을 보여주는 점잖음을 지켰고 근친상간의 정사 장면 역시 관객의 호기심만을 노리는 국산영화의 정사 장면과는 전혀 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실로 오랫만에 무대에 돌아온 아버지 캐버트 역의 전운(田雲)은 경험없는 젊은 배우들의 거짓 모방이 주는 어색함을 씻어주는데 성공했다. 빠른 대사가 때로 불분명 했지만 무대를 통어하는 힘이 강하고, 아내와 아들을 잃은 늙은이의 외로운 표정이 역역했다. 애비 역의 손숙(孫淑)은 아들 에번과 서로 땅을 차지하려는 욕망의 대결에서 충분히 승리했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그녀는 애번을 사랑하고 그의 사랑을 그의 죽은 어머니로부터 되돌리려고 몸부림치는 여성으로 전환한다. 그녀의 그런 격정은 잘 보인다.
에번의 유인촌(柳仁村)이 열연한다. 그의 미모는 손숙(孫淑)을 단번에 사로잡을 힘이 있다. 3형제 중 막내로서의 귀염성도 있다. 그같은 장점이 오히려 지칠줄 모르는 물질욕과 불같은 격정을 나타내는데는 결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 그였다. 자식을 죽인 살인자로 애비를 고발하고 돌아온 그가 자기에 대한 애비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고 그녀와 같이 형무소로 동행하는 것은 사랑의 승리인지 사랑의 파멸인지 잘 모르겠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그 두 사람의 사랑은 보았지만 자식을 죽인 부모로서의 죄의식은 보지 못했다.
비록 단역이지만 아버지 캐버트의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며 난폭한 성격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데 성공한 두 아들 이일섭과 최상설의 연기는 생활의 고통과 좌절을 진지하게 또 코믹하게 연기해 주었다. 리얼리즘 연극을 연출하는데 권오일은 이제 자신이 있는 듯이 보인다. 결코 과장이나 허세를 허용치않고 견실하게 행동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있었다. 이 작품이 지닌 여러가지 주제에서 젊은 남녀간의 애정에 촛점을 마춘 것은 그의 해석의 하나일 것이다. 다만 그 해석이 복합성과 섬세함을 더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1920년대 오닐의 첫 장막극 시기가 시작되던 때의 작품으로 가장 잘 쓴 극일뿐만 아니라 그의 전 작품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 이<욕망>이다.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의 초연은 언제인지 잘 모르겠으니 오랫동안 공연금지를 당해오다 작년말에 비로소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으나 그리 좋은 평은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번 재공연에서는 먼저번의 미비한 요소들을 보완하여 상당히 개선된 공연을 보가주었다. 우선 연출(권오일(의 포인트가 분명해졌고 연기의 디테일이 섬세해 졌다. 먼저와 동일한 연기진들이었지만 그들이 각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연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트를 극장에 알맞게 개조했고 셋트의 공간을 보다 넓게 활용하여 지난번의 옹색함과 답답함을 덜어주었다. 성좌가 공연한 두번째 오닐 작품으로<밤으로의 긴 여로>에 비해 우수한 공연이었으며 미국 희곡으로 재작년에 무대에 올린 아서 밀러의<세일즈맨의 죽음>에 비견할만한 공연이었다. 이 작품은<밤으로의 긴 여로>의 초고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 간의 갈등을 주요 모티브로 하는데 그 점이 이 작품을 우수한 것으로 만든 원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오닐은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잘 알고 있고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잘 표현해낼 능력이 있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오닐의 성공작은 대개가 사실주의 내지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인데<욕망>도 그 중의 하나이다. 프로이드의 이론을 적용하기에 가장 알맞는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과 열정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서구 고전비극이 즐겨 다룬 주제와 일치하는 점이 많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오이디푸스, 메디아, 페드라, 햄릿의 주제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반항, 친자식을 죽이는 어머니, 전처의 아들을 사랑하는 계모, 죽은 어머니를 복수하는 아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욕망과 폭력과 섹스로 점철되어 있으며 특히 근친상간과 영아살해라는 비윤리적인 사건이 적나라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공연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무대에서 영아살해는 결과만을 보여주는 점잖음을 지켰고 근친상간의 정사 장면 역시 관객의 호기심만을 노리는 국산영화의 정사 장면과는 전혀 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실로 오랫만에 무대에 돌아온 아버지 캐버트 역의 전운(田雲)은 경험없는 젊은 배우들의 거짓 모방이 주는 어색함을 씻어주는데 성공했다. 빠른 대사가 때로 불분명 했지만 무대를 통어하는 힘이 강하고, 아내와 아들을 잃은 늙은이의 외로운 표정이 역역했다. 애비 역의 손숙(孫淑)은 아들 에번과 서로 땅을 차지하려는 욕망의 대결에서 충분히 승리했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그녀는 애번을 사랑하고 그의 사랑을 그의 죽은 어머니로부터 되돌리려고 몸부림치는 여성으로 전환한다. 그녀의 그런 격정은 잘 보인다.
에번의 유인촌(柳仁村)이 열연한다. 그의 미모는 손숙(孫淑)을 단번에 사로잡을 힘이 있다. 3형제 중 막내로서의 귀염성도 있다. 그같은 장점이 오히려 지칠줄 모르는 물질욕과 불같은 격정을 나타내는데는 결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 그였다. 자식을 죽인 살인자로 애비를 고발하고 돌아온 그가 자기에 대한 애비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고 그녀와 같이 형무소로 동행하는 것은 사랑의 승리인지 사랑의 파멸인지 잘 모르겠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그 두 사람의 사랑은 보았지만 자식을 죽인 부모로서의 죄의식은 보지 못했다.
비록 단역이지만 아버지 캐버트의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며 난폭한 성격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데 성공한 두 아들 이일섭과 최상설의 연기는 생활의 고통과 좌절을 진지하게 또 코믹하게 연기해 주었다. 리얼리즘 연극을 연출하는데 권오일은 이제 자신이 있는 듯이 보인다. 결코 과장이나 허세를 허용치않고 견실하게 행동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있었다. 이 작품이 지닌 여러가지 주제에서 젊은 남녀간의 애정에 촛점을 마춘 것은 그의 해석의 하나일 것이다. 다만 그 해석이 복합성과 섬세함을 더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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