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뒤렌마트 '유예기간'

clint 2025. 10. 9. 12:58

 

 

더 이상 기력이 없어 ‘비참하게 죽어가는 총통 아틀라스’. 임종의 침대에 누워있다. 

총리 각하는 의도적으로 과거 정치범 집단수용소와 깊은 연관이 있는 의사 

아르카노프에 의해 처치를 받게 하는 기발한 ‘착상’을 시행한다.

이미 24시간 이상 서 있는 자세로 총통 곁을 지키는 아르카노프의 비관적인 진단에도 

총리 각하는 무조건 그에게 오로지 총통의 연명을 위한 힘을 발휘해 주길 촉구한다.
독재자 총통의 사망에 따른 국가 최고 “권력의 공백” 기간에 벌어질 수 있는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외침을 사전에 봉쇄하면서 권력 찬탈의 시간을 벌 목적으로, 

그는 아르카노프에게 연명 치료 시한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기에 이른다. 

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 증조부부터 부친에 이르기까지 궁정학교의

수학자이면서 왕과 귀족들의 운수를 봐준 탁월한 예견 능력을 지닌 가문의 후손임을 

애써 강조하며 총통 서거 이후, 자신이 향후 권력승계자로 등극하는 점괘를 지닌 점을 

은근 암시하지만, 그의 이 계획에 대해 정보부장 묄러는 예리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수시로 기회를 엿보며 서로 상대방을 제거하려 했던 두 사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불신의 대척점에 서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에 당황한 총리의 갑작스런 제안으로 

두 사람은 임기응변의 “화해”의 손을 내밀지만, 끝내 정보부장은 권력에 눈이 먼 

총리의 계책에 말려들고 만다. 그건 평소에 아르카노프의 진찰 소견을 들먹이며 

“20살 청년의 심장"을 지닌, 이른바 강철 같은 건강을 과시하던 묄러는 결국 그의 

심장을 총통에게 이식시켜주는 희생양의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아르카노프를 가리켜 심지어 “조국의 운명"이 그의 양 어깨에 달려있다고 극찬을 

쏟아냈던 각하는 총통이 서거하자마자 즉각 돌변하여 그를 체포한다
뿐만 아니라 묄러를 “폴란드의 자유투사”로 여기며 칭송하는 총리에게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묄러와 아르카노프의 “본연의 정체성”을 폭로한다. 

수용소 포로들을 대상으로 마취도 없이 섬뜩하게 자행되었던 “비인간적인 고문,

즉 생체실험을 말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총리각하 스스로 끈질긴 추적을 통해 

아르카노프가 집단수용소에서 행했던 과거 만행을 이미 분명히 알고도, 겉으로는 

연명 치료를 표면적인 이유로, 실제 그로 하여금 또다시 총통을 상대로 “인간이 고통을 

참아내는 능력의 한계"를 실험하도록 방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미리 계획된 술수와 음모를 그간 철저히 숨긴 채,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인간성의 이름으로” 국가와 총통을 위하는 대의명분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의 위선과 극단적인 잔혹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점이다. 이로써 각하는 더욱 더

능란한 기지를 통해 오랜 기간 수장이었던 묄러의 중앙정보부를 필두로 민병대와 

육해공군 등, 모든 공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더 나아가 총통의 후계를 넘보는 

가족들까지 완전히 제압을 했을 뿐만아니라 심지어 새 정권에 대한 종교 최고층의

지지도 이끌어냄으로써, 이제 각하가 권력의 정점에 등극하게 되는데...

그 시점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국면이 전개된다.

 

 

 

농부 토토가 갑자기 나타나 아들 폰초를 총살시킨 총리각하를 향해 달려들어

그의 배를 칼로 찌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의아스러운 것은 각하의 집무실

바로 옆방을 통해 철저하게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각하와 세불론, 둘이 

비현실적인 환상이나 다름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하를 찌르고 유유히 집무실 옆 부속실을 통해 빠져나간 농부를 전혀 보지 못했다는 

세불론의 진술은 농부가 이미 2년 전에 각하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그 농부도 유령이 되어 집무실에 왔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장면이지만 

그럼에도 총리각하의 상처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게 실제의 현상이다.

이제 찔린 배를 움켜쥔 채, 한순간에 “권력의 놀이공"으로 추락하게 된 각하는

그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골트바움과의 독대 자리에서 비로소 전모를 알게 된다.

기적적으로 “수용소의 지옥에서 살아남고 그의 가해자들을 오래 전에 잊은 한사람인

골트바움에게 국가 통치의 권한이 넘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국가 권력을 수중에 넣기 위해 장기적으로 주도면밀했던 산술가인

총리각하가 사전에 계산했던 음모 계략들이 우연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연의 개입을 통해서 평범한 시골 의사를 꿈꾸던 골트바움이

뜻밖에도 통치권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스페인을 40여 년간 통치했던 프랑코 전 총통의 죽음이 30명의 의사들에 의해 지연되었던, 이른바 ‘유예기간’에 대한 일화가 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1975년 그 당시, 극작가 뒤렌마트는 베른의 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특히 프랑코 이외에도 1970년대 후반, 세계 도처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독재자들을 목도하면서 시대적 상황들을 끊임없이 무대 위에 제시하고자 노력했던 그는 발전의 가속도가 붙은 현대 의학과 불행한 냉전 체제의 산물인 정치범 강제 수용소의 조합이라는 극적 상상력을 통해 환상적인 ‘희극’으로 명명된 유예기간을 구상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입원 후, 수없이 그렸던 그림 속 주인공, 즉 쓰러진 아틀라스는 작품 안에서 죽어가는 독재자 총통으로, 그리고 최신 의학의 모든 기계장치와 의술은 총통을 위한 연명치료의 수단으로 형상화되었다. 또한 이를 주도하는 의사 아르카노프는 연명치료의 막중한 책임자로 위장한 채, 과거 정치범 수용소 시절의 의사와 똑같이 실제로는 총통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체 실험을 자행하는 비윤리적 인물로 설정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임종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총통을 에워싼 가족들, 이른바 ‘불멸의 여인들’로 통칭 되어지는 그들이 획일적으로 남자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토로하는 유령의 여인들로 분하는 “뒤렌마트의 왜곡된 형태의 페미니즘도 결국 작가가 고안해낸 ‘착상’의 산물인 것이다. 
또한 뒤렌마트만의 독특한 ‘착상’과 ‘그로테스크’ 기법에 의해 극적 긴장이 최고조를 향해 가는 그 순간에 사건을 변화시키고, 파괴시키는 것으로서의 "우연"이 끼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연’은 ‘산술가’인 각하가 선조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탁월한 통찰력을 토대로 진행해온 권력계승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그의 정체성도 밝혀지지 않은 “농부 토토에 의해 자행된 각하의 살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우연’으로 인하여 평소 국가 폭력과 독재체제를 비판하면서도 소박하게 ‘시골 의사’만을 꿈꾸어 왔던 골트바움에게 갑자기 국가권력이 통째로 이관되는 것이다. 

 

까메오처럼 TV에 출연한 작가 뒤렌마트

 

뒤렌마트는 세상사가 이성적 판단과 계산에 의해 통제되기보다는 예상치 않았던 어처구니없는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고 믿는다. 그의 작품 '물리학자들'(1961)은 작가의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극론은 희극론일 수밖에 없고 그의 희극은 그로테스크의 경향을 띠게 된다. '유예기간' 또한 그로테스크 희극 유형에 속한다.

 

 

 

스위스의 극작가 뒤렌마트(Friedrich Durammatt, 1921~1990)에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는 “오직 희극에 의해서만 포착”할 수 있었다. 이런 뜻에서 역시 '희극'으로 명명된 '유예기간 Die Frist'(1977)은 그러나 전체 구도로 보아 일종의 '국가 비극'으로서, 정부 고위층 및 사회 지도층인사들의 정치적 음모와 좌절을 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 기법으로 묘사한다. 극적 사건의 주인공은 '각하'로 불리는 국무총리이다. 독재자인 '총통'의 임종이 임박하자, 총리는 정적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계승하기 위해 '유예기간'이 필요하게 된다. 권력의 공백이 채워질 때까지 독재자의 생명을 연장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권력 투쟁의 주역들은 '각하’ 이외에도 왕당파 총수로서 여왕 '전하' 에 내정된 살토베니아 공작비, 보수 국민당을 대변하는 총통의 딸 발도폴로 공작비, 추기경과 대주교가 대변하는 가톨릭교계, 그리고 활동이 금지되어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야권의 반정부 혁명세력이다. 왕위계승권자인 '전하'는 총통 사후에 대비해 왕정복고를 꿈꾸고, 스페인의 과거 팔랑헤당을 연상시키는 국민당의 발도폴로 공작비는 중앙정보국장 뮐러와 공모하여 '국가 혁명',요컨대 쿠데타를 획책한다. 자칭 민주주의 지향 세력인 종교계는 그러나 무능하고 정치적 감각도 전혀 지니지 못했다. 배우이자 동성연애자인 노스트로마니가 추기경과 대주교로 변장하여 총통에게 종부성사를 베풀도록 강요받는데, 이런 방법으로 정치권력은 종교계의 무능과 허위를 무자비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외견상 불가능해 보이는 '비정치적 해결'을 관철시키는 것이 뒤렌마트 희극의 공통된 특징이다. '밝은 이성'으로 상황을 통제할 줄 아는 '각하'에게 정보부장 뮐러와 왕당파가 제거당하고 종교계도 무력화되지만, 최후의 승리는 유태인 의사이자 노벨평화상 및 의학상 수상자인 골트바움에게 돌아간다. 전 2부로 구성된 이 작품의 제1부가 주로 국무총리 대 정보부장의 권력 투쟁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반면, 제2부에서는 현대의학의 생명연장술로 가능해진 '유예기간' 동안에 각종 사건들이 펼쳐진다. 끝내 과거의 행적에 발목을 잡히는 나치 잔당, 우민 정책에 동원되는 스포츠와 이에 빠져 스스로 우민화하는 지배계층, 객관적 정보전달이나 의식의 계몽에는 등을 돌린 채 권력층의 필요와 자의적 판단에 따라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는 언론, 원한과 증오의 망령이 된 여성들의 과격 페미니즘 - 현대문명 사회의 이런 문제점과 주제들이 기발한 착상과 그로테스크 기법에 실려 극적 긴장과 쾌감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한다. 

 

 

 

이 작품에서 현대 기술 문명의 자가당착을 드러내고 있는 대표적인 현상은 TV와 현대의학이다. 전자는 총체적 현실 자체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가공되고 조작된 현실의 파편들을 보여주어 국민을 오도하고 - 후자는 새로운 장비들을 동원하여 새로운 종류의 비인간성을 현실화한다. 논리적 인과관계보다 '착상'에 의존하는 뒤렌마트의 극작술은 사건의 반전 부분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특히 독일 리베나우 집단수용소의 망령이 여러 차례 반전의 계기로 작용한다. 수용소장이었던 뮐러는 그 전력 때문에 패배를 자인하고 이식될 '싱싱한 심장'을 제공하여 '유예기간'을 가능케 한다. 총통의 주치의로 강요에 의해 시술 책임을 진 아르카노프는 총통이 끝내 사망하여 '유예기간'이 만료되자, 역시 수용소의사로서 잔혹 행위를 저지른 과거의 전력 때문에 숙청당한다. 그로테스크한 '착상'과 우연의 극치는 그러나 현실적, 잠재적 정적들을 모두 제거한 '각하'가 승리감에 빠질 사이도 없이 하찮은 반정부자에 의해, 그것도 그가 이미 2년 전에 처형시킨 농부(농부의 유령? 농부로 변장한 하수인?)에 의해 집무실에서 암살당한다는 사실이다. 모사가로서 죽음을 앞둔 '각하'가 민중의 우상 골트바움에게 토로하는 말에 따르면, “역사는 대략적인 현상이자 방심, 우연, 건망증으로 연출되는 신성모독의 졸작 연극” 이며,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지도자라 해도 일단 현실 정치의 비인간적인 상황에 들어서고 나면 그 역시 비인간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관적 역사관과 정치 철학에서는, 그것이 다분히 역설과 반어법으로 표현되었더라도, 패배주의 내지 민중의 역할에 대한 냉소주의가 짙게 느껴진다. 그런 비판의 소지는 그러나 희극 <유예기간>뿐만 아니라 뒤렌마트의 연극 전반에 해당하며,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예기간'은 프랑코 총통이 죽은 1975년부터 집필되어 1977년 중반에 완성, 그해 가을 출간직후인 10월초 취리히 초연에 이어 같은 달 중순 바젤에서도 공연되었다. 극중 사건은 프랑코의 고무줄같이 끈질기던 오욕의 생명력,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숨통이 트인 스페인의 발 빠른 민주화를 다분히 연상시킨다. 집필 당시에 세계 여론의 받던 시대사의 단면들이 도처에서 얼굴을 내밀지만, 그러나 사건, 장소, 시간, 인물은 대체로 역사보다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한다고 보아야 한다.

 

 

 

뒤렌마트는 자신의 독특한 극작술을 해명한 제1부서문에서, 한편으로는 중세 독일 슈타우펜 왕조의 유물인 음산한 대관실을, 다른 한편으로는 눈부신 조명 속의 현대 기술을 무대구성의 두 기둥으로 삼음으로써 구속력 있는 역사적 시간을 애초부터 배제했다. 고대 신화, 중세, 그리고 현대가 기이하게 얽힌 추상적 무대 현실이 구축되는 것이다. “적들의 얼굴과 이름조차 뇌리에 새겨둘 줄 모르는” 비정치적 민권 운동가요 도덕성의 화신이자 검소한 자유직업인 골트바움이 별다른 준비나 노력도 없이 정권을 계승한다는 발상도 분명 환상에 가까울 만큼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뒤렌마트의 희극작품들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이 작품의 덕목과 매력은 정치사회적 부조리를 폭로함으로써 지적 긴장과 비판적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의도된 우연과 착상들도 환상이나 환영만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총통의 임종을 앞두고 숨 가쁘게 펼쳐지는 권력층 내부의 암투에는 독재체제가 갑자기 몰락할 때 나타나게 마련인 '안개 정국'의 단면들이 꽤 설득력 있게 묘사되어 있다.

 

 


1970년대 후반은 세계 각지에서 자본주의 진영의 마지막 독재자들이 죽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나던 시기였다. 작품의 묵시적 배경과 유사한 정치 상황을 체험한 한국의 관객과 독자에게도 '유예기간'은 그래서 보편성과 개연성을 충분히 갖춘 비유 극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만, 파쇼 정권이 무너진 뒤 민주주의가 신속히 확립되지 못한 곳에서는 독재의 망령이 계속 살아 있어서, 더욱 폭력적이고 잔인한, 역사 발전의 필연성에는 둔감하면서도 권력 휘두르기와 자금 '계산' 에는 민첩한 후예들이 오랫동안 더 득세하기도 했다. 암산의 명수인 '각하'는 정확히 계산된 온갖 조치에도 불구하고 끝내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지구상의 이러저러 한 폭군들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일말의 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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