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사샤 기트리 '남편 부인 그리고 애인'

clint 2015. 11. 10. 21:57

 

 

 

 

 

프레데릭의 친구인 쟈크와, 프레데릭의 부인인 쟈닌은 연인사이다.
어느 날, 저녁식사 때, 프레데릭이 자기 아내(쟈닌)를 특별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친구(쟈크) 에게 불쾌감을 느끼고, 이에 쟈크를 따로 불러내 추궁하며, 쟈크를 식사도중에 내쫓는다. (대신 쟈크는 자신이 쫓겨나가는 모욕을 당했다고 프레데릭에게 살짝 약한 따귀를 때렸다.)
이에, 쟈크는 쟈크대로 쟈닌은 쟈닌대로 완강하게 사실을 잡아떼며 오히려 프레데릭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간다. 이에 어리숙한 프레데릭은 그들의 말을 믿고,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는데, 쟈크와 쟈닌은 이로 인해 서로에게 부정의 책임을 물으며 잠시 다투다가 각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로 합의한다. 즉, 쟈닌은 프레데릭의 부인이자 쟈크의 애인으로, 쟈크는 프레데릭의 친구이자, 쟈닌의 애인으로, 프레데릭은 자기 부인에게 배반당한 남편으로, 즉 친구와 부인에게 농락당하는 가련한 사람으로 말이다. 사생활에 특별히 관심을 둔 연극이다. 남편, 부인, 애인 을 내세운 단조로운 내용을 토대로 한다. 비극적이고, 심각한 상황들도 가볍고 경쾌하게 다룬다. 정조관념, 신의 등 기존의 도덕적 가치들을 무너뜨린다. 대사가 빠르고, 다채롭고, 사실적이며, 수다스러움과 영악함이 드러나 있다. 표현이 감각적이면서도 자유롭다. 전체적인 작품의 느낌이 경박한 감이 있다.

 

 

 

부부인 프레데릭과 쟈닌, 그리고 프레데릭의 친구이자 쟈닌의 애인인 쟈크. 이 셋이 이야기의 중심인물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프레데릭의 부인인 쟈닌은 윗집에 사는 남편의 친구인 쟈크와 바람을 피운다. 불륜, 배반당한 남편. 어쩌면 심각하고 비극적인 이런 소재를 이 극에선 참 가볍고 경쾌하게 다뤘다. 도덕적으로 죄를 짓고 있는 쟈크와 쟈닌이 서로를 비난하며 다 그만 둘 것처럼 하다가, 결국 바람을 피우던 원래 상태로 돌아가자고 결론짓는 장면들에서 참 이기적이고 영악한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농락당하는 프레데릭의 모습은 참 우스우면서도 씁쓸하다. 불륜을 의심하는 인물과 발뺌하는 인물들, 오히려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인물의 심리 흐름과 긴장감 그리고 위선적인 두 인물과 거기에 휘둘리는 나머지 인물들의 모습을 잘 표현해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중세의 소극, 몰리에르의 관중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극, 나름대로 독창적인 유쾌한 언어의 불르바르 왕국을 건설한 사사 기트리(Sacha Guitry, 1885~1957)는 불르바르 연극의 황제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우선 방대한 작품 수(107개의 희곡과 30개의 영화)에도 있지만, 불르바르 연극의 원동력이 되는 요소들 (가벼움, 생기발랄함, 웃음 등)을 잘 활용하는 그의 재능에 있다. 이때, 불르바르 연극이라 함은 언어위주의 극 혹은 풍속극, 상황극,웃기 위한 오락적인 가벼운 극 등등 의 수식어가 붙어 있는 연극으로써, 별다른 내용 없이 연극의 효율성과 구성의 질만을 내세운 연극을 가리킨다. 사생활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던 이 연극은 당시의 감상적인 삶에 대해 논하기에 이상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연극은 재치와 작가의 명구, 잘 짜인 줄거리, 그리고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주제로 당시의 관중들을 사로잡았었다. 특히 불르바르 연극이 제안하는 즐거움들은 같지 않지만, 이 즐거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몰리에르가 상업적인 연극의 귀중한 규칙으로 제시한 관중의 마음에 드는 것이다. 바로 이 20세기의 몰리에르라고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몰리에르를 모델로 삼고 작업한 기트리는 관중을 웃게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관중을 즐겁게 해주어는 것을 그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관중을 즐겁게 해주는 것에 대한 모든 기술을 터득하고 있던 기트리가 추구하는 이 가치는 주로 곡예를 하듯 쉴 새 없이 빠르게 늘어놓는 재치 있고 효과를 노린 유머 있는 말들과 과도한 상황이나 언동에 의해서 실현되었다. 뿐만 아니라 삶의 심각한 상황들도 그의 손을 거치면 어느새 소극의 한 장면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의 언변이 좋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를 그리는 기트리라는 희극의 대가는 불르바르의 주된 테마인 결혼이라는 제도를 존중하는 여부를 떠나, 전형적인 불르바르 式 트리오(남편, 부인, 애인)의 단조로운 내용을 토대로 하지만, 여기서부터 믿을 수 없는 기발하고 익살맞은 상황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은 그 내용이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그 구성 방식이다. 예를 들면,<베르그-옵-줌〉이라는 작품에서 남편은 부인에게 접근하는 남자와 맞서 싸우기를 거부하고,<야간 당직자>에서는 정부(情婦)를 둔 지긋한 나이의 한 남자는 새로 등장한 젊은 경쟁자와 문제의 情婦를 함께 "공유”하자고 제안하기까지 하며,<데지레>에서는 아예 하인과 주인 여자가 꿈의 형식을 빌려 현실의 성욕을 해결함으로써, 관중들의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으며 일상성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현실에서 동떨어지기는 하지만 이 도덕성이 결여된 인물들이 극적인 상황들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기존의 가치들을 태평스럽게 그리고 유쾌하게 무너뜨리는 것을 보는 재미가 바로 기트리 연극의 미학인 것이다. 또한, 기존의 가치들을 무너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비극적이고 심각한 상황들도 경쾌하게 다룸으로써 희극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배반당하는 남편들이 바로 그 전형적인 예이다. 중세의 소극에서부터 유래한 아내에게 배반당하는 남편들은 기트리에 의하면, 단지 배우자를 잘못 선택한 결과이며, 그렇기 때문에 전혀 놀랄 일도 극적인 일도 아니오, 단지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받아들여야하는 현실인 것이다. 이처럼 그는 완전히 선도된 세상, 혹은 제2의 세상, 즉, 사회현실이라는 공식적이고 심각한 세상에서 해방된 자유의 세상을 그리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극작술은 현실세계의 무거움을 떨쳐내며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그의 낙천주의에 근거한다.
그의 이러한 낙천주의는 그의 인물들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기트리의 전형적인 주인공들은 젊고 잘 생기고 명랑하며 사는 것이 즐겁고 유머감각과 재치가 뛰어나니 언변 또한 출중하여 자신감이 넘치고, 특별한 직업 없이 한가하게 사랑하는 것을 즐기는 부르주아나 예술인들이 많다. 왜냐하면, 그의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작가의 분신이여, 실제로 자신이 배우로써 그 역할을 수행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그의 희극적인 인물들을 조롱하며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기지는 우리가 웃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우월한 그들이 희극을 실제로 이끌어나가는 주동적인 인물로써 우리를 웃기게 되는 것이다.

 

 

 

사사 기트리(Sacha Guitry)

 

그 웃기는 방법으로는 언어가 있는데, 기트리에게 있어서, 말하는 것은 곧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며, 언어는 행동을 대체한다. 그런가하면, 예외적으로<나는 당신을 사랑해>같은 작품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의 수다스러움이나 영악함이 드러나는 대신에, 서로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사랑과 행복에 대한 진지한 찬가와 같은 작품이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진정한 사랑의 형태로 본다는 것이기 때문에, 수다스러움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과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수다스러움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기트리의 극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오류에 빠지는 일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 수다스러움은 작가가 언어라는 반죽을 자유자제로 그리고 하염없이 매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 주된 내용은, 여성이 기쁨이라는 사냥의 대상인데, 기지를 발휘하고 재치 있는 말을 늘어놓아 그 여성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상을 포획하여 소유하는 것보다 사냥자체를 수수한 연극적인 유희로써 즐기는 기트리는 다섯 차례에 걸친 결혼과 그 경험을 통해 여자들의 절개를 믿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인물들의 입을 빌려 남성우월적인 혹은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빈정거림과 사심적인 유머는 여자들에 대한 씁쓸한 관찰로부터 나온 열매로써,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어 작가의 유명한 어구가 되기도 하였다. 쾌락을 추구하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는 이 작가의 어구들은 극 구성상 꼭 필요하거나 극의 흐름과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는 흔적이다. 이 흔적들은 마치 작가가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장 비밀스러운 심리까지도 간파하여, 그에 대한 실마리를 쥐고 있다는 듯, 나름대로의 논리를 피며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여성을 장식정도로 여기는 기트리의 극에 나오는 여성 인물들은 기트리 - 배우 - 인물의 청산유수와도 같은 말솜씨에 매료되어 감탄하기 위해서 존재하든가 아니면 아예 당시의 다른 작가들의 인물들과는 달리 남자들의 욕구들을 수동적으로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구를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존재한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여성은 아름다워야 하며, 남녀관계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안정장치, 혹은 극 분쟁구조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을 최상의 가치로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증표를 결혼 신청에서 찾으려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에 의하면, “남자가 사랑을 생각할 때, 여자는 결혼을 이야기한다.”고 하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자유, 쾌락주의를 주창하는 기트리의 환상의 세계에서도 여성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안전 하다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그렇지만, 여자들의 두 마리의 토끼, 즉, 실존적인 문제와 낭만적인 문제를 잘 간파한 기트리는 여성의 지위나 가정의 중요성 같은 제도나 가치, 관습에서 벗어나, 그의 환상세계를 구현하는 애인을 통하여 사랑이라는 무지개의 모든 색깔을 다양하게 반영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가장 불르바르의 전형적인 트리오이자 그의 작품들 중에 하나인 '남편, 부인, 애인’인 것이다.
사람들이 식상해하는 이 트리오는 역설적으로 성공을 보장해주는 열쇠이기도 했다. 다만 기트리가 연극의 구조나 미학 흑은 희극적인 방식들을 혁신하려는 의지 없이, 또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야망도 없이, 현실과 상상을 적당히 섞어, 관중의 기대체계들을 뒤집는 상황들과 효과를 노린 말재주로 관중들을 즐겁게 하는데 그의 연극의 목적을 둔 것이 문제였다. 그의 관중들이 무대 위에 투영된 자신들 의 과장된 자신들의 이미지를 보며, 자신들의 문제들을 보고 웃기 위해서 극장을 찾는 동안에, 진지하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 관중들은 연출가와 극단을 중심으로 배우들의 연기개혁과, 연출과 무대장식을 위해서라면 원작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고 보다 혁명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연극을 보러갔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만큼 두 연극에 기대하는 것이 달랐다는 것이다.
기트리가 간통과 같은 개인적인 사생활의 문제를 다불 때, 아방가르드 극에서는 같은 문제, 같은 이해관계를 갖는 집단적인 문제를 다루었고, 전자의 인물들이 주로 부르주아로서 특별한 직업 없이 무위도식했다면, 후자의 인물들은 부르주아라기보다는 대중적이고 평범한 인물들로서 겸허한 기쁨을 관중에게 안겨주었다. 그리고 전자의 작품이 환상에 토대를 두기는 했지만, 명료하고 지극히 현실적이라면, 후자에서는 상상적이고 더 나아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초현실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 감정상태가 행위로 표현되면서, 마치 꿈속에 투영된 이미지처럼 나타나고 공연의 문학적인 질의 근거가 되는 언어도 일상생활의 논리와 조리를 잃으면서 붕괴되어버린다. 아방가르드의 이러한 정신, 이러한 시도들은 연극의 지평선을 넓히고 우리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려는 의지의 발로이다. 그래서 아방가르드연극은 기트리로 대표되는 불르바르 연극의 표면적이고 관례적인 모든 것을 피하고 대화를 일부러 의식적으로 소홀히 하면서 일관성이 없는 환상과 애매함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렇지만 글 잘 쓰는 기트리 같은 작가들의 시각에서 보면,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이러한 글쓰기는 용서할 수 없는 오류인 것이다.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사랑타령이나 감정 문제나 다루면서 관중들의 환심을 사려하는 기트리 같은 작가들에게 "잘 씌어진” 극의 형식을 맡기고 연극의 궁극성과 수단에 대해 자문하는 것을 더 선호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트리는 "관중의 마음에 드는 것”에 능통하여, 스케치 형식으로 희극적인 것들을 창출할 줄 알았고 상황의 원천들을 계속적으로 새롭게 변화시킬 줄 알았으며, 특히 효과를 노린 대사들을 잘 쓸줄 알았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이 작가가 타고난 재능을 박수갈채를 보낼 준비 가 되어있는 “쉬운” 관중들을 상대로, 극 내용이나 미학에 큰 욕심을 내지 않은데 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극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저녁시간의 여가로 만든 기트리의 연극은 훗날에 그의 뒤를 이을 앙드레 루생이 등장하기 전까지, 당시 관중들의 꿈과 환상을 대리만족 시켜주면서 일상생활의 근심을 잊게 해주는 청량제 역할을 했던 것은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