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창극 '비가비 명창 권삼득'

clint 2026. 2. 17. 08:51

 

 

권삼득은 양반 출신 광대라 해서 특별히 '비가비'라고 부른다. 
삼득은 어린 시절 성불암 소속의 사당패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판소리에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되었고 공부에 소홀하였다.
부친 권래언은 시골의 보잘것없는 양반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식이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은 가문의 수치였던 것이다. 광대소리를 하겠다고 고집한 탓에 
문중에서 멍석말이로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그가 부른 소리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 덕에 결국 족보에서 이름을 빼고, 가문에서 쫓아난다.
당시 판소리의 명창으로 꼽히던 하은담과 최선달을 만나 소리를 익히기 시작해 
근교의 산과 계곡을 떠돌며 사람 소리뿐 아니라 새와 짐승, 귀신 소리까지 

세 가지 소리를 두루 터득하라는 최선달의 말대로 삼득(三得)을 하게 된다.
게다가 고된 수련을 통하여 자신만의 득음을 하게 된다.
그가 구룡 폭포수 밑에서 피를 토하며 자연의 소리를 뛰어넘은 것이다.

 

 

 

‘비가비 명창 권삼득’은 양반출신으로 당시 천하게 취급되던 판소리의 길을 걸었던 
전주출신 초기 명창 권삼득의 생애와 그의 민중의식을 그린 작품이다. 
양반광대라는 뜻의 ‘비가비’라는 명칭을 얻게 된 그의 고뇌와 예술혼을 깊이있게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특히 당시 민초들의 애환이 이 창극에 담겼으며, 

따라서 다시 살아온 권삼득의 소리를 통해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받을 수 있는 

신명난 놀이판을 펼친다.  이 창극은 삼득 설렁제라 하는 ‘제비 몰러 나간다’를 힘차게 

부르며 마당판을 열어 양반신분으로 광대노릇이 용납되지 않아 멍석말이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소리 한대목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득음에 이르는 고난의 

과정과 전주대사습에 참가하는 등의 총 열두장으로 풀어간다.

 

 

 

국창 권삼득(權三得, 1771-1841)은 본명이 권정으로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최초의 명창이다. 양반 출신의 비가비광대(非可非廣大)로, 이른바 순조 임금 집권기의 전기 팔명창(八名唱)에 속하는 인물이다. 권삼득은 기록으로 전하는 최초의 명창인 하한담(河漢譚)과 최선달(崔先達, 1726-1805)의 후배로, 12세부터 그들에게 소리를 배웠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염계달(廉季達)이 권삼득의 창법을 많이 본받았다고 한다. 권삼득은 권마성(勸馬聲) 소리를 응용한 판소리 선율인 덜렁제를 만들어 후대에 전했다. 도약 선법을 사용하는 덜렁제는 천길을 솟아 만길을 내리치듯 흥겹게 출렁이다 사뿐히 가라앉아 민초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덜렁제는 매우 씩씩하고 남성적인 느낌을 주며, 현재까지도 여러 소리 대목에 구사된다. 신재효(申在孝, 1812-1884)는〈광대가(廣大歌)〉에서 "권생원(權生員) 사인(士仁) 씨는 천층절벽(千層絶壁) 불끈 소사 만장폭포(萬丈瀑布) 월렁궐렁 문기팔대(文起八代) 한퇴지(韓退之)"라 하여,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 소리에 그의 성음을 비유한 바 있다. '가중호걸(歌中豪傑)'이라는 권삼득의 별명도 그가 호탕하고 씩씩한 창법을 구사했음을 짐작케 한다.『조선창극사』「권삼득」조에서는 그의 소리에 대해 "곡조가 단순하고 그 제작이 그리 출중한 것이 없으나 세마치장단으로 일호차착(一毫差錯)이 없이 소리 한바탕을 마치는 것이 타인의 미치지 못할 점일 뿐더러 그 천품의 절등한 고운 목청은 듣는 사람의 정신을 혼도케 했다"는 후인의 평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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