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근형 '쥐'

clint 2026. 2. 15. 16:25

 

 

어느 날 재앙이 시작되었다. 도시의 중앙을 흐르는 강물이 범람하기 시작하고 
거의 모든 지역이 물에 젖어들었다.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강물은 줄지 않고 오히려 바닷물까지 도시로 역류하고 있었다. 
강물은 검고 악취가 많이 났다. 그곳은 병균이 득실대는 쥐들이 살기에는 더 이상 
좋은 장소이다. 재앙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공해와 엘리뇨 현상인 듯 하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어디에도 먹을 것은 보이지 않았다. 
강둑을 덮고 있는 쥐 외에는. 사람들이 갈망하던 모든 것들은 사라졌다. 
판도라의 상자속에 들어있던 희망조차도 이미 쥐들이 강물속에 던져놓은지 오래다.
도시의 끝, 어떤 창고에 희망의 소리를 던지는 가족이 모여있었다. 
언제부터인지 그들은 무선 라디오 송출기로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사회의 기능을 최소한의 장치로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디오 방송국에는 5명의 가족 (어머니. 장남, 차남, 며느리, 막내딸)이 모여있었다.
어느 날 지친 여인이 방송국을 찾아온다. 그녀는 식량을 찾아 강둑으로 나간 
어린애를 찾아달라고 이곳에 들렀다. 그녀에게 그 아이는 전부와 다름없는 존재다. 
방송국의 사람들은 허기진 그녀에게 먹을 것도 나누어주고 방송을 통해 아이를 
찾아보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연극을 보여주기도한다. 
그리고 식사 때가 되자 그녀를 잡아먹는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인 것이다.
다시 그들은 그들의 방송을 하고, 잠시 후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막이 내린다.

 

 

 

그 예전 지붕 위에서 쿠당거리며 잠을 설치게 했던 쥐 떼들은

지금 아주 후미진 동네에서나 겨우 찾아 볼 수 있을까?
밑불 꺼지랴 번개탄 불붙여 연탄으로 살아가고 쥐덫을 놓아가며

넘치는 물을 푸면서 힘겹게 살아왔던 그날들.
아마 다신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겠지만 가끔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때론 인간이지만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았던 그 모습,

그때와 현재 인간이지만 인간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
어떤 것이 더 추악하고 인간 본연에서 멀어지는 가는

우리 스스로의 판단 하에 맡겨진다.

 

 

 

'쥐"는 물난리로 피폐해지고 쥐들만이 창궐하는 도시에서 지역방송을

하면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이들 가족 구성원에게는 숙명처럼

꼭 지켜야 하는 각자의 도리가 있다. 큰아들은 라디오 방송을 해야하고,

큰 며느리는 가족의 대를 이을 아이를 낳아야하고,미혼인 둘째아들과 막내딸을

먹을 것을 구해와야한다. 음식을 구하러간 둘째아들과 막내딸은 길 잃은

한 아이를 데리고온다. 그날 저녁 이들 가족의 식탁에는 고기가 오르고

가족들은 오랜만에 주린 배를 채운다. 이 날 저녁식사는 바로 그 아이...
극은 살육과 식인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이들 가족의 삶의 태도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일상처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먹는다.

연극은 이들 가족의 살인과 식인행위처럼 우리 삶 속에서 서로의 살을

뜯어먹고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러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가지거나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꼬집고 있다.  

 

 

 

어떤 것이 문화와 법을 정하는 기준인가?

식인 문화를 가진 집단에서는 우리의 문화가 법이 아니듯이 연극에 있어서

행하여지는 연극적 불복종성도 우리 사회의 윤리로 다스릴 수 없다.

진정 칼을 들고 찔러야만 살인인가? 우리는 살아오면서 인터넷으로, 입으로,

신문으로, 언론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을 보아왔다.
<쥐>란 연극에서 보여지는 장면과 표현은 어떻게 보면 우리 시대의 윤리와

도덕의 문제에 사로잡혀 설명되어 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행동 외에 여러 생각과 사상의 가능성을 대면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넘치는 강물, 판치는 쥐떼로 전염병의 위협에 파묻힌 세기말적 재앙의 도시에서

일가족이 한구석에 틀어박혀 희망의 메시지를 방송하는 사설방송국이 주 무대로,

이 방송국에서 처절하고 끔찍한 일도 이어진다. 

연극은 계속 이어지는 음악속에 '인생이란 늪에 빠진 듯 허우적대다가 결국은

제 살을 파먹으며 사는 것'이란 다소 충격적인 생각을 보여주는 판타지다.

 

 

작·연출의 글 - 박근형
만삭이 된 여자와 불구의 남자가 걸어간다.
끝도 없는 길을... 지친 몸을 이끌고...
이때 어디선가 회색 그레이스 승합차가 나타나더니 그들을 태우고 사라진다.
잠시후 길 끝. 저기쯤인가 벼랑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달려가보니 거기에는 만삭의 여자와 불구의 남자가 검게 그올린 채 쓰러져 있더라.
그 옆에 조용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늙은 쥐 한 마리...
작품 「쥐」는 오래간만에 펼쳐지는 76단 특유의 쾌활한 연극이다.
물난리가 난 도시를 배경으로, 창궐하는 쥐떼와 그들이 전염 시키는 각종 
병원균속에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사랑의 전 파를 보내는 사람들.
그들의 희화화된 모습- 결국 인생이란 이런저런 늪지대 속에 빠져 허우적대다 
결국은 제살을 파먹으며 보내는 한나절의 악몽을 사설 방송국이라는 공간속에서 
시종 흐르는 음악과 함께 펼쳐 보여진다.
넘치는 강물과 쥐떼 속에 파묻혀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생활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투영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이 작품 「쥐」는 독특한 환상과 기존의 질서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는 매혹적인 공간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경주 ‘태엽’  (2) 2026.02.16
스크린 뮤지컬 '미스터 레이디'  (1) 2026.02.16
박장렬 '72시간'  (1) 2026.02.14
뮤지컬 '나빌레라'  (1) 2026.02.14
이진경 '영호와 리차드'  (1) 2026.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