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 모스크바.
어느 날 뜬금없이 흑마술 교수로 변장한 악마 볼란트가
거대한 검은 고양이를 비롯한 깡패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도심에 나타난다.
악마 일당은 신생 소비에트 사회의 이곳저곳을 들춰내며
방화, 살인, 사기 등 온갖 행패를 부린다.
그들의 행패를 통해 소비에트 사회의 신흥 관료와 엘리트들의
탐욕과 위선, 천박함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악을 이용해서 악을 혼내준다.
악마가 주도하는 사회 풍자는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로맨스와 뒤얽히며
풍자소설의 한계를 넘어선다. ‘거장’이라는 별명으로만 알려진 남자는
아르바트 거리에 셋집을 얻어 칩거하면서 일생일대의 역작인 그리스도와
빌라도에 관한 소설의 집필에 몰두한다. 그는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저명한
과학자의 아름다운 부인 마르가리타와 사랑에 빠진다.
거장이 소설을 완성하자 그에게는 온갖 비방과 혹평과 저주가 쏟아진다.
국가의 창작 이념을 거스른다는 이유에서다. 거장은 공포에 질려 원고를
불태우고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마르가리타는 거장의 행방조차 몰라 불탄 원고의 부스러기만을 간직한 채
시들어간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미하일 불가코프라는 작가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현대 러시아 문학에 길이 남을 걸작이다. 이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살아 있는 예수의 이미지를 문학적으로 구현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공산혁명 이후 소비에트 정부는 공식적으로 무신론을 표방했으며, 이 때문에 10세기 말 동방 정교를 받아들인 이후 900년 이상이나 독실한 정교 국가였던 러시아의 문화 전체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불가코프가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구상하기 시작한 1928년은 혁명 이후 십 년간 소비에트 러시아 문화에서 종교라는 요소를 인위적으로 많이 지워 버린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살아 있는 예수의 이미지’를 문학에 나타내려 한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불가코프가 오래된 성직자 가문의 후손이라는 데서 일차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개인적 배경 외에도, 종교성이나 신성의 문제 혹은 선과 악의 역학 관계라는 문제는 러시아에 정교가 들어온 이후로 모든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철학적인 주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불가코프 자신도 19세기 말에 태어나 고대 러시아의 수도인 키예프에서 교육받은 정통 러시아 지식인으로서 이 주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특기할 점은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불가코프가 선과 악, 신성과 악마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들의 대립보다는 이 두 극단 사이에 있는 인간이란 존재에 더 중점을 둔다는 사실이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일단 재미있다. 줄거리의 진행 속도도 빠르고 적절하게 배합된 환상과 그로테스크, 로맨스와 풍자와 유머가 독자를 매혹한다. 게다가 소설 곳곳에 박혀 있는 촌철살인 구절들은 현대의 경구로 굳어져 오늘날까지도 독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이다. ‘불타지 않는 원고’는 사실 저자의 집필 의도 전체를 요약해주는 핵심 개념이다. 볼란트는 성대한 연회를 주최하면서 안주인으로 마르가리타를 선택한다. 마르가리타가 안주인 역을 만족스럽게 해내자 악마는 그 보상으로 정신병원에서 거장을 빼내 와 마르가리타와 만나게 해준다. 악마가 거장에게 그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고 말하자 거장은 당혹스러워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소설을 페치카에 태워버렸습니다.” 악마가 실소한다. “실례지만 그 말은 못 믿겠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으니까. 원고는 불타지 않소. 베헤모트, 소설을 이리 가져와.” 그러자 기적처럼 온전히 보존된 거장의 원고가 즉시 눈앞에 나타난다. 거장의 스토리는 불가코프의 전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는 거장처럼 정권의 박해 속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초고를 1930년에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이듬해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해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해 두 번째 초고를 1936년에 완성했다. 그는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수정을 거듭했다. 생애 마지막 몇 달간은 시력을 상실해 부인에게 구두로 교정 사항을 알려주며 원고를 다듬었다. 그가 불태운 원고는 사라지기는커녕 고통의 시간을 거치며 숙성하여 더 풍요로운 새 원고로 완성되었다.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는 고통의 극한에서 작가를 지탱해 준 모토이자 그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미래를 예언하는 말이다. 그것은 더 나아가 문학의 불멸에 대한 헌사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불타지 않는 원고’의 가장 깊은 의미는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슬그머니 드러난다. 볼란트의 배려로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함께 날아간다. 지상을 떠나기 전에 마르가리타는 거장의 원고를 챙기려고 한다. “어디로 가든 소설만은 가져가야 해요!” 그러자 거장이 말린다. “그럴 필요 없어요. 나는 다 외우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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