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로베르 르빠주 '달의 저 편'

clint 2025. 3. 11. 05:57

 

 

극은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된 뒤를 시점으로 시작한다.

한 미국 병사가 그 피해를 조사하러 왔다가 원자탄의 희생자인 여인을 만난다.

극은 이 두 사람의 사랑을 틀로 삼아 유태인 학살 당시의 테레진 수용소 시절까지

돌아갔다가, 다시 에이즈에 걸린 한 남자가 암스텔담의 자발적 안락사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현재로까지 이동한다.

요컨대 르빠주는 두 연인들의 사랑이야기에 홀로코스트와 전후 미국의 사회상을 담아

20세기의 거대 비극들을 직면했던 개인들의 뼈아픈 이야기를 직조해냈다.

재탄생, 용서, 동과 서의 만남이라는 거대한 주제들이 이 위대한 장인의 용광로에서 녹아

하나의 통일된 총체극으로 거듭 나서 관객의 눈과 마음과 가슴을 홀린다.

지식의 축적으로 인간들은 우주와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만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 은 인간이 달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외부에서 자신과 자신들의 지구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여기서 두 형제 필립과 앙드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닮은 듯한 두 형제는 달의 뒷면과 앞면처럼 서로 다르고,

60년대의 소련과 미국처럼 적대적이다. 문화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40대의 필립은 주말마다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우주여행의 문화적 영향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지만 실은 비행기조차도 한 번 타 본 적이 없다.

반면, 동생 앙드레는 TV의 기상캐스터로서 성공적이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캐나다가 배출한 아방가르드 연극의 거장 로베르 르빠주.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아파트를 정리하며 빚어지는 이들 형제의 충돌과 갈등,

그리고 화해의 이야기를 과거 달을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벌인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의 역사와 맞물려 흥미롭게 구성해냈다. 첨단 프로젝션과 특수효과로

단순한 무대와 평범한 생활용품들은 순식간에 전혀 색다른 공간과 사물로

탈바꿈하고, 기발한 소품과 재치있는 대사들은 유년기의 추억과 우주를 향한

인간의 꿈을 절묘하게 표현해낸다.

 

 

 

"저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에 대해서는 시원찮게 생각할지 모르나 이 연극에 대해서는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 영국 Gaurdian
캐나다가 자랑하는 천재 연출가 로베르 르빠주(1957년생)의 작품들은 멀티미디어와 첨단 기계장치의 절묘한 사용, 공간을 채우는 혁신적인 상상력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연극 뿐만 아니라 영화, 오페라에까지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장르에 걸쳐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 전역에서 다국어로 작업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9년 르빠주는 데니 아르캉의 영화 '몬트리올 예수'에서 '르네'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르빠주는 내셔널 아트 센터의 예술감독에서 물러난 후 1994년 퀘벡에 위치한 소방서를 개조하여 연극, 인형극, 무용, 음악, 오페라 등 다분야에 걸친 작업을 펼치는 극단 엑스 마치나(Ex Machina)를 창단하는 한편, 1997년에는 다매체 프로덕션 센터인 La Caserne Dalhousie를 설립하여 창작활동의 본거지로 삼아오고 있다.

그는 이 작품 (The Far Side of the Moon)으로 북미 연출가로서는 최초로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 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다섯번째 장편영화 「Tourism (가제)」 외에도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를 원작으로 한 오페라, 그리고 뉴욕 링컨센터와의 공동 프로젝트(물리학의 '끈 이론(string theory)'에 관한 연극)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끊임없는 창작열정을 발휘하고 있다.

 

 

 

로베르 르빠주의 작품세계- 눈과 마음과 가슴을 홀리는 마술사....글: 김윤철 / 연극평론가
우리한테 캐나다 연극은 아직 낯설다. '레 뒤 몽드'라는 극단이 최근 두 차례 서울에서 공연을 가진 것이 아마 우리가 접한 것의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연극계에서 특히 불어권 캐나다의 연극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독특하고 높다. 아비뇽, 에딘버러, 베를린 등 유럽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연극제에 단골로 초청될 만큼 예술성과 대중성을 인정받는다. 불어를 공용어로 쓰는 퀘벡주가 영어권 캐나다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오래 전부터 추진되어 왔고, 문화가 그들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장 웅변적으로 주장해주기 때문에, 주정부 차원에서 예술의 진흥과 발전에 쏟는 열정과 퍼붓는 투자는 정말 대단하다. 우수한 인력들이 문화예술분야에 몰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 정점에 이제 겨우 46세인 로베르 르빠주가 우뚝 서 있다. 그는 배우로서도, 극작가로서도, 연출가로서도 그야말로 전방위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의 네 번째 모노드라마가 바로 이「달의 저 편」이다. 캐나다의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가인 미셸 바이스의 평을 인용하면

"내 개인적 의견으로는 「달의 저 편」은 르빠주의 대표적인 1인극 가운데 하나다. 기술이 많이 사용되지만 잘 숨겨져 있어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매우 감동적이고, 재미있고, 명석한 공연이다. 극은 똑같이 생긴 두 형제들 - 물론 한 배우가 다 연기한다 - 그러나 아주 다른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는 지역 TV방송에서 날씨를 전하는 자랑많은 사람이고, 다른 형제는 미국인과 러시아인의 달 경주에 대해서 막 박사논문을 마친 매우 수줍은 사람이다. 그는 미국인들의 상업적인 접근과 러시아인들의 좀더 영적인 접근 사이에서 나타난 철학적 차이를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 대해 강의를 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지만 시차로 인한 피로 때문에 늦게 도착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그는 아주 낙담한 채, 실패자로서의 참담한 심정을 안고 퀘벡 시로 돌아오는데, 도착하자 마자 어머니가 죽는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유명한 형을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고 보니 TV스타 역시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도 르빠주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분명하고, 명확하게 오브제들을 가지고 놀지 못한다. 그는 리얼리티를 변모시켜서 우리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하며, 우리가 백일몽을 꾸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초현실적이다. 그의 인물들 대부분은 매우 진실하고 인간적인, 그러면서 아주 우습기도 한 단순한 사람들이다. 이 극에서 르빠주는 자신의 가족들, 특히 그의 어머니의 죽음에 크게 영감을 받았다. 그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다."

오죽하면  피터 브룩이 이렇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까.
"로베르 르빠주와 그의 협력자들은 방대하고 깊이 필요한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과했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공포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리얼리티가 우리 일상생활의 무의미한 세부사항들 -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사소할 뿐인 - 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증명하는 연극을 창조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현대의 기술이 생(生)공연의 인간미를 섬기면서 동시에 지속시켜 줄 수 있는 연극적 언어를 만들기 위해 실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