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들어서면서 폐렴으로 앓고 있는 존시는 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 창 밖의 잎만 세고 있었다. 그리고 간호해 주는 친구 수잔에게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는 말을 한다. 그들의 밑층에 사는 화가인 베어만 노인은 40년 동안을 그림을 그리며 살았지만 아직 걸작을 그려보지 못했다. 수잔은 노인에게 존시의 망상을 이야기하고 정말로 잎새와 함께 떠나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다. 다음 날 아침 수잔이 창문의 휘장을 올려보니 밤새도록 세찬 비와 사나운 바람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벽돌 담벽에 담쟁이 잎새 하나가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 지나도 잎새는 여전히붙어 있었다. 존시의 병세는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사는 베어만 노인도 폐렴으로 죽었다는것을 알리며 밤에 밖에서 그림을 그린 것 같다고 한다. 수잔은 노인이 담장에 잎새를 그렸다는 것을 알게된다.
(O Henry.1862.9.11∼1910.6.5)
미국 소설가. 은행원을 지냈으며 40세 가까이까지 기구한 생활을 하다가 단편소설을 써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심한 남작(濫作)과 음주로 건강을 해쳐 사망하였다. 어릴 때 부모를 잃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오 헨리는 은행돈을 몰래 쓰고 남아메리카로 도망갔다가 아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체포되었다. 3년간 감옥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한 오 헨리는 10여 년 동안 300편 가까운 단편소설을 썼다. 그의 작품 속에는 따뜻한 유머와 감정이 녹아있다고 평가되며, 모파상이나 체호프와 비교되기도 한다.
미국 소설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그린스버러 출생. 본명은 William Sydney Porter. 보통 사람들, 특히 뉴욕 시민들의 생활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그의 단편 소설들은 우연의 일치가 작중인물에 미치는 영향을 우울하고 냉소적인 유머를 통해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갑작스런 결말로 인해 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그의 등록상표가 되다시피했으나 그런 수법의 유행이 한물가자 평론가들은 바로 그런 수법 때문에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숙모가 교사로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졸업 후에는 숙부의 잡화상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1882년 텍사스로 가서 농장, 국유지 관리국을 거쳐 오스틴에 있는 제1국립은행의 은행원으로 일했다. 1887년 애설 에스티스와 결혼했으며, 이무렵부터 습작(習作)을 시작했다. 1894년 주간지 [롤링 스톤(The Rolling Stone)]지를 창간했으나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휴스턴 포스트(Houston Post)]에 기자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가끔 만화도 기고했다.
1896년 2월 은행 공금횡령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온두라스로 도피했다. 그러나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스틴으로 돌아왔고, 당국의 배려로 재판은 아내가 죽을 때까지 연기되었다. 그는 최소한의 형을 받고 1898년 오하이오의 컬럼버스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모범적인 복역으로 형기는 3년 3개월로 줄어들었다. 그는 교도소의 병원에서 야간에 약제사로 일하면서 딸 마거릿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다.
미국 남서부와 중남미를 무대로 한 그의 모험소설은 즉각 잡지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으며 그는 출감하면서 이름을 W. S. 포터에서 O. 헨리로 바꾸었다. 1902년 헨리는 스스로 '지하철위에 건설된 바그다드'라고 묘사했던 도시인 뉴욕에 도착했다. 1903년 12월부터 1906년 1월까지 그는 뉴욕의 [월드(World)]에 매주 글을 쓰면서 동시에 잡지에도 기고했다. 최초의 소설집<캐비지와 왕(Cabbages and Kings)>(1904)은 온두라스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이며<400만(The Four Million)>(1906) 《The Trimmed Lamp》(1907)는 뉴욕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낭만과 모험에 대한 추구를 묘사했고,<서부의 마음(Heart of the West)>(1907)는 텍사스 산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환상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헨리의 말년은 자신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악화된 건강, 금전상 압박과의 싸움, 알코올 중독 등으로 얼룩졌다. 1907년에 한 재혼은 불행했다. 사후에 《Sixes and Sevens》(1911)<뒹구는 돌(Rolling Stones)>(1912) 《Waifs and Strays》(1917) 등 3권의 선집이 나왔다. 나중에 즉흥적으로 쓴 소설과 시를 모은<O. 헨리 선집(O. Henryana)>(1920) 《Letters to Lithopolis》(1922)와 초기의 작품을 모은 2권의 책 《Houston Post, Postscripts》(1923) 《O. Henry Encore》(1939)가 출간되었다. 문학사적으로는 중요한 작가가 아니지만<경찰관과 찬송가(The Cop and the Anthem)><마지막 잎새(The Last Leaf)>등의 단편에서 보이는 따뜻한 휴머니즘은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제럴드 랭퍼드가 쓴 전기<앨리어스 O. 헨리(Alias O. Henry)>가 1957년에 나왔다.
장편<케비지의 왕>을 제외하면 거의 단편뿐으로서 그 수는 270여 편이 넘는다.
O. Henry라는 필명을 쓴 것은 딸에게 자기가 옥살이를 한다는 것을 알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다.
【특징】작품 자체도 대중 흥미 본위에 치우쳐 높은 향기를 풍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모파상의 영향을 받아 문체가 매끄럽고 어휘가 풍부ㆍ적절하였으며, 사건의 종말에 가서 급전법(急轉法), 반전법(反轉法)을 즐겨 써서 독특한 기교를 개척하였다.
【소설】<캐비지와 왕>(1904)(처녀작-장편소설)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1905),<현자의 선물>(1905),<20년 후>【단편집】<4백만(The Four Million)>(1904)<서부의 마음(Heart of the West)>(1907)<운명의 길>(1909),<딩구는 돌>(1913.유작)
<휴머니즘의 작가>오 헨리는 의사인 부친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양친을 잃어 거의 학교 교육도 못 받은 채 숙부의 약방을 거들고 있다가 1882년 텍사스 주로 가서 카우보이, 점원, 직공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887년 25세에 17세 소녀와 결혼, 1910년 오스틴 은행 근무, 아내의 내조를 받아 주간지를 창간하였으며, 지방 신문에 유머러스한 일화를 기고하는 등 문필 생활을 시작했다. 1896년 2년 전 그만 둔 은행에서의 공금 횡령 혐의로 고소당하자, 남미로 도망, 아내의 중태로 돌아왔으나 곧 체포당했다.
3년간 옥살이를 하는 중 풍부한 체험을 바탕으로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복역이 저널리스트에서 훌륭한 작가로 성장할 계기가 되었다. 석방 후 뉴욕으로 나와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 라틴 아메리카 혁명을 다룬 처녀작<캐비지와 왕(Cabbages and kings)>(1904)을 제외하고는 계속적으로 단편집을 발표, 인기 작가로 지위를 굳혀 불과 10년이 지나지 않는 작가 활동 기간에 300편에 가까운 단편을 썼다.
그는 순수 단편 작가로 따뜻한 유머와 깊은 페이소스를 풍기게 하여 모파상, 체호프에 비교된다. 미국 남부나 뉴욕 뒷거리의 가난한 서민과 빈민들의 애환을 다채로운 표현과 교묘한 화술로 그렸다. 특히,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결말은 기교적으로 뛰어난 특색을 지니고 있다. 문학사적으로 중요 작가는 아니지만, 대표 단편<경찰과 찬송가>,<마지막 잎새>등에서 보는 따뜻한 휴머니즘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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