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범철 '인간을 보라'

clint 2026. 10. 6. 18:00

 

 

1장

전지전능하지만 인간을 그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찰자'인 신들이 등장한다. 
신들은 자신들이 창조했거나 혹은 자신들을 믿는다는 인간들의 행동을 분석한다. 
인간들은 본 적도 없는 신의 존재 여부를 두고 자기들끼리 갑론을박 싸우거나, 신의 
이름을 빌려 위선을 떨고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신들의 눈에 비친 인간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고 나약하게 종교에 집착하면서도, 정작 신이 원하는 본질적인 

선(善)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일삼는 모순적인 존재들이다.

 

 

2장
지구상에서 수억 년 동안 살아남은 생존의 지배자이자, 인간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동반자' 바퀴벌레들이 주인공이다. 바퀴벌레들은 인간이 이룩한 문명과 
일상적인 삶의 방식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특히 "인간들은 돈을 버느라 건강을 다 
망치고, 그렇게 망가진 병을 치료하느라 번 돈을 다시 다 써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왜 반복할까?"와 같은 인간의 굴레를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지구의 짧은 역사밖에 
차지하지 못한 인간들이 마치 자신들이 지구의 영원한 주인인양 군림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며, 바퀴벌레들은 인간의 한심함과 부조리를 유쾌하게 비웃는다.

 

 

3장
우주적 관점에서 인류를 위협하거나 관찰하는 '경쟁자' 외계인들의 대화로 구성된다. 

외계인들은 지구라는 작은 행성을 점령한 인간들이 가진 지독한 이기심과 폭력성에 
주목한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서로 편을 갈라 전쟁하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터전인 지구환경을 스스로 파괴해 자멸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 외계인들은 이처럼 
고도의 지능을 가졌으면서도 파괴적인 본능을 조절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종족의 
위험성과 아이러니를 객관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토론한다.

 

 

 

범우주적인 SF 연극 ‘인간을 보라’ 에서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에 관해

이야기하고 인간을 관객으로 하는 극이지만 극의 출연진 중 인간 역할은 없다.

하지만, 신, 바퀴벌레, 외계인이 관찰한 인간들의 모습을 듣다보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사는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게 된다.

놀라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웃음과 사색을 한 번에 던지는 신선한 연극 

‘인간을 보라’는 2014년 서울연극제 연출상을 비롯, 많은 연출상을 받아 온 ‘정범철’이

작 연출을 맡았고, 2015년 연극인 대상 의상디자인상과 서울특별시 

‘찾아가는 유랑극단’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인류는 늘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자 지구의 주인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극은 신, 
바퀴벌레, 외계인이라는 완전히 다른 세 개의 축을 통해 인간 역시 지구 생태계의 아주 
작은 일부이자 오만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작가는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볼 때는 늘 변명과 합리화가 따른다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인간 배역을 단 한 명도 등장시키지 않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관객이 스크린 
밖에서 관찰자가 되어 인간이라는 종(種)의 민낯을 온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인간의 이기심, 탐욕, 파멸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결코 심각하거나 훈계조로 
풀지 않는다. 의인화된 동물이나 초자연적 존재들의 재치 있는 말장난과 풍자를 통해 
실컷 웃으며 즐기다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는 반전의 깨달음을 주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작, 연출의 글 - 정범철

인간을 인간의 입장이 아닌, 다른 종의 입장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주관적 시선과 객관적 시선의 차이, 그것이 이 작품의 시작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보다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인간을 정의내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정의내리고 있으나 어떤 입장에서 정의내리냐에 따라 해석의 여지는 굉장한 차이를 보일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인간은 이 지구라는 곳에 살면서 항상 중심이 되어왔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에는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항상 다른 종과 공존해왔다. 심지어는 본 적도 없는 종을 믿고 존재여부에 대해 설왕설래, 갑론을박 공론을 벌여왔다. 인간을 관찰하는 신,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바퀴벌레, 인간과 경쟁하는 외계인. 이렇게 다른 세 가지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종교와 운명, 문명과 역사, 전쟁과 환경… 이제 우리 인간의 의견이 아닌 다른 종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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