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상봉한 니나와 뜨리고린은 어떻게 됐을까?
첫 장면만 봐도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니나는 꿈의 장소에 와 있다. 모스크바엔 니나가 원하는 것들이 다
갖춰져 있다. 대표적인 예술극장도 있고, 교류할 수 있는 예술가도 있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연인 뜨리고린도 있다.
니나는 이제 배우가 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뜨리고린의 친구인 볼코프가 연출로 작품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집에서 카드모임이 있을 때 니나는 볼코프에게 배우희망을 말하고
며칠 후 연습장에 찾아가, 배역을 맡게 된다.
이 사실을 뜨리고린은 반대한다. 여배우라면 아르까지나로 인해 질렸기에.
그러나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은 니나는 연습에 적극 참여하고...
그 와중에 임신한 것을 알게 된다. 뜨리고린은 공연을 반대하지만
공연이 한달밖에 안 남은 상태라 니나도 꼭 공연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게다가 얼마전 주연여배우였던 소피아가 급성폐렴으로 쓰러지자
연출은 아르까지나를 섭외하여 그녀가 주연배역을 맡게 된다.
뜨리고린은 더욱 안절부절 못한다. 전 연인과 아내가 한 무대에 같이 서다니.
공연을 마치고 재공연 얘기가 나올 때 니나는 임신 때문에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피아의 죽음으로 연출인 볼코프도 의지가 없다.
얼마 후, 딸을 낳은 니나. 아이를 키우며 미래를 꿈꾸는 니나.
그러나 뜨리고린의 소설이 계속 실패하자 그는 돈이 떨어지고 게다가
니나의 아이는 결핵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한다.
급기야 아르까지나에게 손을 벌리게 되면서 이 가정은 서서히 난파되어 간다.
러시아 대문호 안똔 체홉이 쓴 희곡 '갈매기'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배우들은 멋진 무대에 서는 것을 꿈꾸고, 작가들 역시 세기에 기록될 만한 작품을 꿈꾼다. 특히, 배우 지망생 니나는 유명 작가인 뜨리고린을 동경하게 되면서, 더욱 멋진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뜨리고린에 대한 동경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결국 니나는 자신의 연인인 꼬스쟈를 버리고 뜨리고린을 찾아간다.
이 부분은 희곡 '갈매기' 3막에서 4막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두 막 사이에는 2년이라는 기간이 있다. 2년간 니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지 상상가능하지만, 희곡 속에 2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그렇다면, 배우의 꿈을 갖고 연인을 배신한 채 모스크바로 간 니나는 어떻게 됐을까. 정말 니나가 원한대로 배우의 꿈을 이루고, 뜨리고린과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원작에 나오지 않는 부분을 작가 김용선은 상상력으로 채웠다.
원작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2년이라는 시간을 살펴봤을 때, 니나는 마냥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니나의 상황은 절망에 가까웠다. 멋진 세계는 늘 도처에 존재하지만, 인간의 갈망은 그곳까지 쉬이 닿을 수 없었다. 이러한 원작의 세계관을 '모스크바 갈매기'는 그대로 이어받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날 수 있는 날개가 없다고 눈물을 터뜨리는 니나의 얼굴 위로 조명이 비친다. 무언가 결심한 듯 정면을 내다보는 니나의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는 배우의 꿈이 스친다. 그 얼굴 주변으로 멋진 세계를 갈망하고 꿈꾸는 군상들의 얼굴이 모여든다. 육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갈매기처럼 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간들의 얼굴이다. 원하는 것, 사랑하는 것, 꿈꾸는 것 속에서 끊임없이 부유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현대인의 자화상과 꼭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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