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
1994년 판문점 공공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측 초소에서 격렬한 총성이 울려 퍼진다. 살인 사건이다.
어린 북한 초소병 정우진 전사가 처참하게 살해되고
남한군 김수혁과 북한국 오경필이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사건 이후 북한은 남한의 기습 테러공격으로,
남한은 북한의 납치설로 각각 엇갈린 주장을 한다.
양국은 남북한의 실무협조 하에 스위스와 스웨덴으로 구성된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책임수사관을 기용해 수사에 착수할 것을 합의하고
책임수사관으로 스위스인 지그 베르사미 소령이 파견된다.
인민군 장교출신인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베르사미는
태생을 숨기고 사건의 정황을 수사하지만, 북측 주장만을 반복하는 경필과
묵비권을 행사하는 수혁의 비협조로 수사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든다.
그러던 중 베르사미에게 아버지의 부고 소식과 함께 아버지의 일기장이
전달되고, 김수혁은 베르사미의 아버지가 한국인임을 눈치챈다.
김수혁은 남북 갈등에서 자유롭고,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베르사미라면
사건을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서서히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남한의 수혁은 왜 북한 초병을 쏘았는지, 그 자리에는 또 누가 있었는지,
그리고 북한의 오경필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그들은 왜 진실 앞에서
침묵하는지 베르사미는 이제 그 진실을 향해 조금씩 다가간다.
적도 친구도 될 수 없는 네 남자의 '피 끓는 우정'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는 전쟁과 휴전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념과 개인의 갈등이 아닌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통해 분단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가운데 놓고 마주보고 있는 네 명의 남북한 군인들, 그들은 북한초소에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었고, 일상적인 농을 주고 받으며 불가능해 보이던 '비밀연애'를 시작한다. 소꿉놀이를 하듯 따듯한 시간을 보내는 네 남자, 그들이 보여주는 친밀감의 정서는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 속 사건을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아버지 세대에 의해 만들어진 금기의 법으로 그들의 우정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지극히 사적이던 관계가 깨졌을 때 찾아오는 슬픔이 훨씬 더 크고 구체적이듯, 그들이 서로 총을 겨눠야 하는 상황은 관객들에게 크나큰 아픔을 전달한다. 김수혁 병장이 형제처럼 지내던 북한병사 오경필을 향해 총을 겨누며 "언젠가 우린 서로를 죽여야 해"라고 말하는 장면은 역사가 축적해놓은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개인이 나눈 인간적 관계가 얼마나 희비극적 모습을 보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계선 너머의 진실, 분단의 아픔을 노래하는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는 '진실을 감춤으로써 유지되는 평화의 비극'을 주제로 하는 영화와는 달리, 50년 동안 계속된 '증오의 조건반사'와 이로 인해 반복되는 비극적인 주제를 이야기한다. 때문에 영화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남북한의 '동포애'와 중립국 수사관의 개인사가 무대에서 보다 더 집중적으로 조명된다. 남북한 병사들간의 총격전에 얽힌 진실 역시 영화와 뮤지컬은 다른 전개를 보인다. 제3자인 북한 ·군관의 등장 때문이 아니라 우연한 오발사고의 총격을 들은 김수혁 병장이 반공교육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면서 일어난 참극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20여 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받아온 반공교육의 흔적이 한밤중에 터진 총성을 신호로 자기도 모르게 고스란히 되살아난 순간인 것. 이 비극은 50년 전, 베르사미의 아버지와 삼촌에게 일어났던 참혹한 과거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포로수용소에서 이데올로기가 다른 양 집단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형제간 비극. 이 두 가지 사건은 본 작품의 주제를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원작 소설 <DMZ>가 출판된 지 벌써 16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한지도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이 비극적 드라마가 현재까지 오페라, 뮤지컬 등의 새로운 장르로 계속해서 재탄생될 수 있는 것은 21세기 유일한 '분단 국가 '한국'의 본질적 고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한편의 미스터리이자 휴먼 코미디. 네 남자의 멜로드라마이자 한 이방인의 가족사이기도 한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 병사간의 인간적 유대와 금기된 우정이라는 판타지와 함께 아버지 세대의 전쟁과 증오가 다음 세대에까지 여전히 이어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사건에 연루된 네 명의 남북군인, 중립국 수사관 등 작품 속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평화'가 아닌 '휴전'의 상황에서 6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우리들 역시 쉽게 끊을 수 없는 역사의 고리에 묶여 있음을 상기시킨다. 전쟁에 대해 너무 쉽게 이야기 하면서도 여전히 '전쟁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분단국가, 그 안에 살고 있는 관객들은 뮤지컬 <공동경비 구역 JSA>에서 '누가' 총을 쏘았는가 보다 '왜' 총을 쏘았는가에 대한 진실을 알아채는 순간, 가슴을 짓누르는 암담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이 참혹한 역사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따뜻한 핏줄'에 대한 '뜨거운 형제애 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작가의 글 - 박상연
1999년이었다. 세기말, 밀레니엄 이런 단어들이 신문지상과 인터넷에 넘치던 시절. 1994년에 집필하고 1996년에 발표된 나의 첫 소설 (DMZ)는 영화화를 위한 시나리오 작업이 한창이었다. 나는 영화의 개봉을 2000년 1월 1일로 하여 2000년대 첫 영화로 만들겠다는 명필름의 계획에 덩달아 설레며 기대하고 있던 28살의 젊은 작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1월 1일 개봉은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에도 이런 식으로 연기되다가 영화제작 자체가 결국 무산되었던 경험이 있어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제작자에게 이런 우려를 이야기 했더니, 멋진 대답이 돌아왔다. "에이... 통일 전에만 만들면 되죠" 그래, 내 이야기는 통일 전까진 유효한 이야기일 것이니. 맞는 말이었다. 알다시피 영화는 결국 2000년 9월 9일 개봉했고 당시로선 엄청난 히트를 했다. 영화 개봉하기 석 달전, 거짓말처럼 남북정상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뜨거운 포옹을 했고, 우리 영화의 히트는 그 통일의 열기에 힘입은 바 있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고 그에 감사했다. 해서 분단 반세기를 끝맺음하는데, 우리 영화가 조그마한 힘이라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14년이 흘렀다. 하여 2014년. 통일이 되기는커녕, 분단은 더욱 차갑게 견고해졌고 서로를 바라보는 남북 사람들의 시선엔 더욱 시퍼렇게 날이 섰다. 이런 시대에 나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여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작년 말에 있었던 시범공연을 보며 멋진 배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와 노래, 원작보다 더 원작의 주제를 천착하는 집요한 각본, 이 모두를 아우르는 연출에 감동했지만 그보다 더 내 마음을 울린 것은 18년 전 집필한 내 이야기에 관객들이 울고 웃으며 뜨거운 열기를 보인 것이었다. 내 이야기가 아직도 살아 있음에 기뻤고 내 이야기가 아직도 절절하게 유효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엔 아팠다. 언젠가 내 이야기가 철지난 유행가처럼 골방에 쳐 박혀 낡아버리길 바란다. 하지만 그날까지 우리는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며 아플 것이다.
2014년의 관객 여러분들께. 남북병사들의 즐거운 한 때를 보며, 맘껏 웃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만큼 아프고 아프실 거예요.
박상연 작가의 소설 「DMZ」를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한 동명의 영화가 있긴 하지만 영화보다는 원작 소설에 가까운 내용이다. 2013년 쇼케이스 공연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3연을 올렸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다른 점은, 이영애가 연기한 스위스 장교(소피) 역을 원작 소설(베르사미)대로 남자가 맡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