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조병 '이혼연습 '
건축설계사 이철우와 사진작가 천이숙 부부는 고르비의 개방정책 직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로 연결되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망망한 대평원을 함께 여행한다. 철우는 시베리아횡단철도 주변도시를
답사하고, 이숙은 스탈린 때 강제이송된 선조의 발자취를 사진에 담는 것이
목적이다. 부부는 여행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많은 의견충돌을 빚는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귀국 후 갈등이 증폭되어 드디어 별거하게 된다.
철우는 이상적 건축도시를 구상하다가 남들이 백치라고 하는 여인 니나를
만나는데, 그녀에게서 남성을 강하게 자극하는 백치미를 발견해 창조적
영감을 얻어 <백치미 도시건축 니나타운> 마스터 플랜을 설계한다.
아내 이숙은 아프리카에 가서 란제리 광고 사진촬영을 하는 등 독특한
아이디어를 실천하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 그러고 꽃미남 안철수를 만나
그의 건강하고 순수한 인물에 호감을 갖는다. 이철우와 천이숙은 각자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면서도 그 도전 시각 때문에 항상 충돌한다.
두 부부의 갈등은 여느 부부처럼 일상의 어긋남이나 권태기가 아니다.
일상과 예술이라는 인생의 두 목표를 성취시키려는 욕망이다.
부부로서 육체의 의미와 창작자로서 육체의 자유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철우는 이상적 건축도시를 구상하다가 남들이 백치미의 여인을 만나 건축플랜을 완성하고, 아내 이숙은 란제리 광고사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발휘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부부는 각자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면서도, 그 도전 열기 때문에 항상 충돌한다. 그런데, 이 두 부부의 갈등은 여느 부부처럼 일상생활의 어긋남이나 권태기의 현상이 아니다. 일상과 예술이라는 인생의 두 목표를 성취시키려는 욕망이 있고, 세계여행에서 개안되는 과정의 충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부부로서 육체의 의미와 창작자로서 육체의 자유가 요구되는 시뮬라르크의 충돌인 것이다. 남녀 관계, 즉 부부를 주체로 해서 상대에 대한 실체와 환상을 다루고 있다. 현실과 상상이 어떻게 충돌하는가. 그리고 부단하게 계속되는 시뮬라르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것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연극의 주제와 형식과 공간을 탐색한 노력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육체를 이성이며 영혼의 집으로 존중하면서, 육체에서 창조의 에너지를 얻어내는 실천을 주제로 하고있다. 이 경우 육체를 경멸하면서 탐닉하는 기존의 사상과 충돌한다. 이 충돌과 반성이 연극의 핵심사상이다. 부부 두 사람, 건축가와 사진작가의 창조적 작업과 내면 심리를 <달의 이미지>와 <해의 이미지>라는 기능적 남편의 <도시건축 마스터플랜>과 아내의 <란제리 광고 사진의 반란>이 <달과 해의 이미지 공간>에서 충돌하게 하여 기존의 정신우위에 반하는 "육체는 단순한 육체가 아니고, 이성과 평화와 창조의 강한 에너지"라는 육체우위의 중심주제를 시각화한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주제는 인간의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에 대한 긍정적 탐색이다. 기존의 정신 우위 와는 다르게 육체는 단순한 육체가 아니고 이성이면서 창조의 강한 에너지로 바라보면서 건축사와 사진작가 부부의 일상과 창작 사이의 충돌과 선택을 메타연극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性시뮬라르크"라는 부제를 붙힌 것이다.
이혼연습 - 性시뮬라르크 - 윤조병 작가
-시뮬라르크(Simulacres)는 장 보드리아르가 내놓은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의 핵심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인데 이미지에 오히려 현실적이 된다. 나는 사람의 이미지가 혹은 환상이 확대되면서 현실을 지배한다는 생각으로 엮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무대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한 회의 공연이 끝나고 극장 로비에서 찾아준 관객과 친지를 향해 미소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소원이다. 작품을 쓰는 동안에는 고통 속에서도 삶의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연습에 들어가고, 공연이 다가오고, 드디어 막이 오르는 순간이면 왜 그리도 숨쉬기 어렵게 졸아드는지 모를 일이다. 데뷔 이후 36해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부끄럽고 민망해서 도망가고 싶었다. 성격이든 병이든 고쳐야 하는데 걱정이다. 90년부터 작품을 쓰는 일이나 무대에 올리는 일이 뜸했다. 인천시립극단을 6년여에 걸쳐 만들어 운영하면서, 인천에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서구문화회관, 수봉소공연장 등 여러 공연 공간을 건립하는데 직간접적으로 역할을 하느라고 매우 바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변화, 발전해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힘들게 했다. 급변하는 세상, 급변하는 예술을 수용하기가 벅찼다. 차세대 작가와 관객의 자유분방한 모습에 숨이 가빴다. 내가 쓰는 체질적 형식에 회의를 갖게 되고,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체질을 개선해야한다는 필연적 요구가 나를 괴롭혔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자 자극과 충격으로 치닫는 현실이 나를 괴롭혔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작가들이 겪고 있는 고민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허우적거려야 했다. 허우적거리는 동안, 연극원에서 연구실을 주어 제자들과 함께 공부했다. 제자들에게 창작을 강권하면서 고민만 하고 있을 수 없어, 혼자서 몰래 꼬물꼬물 십여 편의 초고를 써왔다. 그러나 공연하기에는, 고민한 실체가 없어, 언제나 아쉽고 부끄러워, 극단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고, 책장구석에 감췄다. 미안하고 슬펐다. 교직 전문가가 아닌데 학생을 맡긴 학교와 학생을 위해 가르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면서 견뎠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여석기 선생님과 전화통화하던 중에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요즘 작품 안 써요? 작가로 교수하는 건데 작품을 쓰지 않으면 쫓겨나요!' 그 순간 폭탄을 맞은 듯 정신을 차렸다. 그날부터 초고를 꺼내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 공연되는 신작 <이혼연습- 性시뮬라르크>와 이어서 서울공연예술제에서 공연될 <세상 어머니의 노래>는 그렇게 해서 용기 내어 만든 것이다. 오래참고 기다렸다가 서툰 희곡을 제작, 연출해주시는 극단뿌리 대표 김도훈 선생님, 일인다역과 여러가지 어려운 주문을 표현해주시는 연기자 윤여성과 김희령 두 분, 그리고 오랜 만에 내놓은 졸작을 공연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