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솔제니친 '여인과 수인'

clint 2025. 4. 26. 05:26

 

 

막이 오르면 작업장으로 출동하는 죄수들의 행렬이 시작되고,

모스크바 교외에서 새로 이송되어 온 남녀 죄수들이 간수의 호령에 따라

각각 이름과 나이, 죄명, 선고연한 등을 신고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네모프라는 전직 장교가 등장한다. 그는 최근까지 일선에서 목숨을 내걸고

싸우던 양심적인 인텔리 청년이다. 그러기에 그의 양심과 지성은 끝내 불법과

무지가 판치는 수용소의 현실과 타협을 못한다.

그는 결국 파렴치범으로 잡혀온 호미치라는 처세술이 능란한 죄수에게

생산주임이라는 자리를 빼앗기고 일반죄수로 전락한다.

네모프에 대극되는 여자로 용모가 아름다운 여죄수 류바가 등장한다.

네모프와 류바는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두 남녀의 사랑은, 같은 죄수의 신분이면서도 수용소장 못지 않게 권력을 가진

의사 메레슈춘의 노여움을 사서, 네모프는 딴 수용소로 추방될 운명에 빠진다.

여기서 류바는 네모프를 위해 수용소 의사에게 자진해서 몸을 허락하고,

네모프는 의사와 함께 류바를 공유해야 하는 비극에 이르고 만다.

 

 

 

<여인과 수인> (원제 - '사슴과 라게리의 여인')은 솔제니친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유일한 장막극이다. 1945년 2차 대전 직후 러시아의 라게리(수용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그들 사이에 갈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주인공들의 사랑과 좌절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여러 가지 가치들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솔제니친이 이 희곡을 쓰기는 1954년 그가 8년간의 기나긴 형기를 마치고,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되어 그곳 유형지에서 중학교 선생으로 있을 때였다. 솔제니친은 1962년 12월 이 희곡의 상연을 위해 모스크바의 현대인극장에 이 희곡을 넘겼고, 극장 측에서도 최종연습까지 마쳤지만, 갑자기 상부의 명령에 의해 공연이 중지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 희곡은 지하출판으로 복사되어 나돌다가 서방으로 새어나왔다.

 

 

 

이 희곡작품 역시 1945년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희곡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남녀 죄수간의 비극적인 사랑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 이 죄수들 개개인의 운명을 통해 솔제니친이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58조의 죄목으로 들어온 순수한 정치범들과 파렴치범으로 잡혀 들어온 형사범들 사이의 숙명적인 갈등과 증오이고 이와 같은 비인간적인 대우는 결국 비인간성을 보증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솔제니친은 이 희곡을 통해 '99명이 울고 한 사람만이 웃는다.'는 수용소의 또 한 면의 세계를 예술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한 것이고, 소설 뿐만 아니라, 희곡작가로서도 박력 있는 야심과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고 할 것이다.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에 힘입어 소련문예지 노브이 미르에 실릴 수 있었던 그의 처녀작이며 노벨상 수상작인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제외한 그의 모든 다른 작품들과 같이 이 희곡도 지하에서 회람되며 읽혀지던 원고가 몰래 서구로 보내져서 비로소 햇빛을 보게되었다. 이 희곡은 처음 69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그라니誌에 실리게 되었으며 같은 해 영어로 옮겨져 미국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던 것이다. 다음 해인 70년 이 희곡은 미네아폴리스의 '타이론 구드리'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74년 브로드웨이에서도 상연되어 호평을 받았다. 
제2차대전이 끝날 무렵인 45년 2월 소련 야전군대위로 근무할 때 친구에게 보낸 서한에서 스탈린에 대한 모독적 문귀를 썼다는 이유로 군 첩보기관인 스메르쉬에 체포되어 8년간의 노동수용소생활과 3년간의 유배생활을 보낸 솔제니친의 경험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군도>에서와 같이 이 작품에서도 소재가 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특히 자전적요소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솔제니친 문학의 위대성은 그가 노동수용소로 상징되는 스탈리니즘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고발자라는 역할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널리 인간사회 전반에 통하는 진실을 인간정신에 대한 뜨거운 신뢰와 애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야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