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제스로 컴튼 재구성 '벙커 트릴로지- 맥베스'

clint 2025. 4. 17. 09:51

 

 

피로 얼룩진 현장을 뒤로한 채, 맥베스는 최전방에 갇혀있다. 

그가 저지른 핏빛 진실은 셰익스피어 최고의 킬러 앞에 완전히 굴복 당했고, 

묘령의 마녀들은 그를 기억 속 가장 깊은 곳으로 몰고 간다. 

적들이 나타나 무인지대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하고 

하늘에서는 박격포가 떨어져 참호를 공격한다. 

그러나 맥베스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벙커 안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바로 그 남자 맥더프다.

 

 

 

짧지만 비극성이 강한 짙은 작품으로 인정받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원작의 의도가 충분히 응축된 제스로 컴튼의 각색으로,

주인공의 깊은 내면 동기와 그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광기를 더해가는 맥베스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게다가 매정한 캐릭터들이 인간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인물들 간의 경계와 친밀함도 담아냈다.
재구성힌 제스로 컴튼은 최고의 연출가답게 정확하며 섬세한 연출을 선보인다. 

그리하여 이 셰익스피어의 야심한 스코틀랜드 비극은 가스로 찬 참호 속에서 

망상과 기억을 다룬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 관객들을 긴장시킨다.

 

 


<벙커 트릴로지>는 이미 지난 2014년 서울 국제공연예술제(SPAF)를 통해 영국 오리지널 팀의 공연으로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다. 당시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무대 위에 지어진 진짜 벙커는 관객들에게 전쟁의 충격과 공포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현대로 재구성한 연극으로 제1차 세계대전 가운데 벙커 안에 모인 고전 작품 속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원작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작품 중 비교적 짧은 작품이며, 사건이 신속하게 집약적으로 전개되는 특성이 있다. 작품의 구성을 보면 부차적 사건(sub-plot)이 없고 플롯은 오로지 주인공 <맥베스>에게 집중되고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주의는 <맥베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극은 주인공 한 사람에 대한 분석 이상의 그 무엇을 제공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맥베스>의 왕위 찬탈 과정에서 보는 것처럼 마녀들의 예언이 곧장 현실로 이루어지는 등 사건이 속도감 있게 집약적으로 전개되어 관객에게 강렬하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벙커 트릴로지- 맥베스에서도 그 느낌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