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아리엘 도르프만 '죽음과 소녀'

clint 2024. 3. 27. 05:50

 

 

군사독재 정권이 난무하던 시절, 운동권에서 활약하다 모처에 납치되어

심한 성적 고문을 받았던 빠울리나는 어설픈 민주화의 물결이 이는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극심한 과거에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유망한 변호사인 그녀의 남편 헤라르토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해변가의 별장으로 돌아오는길에 자동차가 고장나 의사 로베르또의

도움을 받는데 늦은 시간에 로베르뜨의 방문을 받는다.

로베르뜨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자신을 고문했던 의사라고 확신한

빠울리나는 그의 차를 수색하여 그가 자신을 고문할 때 틀어주곤 했던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의 테이프를 발견하고

그를 범인으로 확증한다.

남편이 잠든 사이 빠울리나는 옆방에 묵고있던 로베르뜨를 결박하고

과거의 죄를 고백하라며 권총을 겨눈다. 위협에 눌린 로베르뜨가

진술서를 작성하고 육성녹음을 마치자 빠울리나는 죄를 고백하면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그를 살려둘 수 없다며 총을 겨눈다.

그러나 자신의 무고함과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폭력의 악순환을 저주하는

로베르또 앞에서 그녀는 희생양으로서의 무력감과 회의에 빠진다.

 

 

 

 

"죽음과 소녀"는 칠레의 작가 아리엘 돌프만이 1991년 발표하여

세계 24개국에서 절찬리에 공연되고 있는 대표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2년, 극단 미추가 국내 최초로 이 작품에 관한 일체의 저작권을

소유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무대화하여 크게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를 들으며 성폭행을 당한 기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주인공이 우연히 자신을 고문했던 의사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극 전편에

슈베르트의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타협과 양보, 용서와 화해라는

이름하에 순환하는 인간의 삶을 그려낸다.

73년, 조국인 칠레가 쿠데타로 인해 군부 독재가 시작되면서 망명 생활했던

작가가 정치와 폭력에 얽혀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독재 - 민주화 겪었던 칠레의 이 작품이기에 우리 정서에도

쉽게  어울어지는 것 같다.

아리엘 도프만의 희곡은 91년 런던에서 초연, 로렌스 올리비에 상을 수상하는 등 선풍적인 여세를 몰고 왔으며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마이크 니콜슨 연출에 글렌 클로즈, 진 해크만, 리차드 드레이퓨스 등 호화 배역진에 의해 공연되어 토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극단 미추 공연사진

 

 

단순히 정치와 역사가 아니라 역사 안에 사는 인간 개인의 문제를 파헤친다는 점에 있어서 그의 작품은 시대초월적인 보편성을 지닌다. 또한 대사 자체도 매우 시적이어서 그것이 그리는 이미지, 혹은 간간히 느껴지는 운율이 지나침 없이 아름답다. 작가가 모든 시간이 멈추고 한두 인물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들이 가지는 마술적인 시간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장면들은 가장 작은 소리, 가장 작은 빛이 작품 전체를 채우기도 한다. 또한 캐릭터의 설정에 있어서도 인물 각각의 멜로적 성향이 작품 전체적인 객관성에 큰 흠을 내지 않는 정도에서 제한되어 있다. 또한 사건의 서스펜스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 대사 하나하나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이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 <죽음과 소녀>는 경우는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시고니 위버와 벤 킹슬리, 스튜어트 윌슨이 열연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 (원제, Death and the Maiden, 1994)

 

 

 

<죽음과 소녀> 작가후기 中

"여성들이 권력을 잡으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당신이 택한 가면이 당신의 얼굴과 똑같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진실을 말할 수 있겠는가? 기억은 어떻게 우리를 속이고, 구원하며, 우리에게 길을 인도하는가? 우리가 일단 악을 맛보고 난 뒤 자신의 순진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우리를 돌이킬 수 없게 상처입힌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정치적이지만 정치 팸플릿과는 다른 언어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대중적인 동시에 애매한 이야기들, 다수의 청중이 이해하지만 양식상의 실험이 담겨 있고 또 신비하지만 동시에 피부에 와 닿는 인간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해낼 것인가?

 

 

 

아리엘 도르프만은 1942년생으로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칠레작가이다. 그는 살바도르 알렌데정부를 전복시킨 1973년의 군사혁명 이후 망명생활에 접어들었다. 그의 많은 저서들은 세계각국의 2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영어로 출간된 저서들로는 논픽션으로 "도널드 덕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How To Read Donald Duck", 1971. 아만드 마텔라트와 공저임), "왕국의 헌옷" ("The Empire's Old Clothes", 1983) "미래에 대해 쓰다" ("Some Write to the Future", 1991) 등이 있고 소설로는 "미망인들" ("Widows" 1983) "매뉴얼 센데로의 마지막 노래" ("The Last Song of Manuel Sendero", 1986) "마스카라" ("Mascara" 1988) "폭우" ("Hard Rain" 1990)가 있으며 단편집으로는 "불타는 나의 집" ("My House is on Fire", 1990)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와 망명과 실종의 시" ("The Last Wlatz in Santiago and Poem of Exile and Disappearance" 1988) 또 희곡으로는 "미망인들" (Widows), "독자" (Reader) 그리고 "죽음과 소녀" (Death and the Mainden)가 있다. 도르프만은 듀크대학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 교수로 재직중에 있으며 또한 그는 뉴욕타임즈, L.A 타임즈, 내이션, 빌리지 보이스, 그리고 전세계의 주요 일간지에 정기적으로 기고를 하고 있다. 그는 로스캐롤라이나의 덜함(Durham)과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부인과 두아들과 살고 있다. 

 

아리엘 도르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