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피터 바이스 '망명 중의 트로츠키'

clint 2024. 2. 19. 05:47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불화, 학교에서는 선동가, 독재치하에서는 혁명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인민의 적인 반혁명분자, 자본주의로부터는 위험한 혁명수출업자로 낙인찍힌 채 지구상의 어느 정권으로부터도 안주지를 구할 수 없었던 유랑의 혁명가. 개방과 변혁을 추구했던 고르바초프 시대에도 부정적으로 언급되었던(그 전에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역사에서 영원히 미복권된 인물 트로츠키. 그의 이름은 언제나 숙청을 예고하는 장송곡처럼 피를 불러 왔다.
1인자가 되기에는 덕이 모자랐고, 2인자로 남기에는 너무 열정적인 이론가였던 이 혁명가는 함께 고통을 나눌 줄 알았으나, 동지와 같이 투쟁으로 얻어진 열매를 나눠 먹을 줄은 몰랐던가(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명 콤비를 비교해 보라).
정통 사회주의 정권 아래서 영원한 반역자였던 트로츠키가 문학적으로 재조명되기는 독일의 페터 바이스의 희곡<망명의 트로츠키>공연(1970)부터였다. 바르샤바조약군의체코 침공(1968)을 “전술적 오류”라고 비판적으로 지지했던 바이스는 유대인으로서 이스라엘의 생존권은 인정하나 중동전은 반대한 특이한 시각으로 세계사를 바라보며 부르주아혁명을 거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의 가능성과 특히 제3세계의 영구혁명을 주창했던 트로츠키를 부각시켜 스탈리니즘 일변도의 사회주의를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트로츠키즘 이론의 선구자인 아이작 도이처의 관점(유명한 3부작<무장한 예언자><무장해제된 예언자><추방당한 예언자>)에다 1970년대적인 국제사회주의운동 방향을 양념으로 쳐 넣은 이 걸작은 전2막 15장면을 교묘히 구성하여 비극적인 혁명가 트로츠키의 전생애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본명이 래프 다비도비치 브론슈테인으로 “위대한 예술가”(도이처)인, 이 러시아에서는 보기 드문 유대인 부농집안의 말썽꾸러기가 독일어 트로츠(Trotz:반항, 완고, 고집, 과감, 기민)를 자신의 가명으로 쓴 것은 1902년 시베리아에서 탈출하여 가짜여권을 만들 때였다. 옥중결혼한 6년 연상의 아내(알렉산드라 소콜로프스카야)와 두 딸을 유형지에 둔 채 트로츠키는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영국 벨기에 미국 핀란드 등 가는 곳마다 추방당하며 전전했는데, 파리에서는 일생의 동반자인 나탈리아 세도바와 만나게 되었다. 본처와의 공식적인 이별의 절차를 밟지도 않은 이 기묘한 관계는 일생 동안 지속되어 세도바와의 사이에서는 두 아들을 남겼다.

 

 

 

 

“내가 살아 숨쉬는 한, 나는 미래를 위해 싸울 것이다”라고 선언한 그는

국제사회주의운동 시절에는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갈등 속에서,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레닌과 스탈린 사이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트로츠하게’ 주장한 독불장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혁명의 방법, 당조직, 프롤레타리아 예술관 등에서 레닌과 견해를

분명히 달리했고, 일국사회주의와 영구혁명론으로 스탈린과 정면 대결했던

트로츠키를 바이스는 “이성에의 신앙, 인간의 연대에 대한 신앙을

도저히 방기할 수 없는” 영원한 혁명가로 보면서,

그가 저질렀던 끔찍한 실수인, 제1차대전 말기 때 독일과의 강화를 위한

브레스트리토프스크조약은 비켜간다 (샤트로프의 희곡<브레스트의 평화>는

레닌과 대립적인 트로츠키의 입장을 그려준다).

그뿐 아니라 만년에 멕시코에다 자신의 망명처를 제공해준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라기보다는 자유로운 동거인) 프리다와의

짧지만 주책에 가까웠던 연애도 생략한다.

1920년대 초기까지는 레닌과 나란히 초상화가 걸릴 정도였던 그는

레닌이 죽은 뒤 조국에서도 쫓겨나 터키 프랑스 멕시코를 옮겨 다닌다.

계속되는 위협과 트로츠키스트 숙청으로 존 듀이를 대표로 하는

진상조사 국제위원회까지 조직되었지만 별 진전이 없는 가운데

스탈린의 첩자 라몬 메르카데르로부터 등산용 얼음도끼에 찍혀 최후를 맞았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메드베제프) 이 혁명가는 아마 스탈린의 암흑정치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대포장되어 레닌­스탈린의 대안으로서 레닌­트로츠키 노선에 대한 미련과 환상을 남겼는지 모른다. 실제로 알렉세이 톨스토이는<빵>에서 국내전 당시 트로츠키의 업적을 깎 아내리면서 스탈린의 공로를 과장했는데, 이런 역사의 왜곡에 대한 냉철한 비판작업이<아르바트의 아이들>인지도 모른다. 스탈린을 비판적으로 본 이 소설은 트로츠키에 대해서는 더 냉소적인데, 이런 시각은 바로<역사가 판단하게 하라>와 어느 부분에서는 일치하는 대목이다. 즉 사회주의의 원형 찾기에서 스탈린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서구에서 내세우는 트로츠키는 오히려 스탈린보다 더 잘못된 노선임을 밝힌 것이 이 계열의 주장인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개인의 탁월한 능력도 당조직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무력하며, 어떤 당조직도 한 개인의 사조직으로 전락하면 부패한다는 교훈을 트로츠키와 스탈린은 보여주며, 그 이상적인 원형으로는 아직도 레닌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음을 이 분야의 문학작품들은 시사하고 있다.

 

트로츠키

 

 

트로츠키에 대한 논의는 스탈린이 실각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금지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작품으로나마 트로츠키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를 통해 러시아 혁명의 문제점과 스탈린주의의 반사회주의적 행위들을 폭로한 바이스의 노력은 값진 것이라 할만하다. 역사를 확정된 사실들의 기록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연극을 통한 반성의 계기로 삼음으로써 현재의 시대적 문제들과 씨름하려는 그의 자세 속에서 우리는 리얼리즘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 값진 것은 마르크스주의 문학ㆍ예술이론의 관심 밖이었거나 부정의 대상이었던 이질적 연극 언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비판적 연극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