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성(城)'
카프카의 성(城)은 베일에 싸여 있는 절대자다.
절대자는 신으로 볼 수도 있고,
권력의지, 국가, 관료제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실존적 한계로 볼 수도 있다.
<성>은 작가의 체험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 속 주인공 K는 카프카 본인의 이니셜을 딴 것이다.
카프카의 또 다른 대표작인 <소송>의 주인공이 K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 작품에서의 K는 이름도 요제프로 같다.
그런 면에서 <성>과 <소송>은 연작의 성격이 짙다.
<성>은 행정적 측면에서 국가와 현대사회의 소통과 소외문제를
다루고 있고 <소송>은 사법적 측면에서 이 주제를 들여다본다.
<성>은 벽 너머에 있는 절대자와 소통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다.
성은 절대적으로 고립된 존재다.
성(Das Schloss)은 프란츠 카프카의 마지막 소설이다 .
그 안에는 "K"로만 알려진 주인공이 있다. 마을에 도착한
그는 웨스트 백작이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에서 마을을
다스리는 신비한 당국에 접근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카프카는 작업을 끝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사후에 출판되었다. (1926년)
어둡고 때로는 초현실적인 성은 소외, 무반응 관료제, 불투명하고
임의적인 통제 시스템으로 비즈니스를 수행하려는 좌절감,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의 헛된 추구에 관한 것으로 종종 이해된다.
마을은 성에 완벽하게 종속되어 있다.
성을 다스리는 베스트 백작의 허가 없이는
마을에서 숙박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K는 성 사람들과 국적이 다른 이방인이다.
성의 통치권은 그에게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성의 권위에 도전적이다.
숙박을 위해 찾아간 여관에서 아무런 절차도 없이
빈자리를 찾아서 잠을 청한 것은
그의 독립성과 자유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의도는 처음부터 빗나간다.
슈바르처는 그를 막무가내로 깨운다.
그리고 성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그에게 즉각 퇴실을 명령한다.
슈바르처가 성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렇지만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의 권력적 속성으로 볼 때
슈바르쳐의 태도는 매우 자연스럽다.
성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마을 사람 모두에게 부과된 보편적 의무이며,
따라서 성의 규율을 준수하지 않는 이방인을 강제 출국시키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성과 K의 관계는 시작부터 마찰적이다.
K가 자신은 성으로부터 초빙 받은 측량기사라고 신분을 밝히면서
상황은 바뀐다. 초빙을 받았다는 것은 국가가 비자를 발급했다는
것이다. 슈바르처는 성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와 같다.
전화를 받은 프리츠라는 말단 관리가 오케이 사인을 낸다.
이것으로 K의 입국에 대한 정당성은 어느 정도 인정된다.
그러나 K는 공식적인 서류를 지참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K의 입국을 둘러싼 위법 시비는 끝까지 K를 괴롭힌다.
절대자에게 귀의한 후에도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 한계 때문에
늘 고뇌하고, 씨름하고, 다툰다.
성에 소속된 마을을 구성하는 요소는 여관, 술집, 학교, 교회 등이다.
마을은 공동체의 제2, 제3섹터인 시장과 시민사회다.
그곳에서는 각종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욕망이 생산되고, 거래된다.
욕망은 무한정한 속성을 갖고 있다. 자체적 규율도 없다.
시장과 국가(성)는 욕망을 매개로 대립과 협력, 지배와 종속,
자유와 억압의 관계를 유지한다.
여관집 주인은 K에게 성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 권력에 대해 경고한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그러나 K는 자신은 자유로운 존재라고 하면서
주인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한다. 그리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을에 대한 관찰, 시찰, 탐험에 나선다. 목적은 성으로 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성은 막혀 있다. 아니 길 자체가 없다.
마을의 큰 길은 성이 있는 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K는 현실적 적응력이 빠르다. 그는 성으로 가는 희망을 포기하고
마을의 작은 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마을에서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그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연히 찾아든 민가에서 그는 가차 없이 쫓겨난다.
여관에 도착한 K는 조수들을 만난다. 조수들은 클람이 K에게 배치한 것이다.
배치는 중요한 권력 작용이다.
조수로 배치된 아르투르와 예레미아스는 K의 조력자가 아니라 권력자의 눈이다.
그들은 측량의 측자도 모른다. 단지 권력에 의해 K의 조수로 배치되었을 뿐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K를 관찰하고 감시한다.
아르투르와 예레미아스는 성에서 막 발령을 받고 마을로 내려오던 길에
민가에서 쫓겨난 K를 봤다. 하지만 그를 외면한 채 여관으로 가버린다.
권력 작용은 냉엄하다. 한편으로 조수들은 K가 성에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기도 하다. K는 조수들에게 매우 엄격하다.
그들을 결코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화가 날 때는 채찍을 휘두르기도 한다.
K는 조수들을 통해 성에 진입하고자 하지만 또 다시 실패한다. 성은 애당초
그에게 열려 있지 않다. K는 성에 초빙되었지만 결코 진입을 할 수는 없다.
그는 그저 영원한 측량기사일 뿐이다.
그에게 허락된 것은 측량이지 진입은 아니다.
언제쯤 성에 들어갈 수 있냐는 물음에 대한 성의 대답은 절대불가다.
그래도 K는 포기하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심부름꾼 바르나바스는 K가 발견한 첫 번째 희망의 문이다.
그는 클람의 명령을 K에게 전달하는 전령이다.
클람은 정치적으로 성을 대표하는 고위 관료다.
클람보다 더 높은 고위직은 등장하지 않는다.
성의 주인인 베스트 백작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백작은 절대적 권력을 상징하고, 클람은 그의 대리인이다.
클람은 바르나바스를 통해 K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클람은 이 편지에서 “K는 백작의 성에서 근무하도록 고용되었으며,
K의 직속상관은 마을의 면장”이라고 말한다.
K는 이로써 자신의 입국에 대한 완벽한 합법성이 확인되었다고 기뻐한다.
물론 이것은 그의 착각이다.
늦은 밤이었지만 K는 편지를 전해주고 돌아가는 바르나바스를 따라 나선다.
그의 뒤를 쫓아가면 성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그러나 바르나바스가 간 곳은 그의 집이다.
K는 실망한다. 위안인 것은 바르나바스의 누이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바르나바스의 누나 올가와 여동생 아말리아는
K의 애인 프리다와 함께 작품 속의 핵심 인물로 등장한다.
K는 올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여관, 신사관으로 간다.
그곳은 성에서 근무하는 관료들의 전용 숙소다.
그러나 신사관은 K에게 더 높은 장벽이다. 주인은 K를 가로막는다.
K는 자신이 성안에 연고자를 갖고 있으며 장래에는 더욱 더 중요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며 은근히 주인을 압박한다.
주인은 K의 말에 다소 흔들린다. 규율을 앞세우긴 하지만 타협의 여지를 남긴다.
K는 부속 건물인 술집으로 먼저 들어간다. K는 거기서 프리다를 만난다.
프리다는 클람에 대한 객실 서비스를 전담하는 여자 종업원이다.
클람의 애인으로 알려져 있다. K와 프리다는 서로를 유혹한다.
K는 프리다를 클람에 다가가는 채널로 활용할 속셈이고,
프리다는 의도적으로 스캔들을 일으켜 애정이 식어가는 클람에게
자신의 가치를 재확인시켜주겠다는 계산이다.
서로의 전략적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프리다는 하급 여관의 말단 여사원으로 일하다가 클람의 눈에 띄어
고급 여관의 책임자급 직원으로 승진했다. 프리다는 권력의 속성과
관료들의 심리를 읽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프리다는 K로 하여금 벽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클람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의 고유한 자산으로 K를 당기는 술책이다.
프리다는 K와 단둘이 있기 위해 술집에서 잡담하던 클람의 하인들을
모두 밖으로 내쫓는다. 그녀는 “클람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클람의 애인인 프리다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K와 프리다는 밤새 바닥을 뒹굴면서 사랑을 나눈다.
프리다는 K에게 헌신적이다. 그러나 그녀의 헌신성은 계획된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클람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K는 권력에 대한 프리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조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이러한 의도가 읽힌다.
조수들은 클람이 파견했다. 조수들을 못마땅해 하는 K에게 프리다는
오히려 충실한 일꾼들이라며 그들을 옹호한다.
K는 마을 면장을 찾아간다. 직무의 범위와 보수 등을 협의하기 위해서다.
면장으로서도 K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그는 성에서 초빙한 측량기사다.
사실을 따지자면 면장 자신이 불리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타협안을 제시한다.
K를 학교 관리인으로 임명하기로 한 것이다.
K에게 면장의 인사발령 통지서를 전달한 사람은 학교의 남자 선생이다.
그는 면장이 작성한 조서를 보았다면서 K에게 호의를 베푼 면장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말한다. 말이 관리자이지 K의 임무는 소사이다.
매일같이 교실 두 개를 청소하고, 난로를 때고, 학교 건물과 비품
또는 체조 기구를 직접 수리하고, 길에 쌓인 눈을 치우고,
선생들의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다.
학교 관리를 하는 대가로 K에게 주어지는 것은 잠자리와 식사다.
당장 보수는 지급되지 않는다. 한 달간의 근무 성적을 본 후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 K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안이다.
비정규직에다 무급이라니, 이건 명백한 자본과 권력의 횡포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가 처참하게 짓밟힌다.
그러나 당장 여관에서 쫓겨나면 잠잘 곳이 없다는 프리다의 눈물겨운
호소 때문에 K는 타협안을 받아들인다.
학교로 거처를 옮긴 후에도 프리다는 여전히 조수들에게 관대하다.
잠을 잘 때 조수 하나가 그녀를 덮칠 정도로 무례하게 굴지만
너그럽게 받아들이다. 그러나 K는 다르다.
유화적인 태도는 그와 거리가 멀다. K는 강경책으로 일관한다.
K는 프리다와 조수들이 한통속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난방용 장작을 꺼내기 위해 창고 문을 부수는 사건이
K와 프리다, 조수들 사이를 갈라놓는 결정적인 파국의 계기가 된다.
장작을 양껏 피우자 추웠던 교실은 셔츠를 입지 않아도 될 정도로 뜨거워진다.
잠자리의 질서가 문란해진다. K는 프리다 대신 조수 한 명이 자신의 옆자리에
누워있는 걸 보고 주먹으로 갈긴다. 조수는 나가떨어진다.
아침에 출근한 선생은 부서진 창고 문을 보고 노발대발한다.
누구 짓이냐고, 당장 죽여 버리겠다고 길길이 뛴다.
조수들은 K를 지목한다. K는 프리다가 조수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고 권력의 은밀한 음모를 폭로한다.
서로 다른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맺어졌던 평화협정은 깨진다.
선생은 관리 책임을 물어 K에게 해고를 통보한다.
K는 인사권자인 면장의 정식 통보가 있기 전까지는 나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선생이 마음대로 해보라며 교실을 나가자 이번에는 K가 보복인사를 단행한다.
조수들을 해고한다. K가 동의를 구했을 때 프리다는 조수들의 정체를 밝힌다.
그녀의 적나라한 권력의지가 드러난다.
“조수들은 클람이 파견한 자들이예요. 가끔 제 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들의 눈빛은 클람의 눈빛과 닮았어요. 그들이 클람에게서 파견된
자들이라면 누가 우리들을 그 두 사람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까요?
또 그들에게서 벗어난다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K는 프리다의 의표를 찌른다. “결국 조수들을 원상복귀 시키자는 거지?”
그러나 프리다는 주도면밀하다. 정치적이다. 호락호락 K에게 빈틈을 주지 않는다.
바르나바스에게서 새로운 메시지를 기다리던 K는 궁금증을 견디지 못해
그를 직접 찾아간다. 거기서 K는 올가와 만난다.
프리다가 올가를 싫어하는 걸 알고 눈치를 보지만 욕망을 억누를 수는 없다.
올가는 K를 사랑한다. K에 대한 올가의 사랑은
억압받는 대중에 대한 연민이자 동정이다.
K가 올가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같다. 올가 집안에 K의 등장은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극적인 전환이고, 은총이었다.
바르나바스에게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클람의 메시지를 손에 쥔 순간 바르나바스는 세상을 모두 얻은 기분이었다.
그걸 발판으로 더 큰 일을 해나갈 수도 있다.
K는 올가에게 목표이며, 이상이다.
올가는 프리다가 보낸 조수를 쫓아버린다. 그녀도 욕망에 사로잡힌다.
여관에서 K는 프리다를 만난다. 그녀는 다시 여관의 종업원으로 복귀했다.
K가 올가의 집으로 간 후 K와 결별을 선언했다.
K는 프리다의 마음을 되돌리려 한다. K의 손길을 느낀 프리다도 다소 흔들린다.
그러나 프리다는 여전히 조수들에게 우호적이다.
프리다는 K에게 올가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둘의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카프카의 <성>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판타지와 비슷하다.
그래서 난해하다. 뷔르겔은 비몽사몽간에 있는 K에게 줄기차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지만
그는 K의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뷔르겔은 공무원의 전담 업무란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어느 한 사람이 특정 사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건을 파악하는 열정만이 결정적인 조건일 뿐이다.
에어랑어는 옆방에 있다. 뷔르겔의 말소리를 듣고 에어랑어가 소리친다.
그 방에 K가 와있느냐고. 뷔르겔은 큰 소리로 그렇다고 말한다. K는 방을 나간다.
그러나 정작 에어랑어의 방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복도에 서서 에어랑어의 일방적인 지시만 듣는다.
지시의 요지는 프리다를 원상 복귀시키라는 것이다.
클람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다. 다른 이유는 없다.
프리다는 의도적으로 그와 스캔들을 일으켜 클람의 질투를 유발한다.
K도 작전에 말려든다. K는 프리다의 음모에 동원된 세 번째 조수인 셈이다.
그녀의 작전은 성공한다. 그녀는 권력에 더욱 더 매혹적인 존재가 되었다.
에어랑어의 복귀 명령은 그녀의 작전이 멋지게 성공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자신을 버린 프리다를 K는 오히려 끝까지 감싼다. 그만큼 프리다의 가치는 높다.
그녀는 시장에서 지배적 힘과 경쟁력을 갖춘 값비싼 재화다.
그러나 K는 다시 마음이 약해진다. 아무도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자신에게 오라는 페피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한다.
페피에게는 프리다에 관한 추억과 기억, 스토리가 무궁무진하다.
초상화도 있다. 프리다의 애장품도 있다. 페피는 그것으로 유혹한다.
K도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에게는 값비싼 물건을 살만한 돈이 없다.
인간은 욕망하는 대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얻을 수 있는 욕망만을 취할 수 있다.
인간의 실존적 한계다. 프리다는 K에게 욕망일 뿐이지만 페피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도 결코 녹녹치 않다. 페피는 그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대신
자신들의 규칙을 준수하라고 요구한다. 안주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니 숨으라는 경고가 있으면 얼른 숨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에 만만한 것은 없다.
모두가 쓰디쓴 것이다. 봄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다.
성의 겨울은 길고 깊다.
카프카의 소설답게 전혀 말이 될 법하지 않은 일들이 당연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전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으로 튀어버리는 전개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줄거리를 설명하기란 정말 어렵다. 애초에 인물들의 대화부터 말이 크게 엇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 서로 그 말을 모호하게 받아치며 각자 한 페이지 넘는 기다란 설명과 주장을 반복하는 탓에 주어진 서술만 가지고는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예상하기 어렵다. 시간 또한 왜곡이 심해 아침식사를 한 지 두 시간만에 해가 지는 등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로 대단히 비현실적이기만 한 상황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이 192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현대적인 면을 과시하며 이 때문에 장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에게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추앙받기도 했다. 내용이 워낙 모호한 나머지 읽는 사람이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내용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해 대표적인 해석들도 대여섯 가지로 갈라진다.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부조리한 극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함께 20세기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이 책들도 상당히 난해한 책으로 꼽힌다.
유태인인 카프카는 자기 민족, 나치의 핍박 아래에 있는 유대민족의 현실상을 이 작품상에 그리고 있다고 봐야한다. 타향사람이요, 이방인인 주인공 K는 어쩔수 없이 작가 <카프카>의 동족인 유대인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K, 그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 온갖 시도를 다한다. 촌장을 만나야 했고, 성의 권력자인 클람을 만나기 위해 그의 애인을 사귀기도 하지만, 성은 그에게 끝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지 타향사람, 즉 유대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작품의 주제를 요약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개개의 인간이 전체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느냐다. 전체는 언제나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힘이 인간에게 작용한다. 인간은 이 힘에 대하여, 또는 그 근원에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거나 또는 맹목적으로 저항하면서 막연한 기대를 갖는 것이다. <K>가 城으로 부터 입성을 거부받는것도, 그러면서도 <K>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적인 형태로서는 서로 타협이 되지 않는다. 인간의 기대, K의 기대는 다시 무너지고, 압도해오는 외부의 힘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제2차대전 전후에 걸쳐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카프카는, 전쟁에 의해 노출된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취약성을 미리 통찰하고 있던 작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신의 재판과 은총이라는 주제를 거기에서 간취해 보려는 신학적 해석, 극한상황에 있어서의 인간의 절망과 희망의 변증법을 엿보려하는 실존주의적 해석, 카프카 자신의 부친에 대한 콤플렉스 등이 작용했다는 해석 등이다. 카프카의 상처는 시대의 상흔과 깊게 이어져 있다. 이 작품 <城>은 카프카의 상처에서 나온 한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해석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