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강지형 '독백이라 생각하기 쉽다'

clint 2024. 1. 16. 07:06

2024 한국 극작가협회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심사평 - 심사위원 이미경, 위기훈, 차근호

2024 ()한국극작가협회 신춘문예에는 총 82편이 응모했습니다. 작년보다 30편이 늘었는데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영상 매체의 시대라 불리는 동시대에도 희곡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식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한국극작가협회 신춘문예에 응모해 주신 많은 극작가 지망생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올해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베트남 보트 피플, 재난, 인간에 대한 본질적 질문과 사회의 부조리, 결혼과 가족의 의미, 타인과의 관계, 삶과 죽음, AI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사실적인 작품에서부터 우화적인 작품, 관념적이며 실험적인 작품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모여준 응모작들의 상당수는 완성도 측면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응모작 중에는 희곡 문학과 연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도 눈에 띄었다. 단막희곡은 40~50분 정도의 연극 공연을 전제로 한다. 단막희곡을 쓰는 극작가는 이 제한된 시간 안에 완결된 이야기를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극을 이끌어 가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선명한 갈등 구조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제된 대사를 구사하고 장면을 함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단막희곡이 가져야 할 미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응모작 중에는 과도한 장면 분할, 영상 매체의 신 전환 같은 장면 전환이 사용된 경우가 제법 많았는데 이런 분절된 장면은 작품의 밀도와 함축성을 저해한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82편 중 〈관대함의 슬픔〉, 〈구룡채성〉, 〈날아라 비행기〉, 〈너에게 간다〉, 〈독백이라 생각하기 쉽다〉, 〈돼지꿈〉, 〈사과 장수〉, 〈안개가 걷히거든〉, 〈안아키스트 네버 다이〉, 〈앙상하게, 아름답게〉, 〈저하〉가 본심에 올랐다. 선정된 11편의 작품을 논의해 다시 네 작품으로 압축했다.

  〈관대함의 슬픔〉은 문화센터 연극 수업에 참가한 아마추어 스태프를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잘 다루지 않았던 영역의 인물을 다룬 점이 흥미로웠다. 전반적으로 대사의 구축이 안정적이었고 인물의 개성도 잘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강사의 비슷한 느낌의 긴 대사가 빈번하게 나오는 것과 뚜렷한 사건 없이 인물들의 대화에 치중해 극적 긴장감을 높이지 못하고 단편적인 상황 제시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이 아쉬웠다.

 〈날아라 비행기〉는 백화점 환경미화원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실제 경험하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는 환경미화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주인공 홍주가 억울하게 궁지에 몰리는 상황과 이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의 조밀한 진행, 인물들의 얽힌 관계, 사실적이면서도 과하지 않은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반성문으로 귀결되는 결말이 다소 급하게 보이는 것과 결말에서 지금까지의 극 형식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것이 작품의 완결성에 방해가 된다는 점이 아쉬웠다.

 〈안개가 걷히거든〉은 사투리가 맛깔스럽고 간결한 대사가 리듬감 있게 읽힌다는 점과 인물의 성격이 잘 구축되어 있고 전체인 구성이 깔끔하고 안정적이라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작품의 주제와 결말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과 소재 자체의 강한 기시감으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점이 아쉬웠다.

 〈독백이란 생각하기 쉽다〉는 정글 같은 이 시대를 우화의 형식으로 풀어냈다. 이 작품은 단막 희곡이 가져야 하는 미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인물의 분명한 목적과 동기, 인물의 행위를 통한 사건의 진행과 이로 인해 구축되는 갈등, 함축적인 대사와 상징적인 무대가 돋보였다. 다만, 제목과 극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이름이 특정 영상물과 타 장르의 콘텐츠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제목과 호랑이의 이름도 작가가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심사위원들은 오랜 논의 끝에 최종심에 오른 네 작품 중 〈독백이란 생각하기 쉽다〉를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선정했습니다. 당선된 작가에게 축하를 전하며 앞으로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한국 희곡계와 연극계에 우뚝 서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한국 극작가 협회 신춘문예에 응모해 주신 모든 극작가 지망생들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당선소감 - 강지형

1. 독백의 조건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는 답니다. 첫째는혼잣말일 것, 둘째는진심일 것. 독백이란 극중인물이 혼자서 자신의 진실된 속내를 터놓는 무대 언어인 것이죠. 하지만 언제부터일까요. 극의 바깥에 사는 우리도 그저 각자의 독백을 뱉어 내며 사는 것 같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소통 창구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단절돼 있고, 진심을 말하면 손해를 보는 세상 속에서 진심은 혼자만의 것이 됩니다. 함께 있어도 혼자가 되는 우리는 점차 외로워지는 것만 같습니다.

독백의 이유는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 때문 아닐까요? 날 구할 사람은 나뿐이라는 각자 도생의 세상 속에서, 저부터가 진심을 먼저 보이며 타인과 연결되자고 다짐해 봅니다. 그치만... 왜 이리 자신이 없을까요? 어쩌면 이 희곡은 그자신 없음의 이야기이자, 세상과 타인과 대화하고 싶지만 끝내 독백을 해버리고야 마는무기력함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 “지형이는 열심을 연기하는구나?” 졸업 학기, 지도 교수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게으르고 요행을 바라던 저를 지켜보시다가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일갈하셨던 것이죠. ‘열심을 연기한다. 열심을 연기한다라...’ 열심과 연기, 이 신선한 말의 조합은 졸업하고 지금까지 저를 다잡는 무엇이 되어있습니다. ‘열심이란 것이 연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앞으로는 더욱 열심을 연기해 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열심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치 연기를 하는 배우가 어느 순간 실제로 그 배역이 되고, 무대는 배역이 사는 현실이 되듯 말이죠.

끝으로, 가르침을 주신 조광화 선생님, 장성희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적는 방식으로 제 열심을 연기하고 있겠습니다. 삼십 대의 시작. 계속 가보겠습니다.

 

강지형 : 1994년 출생

-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극작과 졸업

-서울예술대학교 학사학위 공연창작학부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