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클리찌아'
노래를 앞세운 후 프롤로그가 나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기할 것은 이 프롤로그를 통해 작가가 희극의 목적과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희극이란 "관객에게 유익함과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다. '유익함' 이란 희극을 통해 다기 다양한 '세상사의 실례들'을 배운다는 의미이며, '즐거움'이란 멍청이거나 악당이거나 혹은 연인들을 등장시켜 재치 있고 익살스러운 대화로 관객을 웃긴다는 뜻이다. 재미와 교훈은 르네상스 희극의 2대 요소로서, 과연 그 어느 쪽에도 크게 치우침이 없이 극을 이끌어 갈 수 있느냐가 좋은 작품이 되는 관건이다.
1막은 도입부이다. 클리찌아를 사랑하는 클레안드로와 그의 친구가 등장하여 사건의 배경을 설명한다. 딸처럼 키운 클리찌아에게 갑자기 마음을 뺏긴 클레안드로의 아버지 니코마코는 하인 피로를 그녀와 결혼 시킨 뒤 실제로는 자신이 그녀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이고, 어머니인 소프로니아는 그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그녀를 다른 하인 에우스타키오와 혼인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2막은 니코마코와 소프로니아 사이에 주고받는 피렌체식 익살로 이루어진다. 아내는 남편의 행동을 부끄럽다고 사정없이 질타하고 남편은 수세 속에서도 여전히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며 자신의 계획 을 밀고 나간다. 소프로니아의 독백 속에 담긴 중류 부르주아의 생활상과 가치관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각별히 흥미를 끈다. 그것은 원작과는 상이한 마키아벨리식 리얼리즘이다.
3막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첨예하게 맞선다. 니코마코는 전혀 물러서려 하지 않고, 부모에게 자신의 연정을 숨기고 있는 클레안드로는 탄식한다. 서로 팽팽히 대립하던 니코마코와 소프로니아가 일을 결정 짓기 위해 제비를 뽑는 장면은 마키아벨리의 창작이다.
4막은 제비뽑기에서 이겨 이제는 클리찌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 니코마코와 이에 대한 아내 소프로니아의 은밀한 반격으로 진행된다. 특히 2장에서 니코마코와 피로가 정력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는 장면은 재치가 넘친다.
5막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에서 니코마코는 친구 다모네에게 자신이 클리찌아의 침실에서 당한 기막힌 일을 하소연한다.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은 클리찌아가 아니라 또 다른 하인 시로였다는 것이다. 소프로니아의 반격은 성공하고 니코마코는 패퇴한다. 후반부에 가서는 클리찌아의 아버지 라몬도가 갑자기 나타나고, 이야기는 급진전하여 결국에는 모두가 클레안드로 와 클리찌아의 결혼에 찬성한다.
<클리찌아>는 이미 말했듯이 로마 작가 플라우투스의 <카시나>를 개작한 작품이다. 이 때문에 그것은 《만드라골라》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고 평가도 좋지 않았다. 19세기 말, 마키아벨리에 대한 방대한 양의 전기를 썼던 파스쿠알레 빌라리는 이 작품을 가리켜 "단순히 <카시나>를 모방한 데 지나지 않는다"고 가볍게 일축하였다. 물론 독창적인 <만드라골라>와는 달리 이 작품은 기존 작품의 개작이기 때문에, 극의 전개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원작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그 특유의 익살과 풍자로써 극의 분위기를 상당 부분 일신하고 있다. 대사의 대부분을 자기 식으로 바꾸었고, 극중의 장소, 시간, 인물도 매우 구체적으로 설정하여 이야기의 사실성을 높였다. 또 원작에서는 아들과 그의 연인 카시나가 실제로는 무대에 등장하지 않으나, 《클리찌아》에 서는 아들 클레안드로가 비중 있는 역할을 하며 이야기의 전개를 돕는 등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 《클리찌아》가 언제, 왜 집필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피렌체의 부자였던 포르나차이오가 자기 집 연회에서 《만드라골라》를 상연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마키아벨리는 그보다 새로운 희극을 선보이는 편이 더 좋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연회까지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으므로, 르네상스 작가들이 흔히 그랬듯이. 로마의 희극 작품을 개작하기로 하였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클리찌아>였다. 공연은 1525년 1월 13일에 이루어졌고, 바자리(Vasari)에 따르면 그것을 관람한 피렌체의 저명인사들이 모두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자. 친구인 필리포 데 네를리는 모데나에서 마키아벨리에게 보낸 1525년 2월 22일자 편지에서 "자네의 희극 작품은 어디에서나 이름을 날리고 있네"라고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 <클리찌아>의 초판본은 마키아벨리가 죽은 지 10년 뒤인 1537년에야 비로소 간행되었다.
《클리찌아》가 지닌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단점은 결말 부분에 있다. 클리찌아가 고귀한 신분이었음이 밝혀지면서 모든 것이 조화롭게 마무리된다는 설정은 매우 우연적이고 갑작스러워서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시종일관 니코마코가 익살과 풍자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너무나 쉽사리 상황을 인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관객들은 아마도 작가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로마작가들과는 달리, 마키아벨리가 여성인 소프로니아에게 상당한 비중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 역시 메시지를 모호하게 만들 여지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정숙하고 도덕적인 소프로니아를 통해 니코마코의 일탈적 행위를 비판하고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 극은 마키아벨리답지 못하다. 그것은 단지 시민적 통합성을 강조하는 로마 작가들을 답습하는 것일 뿐이다. 《만드라골라》가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익살과 메시지 간의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 반면, <클리찌아>는 도덕을 강조하는 소프로니아에게 지나치게 무게를 둠으로써 니코마코에게 가해졌던 익살과 풍자가 자연스럽게 결말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물론 <클리찌아>가 개작이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품이 짧은 기간 내에 급히 씌어진 데도 일단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년)
피렌체의 정치 사상가. 제2서기장으로 외교 무대에서 활약했으나, 메디치가의 복귀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저술에 몰두하였다. 저서로는 《군주론》을 비롯하여 《리비우스 논고》, 《피렌체사》, 《전술론》등의 정치 저술과 《만드라골라》와 같은 희곡, 그리고 다수의 시와 설화 편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