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판결'
성공한 젊은 사업가 게오르크 벤데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친구에게
자신의 성공과 약혼을 알리는 편지를 쓰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오랜 기간 고향을 떠나있는, 그리고 자신과는 다르게 타지에서 사업에 실패한
친구에게 자신의 편지가 어떤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을지 생각한다.
하지만 약혼녀 요구에 결국 친구를 자신의 결혼에 초대하는 편지를 쓰게 되고
그것을 보내기 전에 아버지에게 그 사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친구의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한다.
어머니의 사망 이후 노쇠해진 아버지를 침대에 누이며
자신의 친구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게오르크에게 아버지는
돌연 그 친구의 존재를 인정하며 게오르크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 비판은 결국 아들 게오르크에 대한 익사 형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너를 지금 익사 형에 처하노라!”
그 길로 게오르크는 그래도 부모 당신들을 사랑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다리너머로 몸을 날린다.
게오르크의 고뇌로 시작되는 소설의 도입부는 굉장히 이성적이다. 친구에게 자신의 성공을 알릴 수 없는 이유와 친구의 좋지 못한 상황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서의 사고는 다분히 논리적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등장과 함께 소설의 흐름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데, 우리는 친구의 존재, 아버지의 모든 발언, 그리고 게오르크의 모든 발언까지도 진실을 의심하게 된다.
아직도 언어적으로는 논리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속에서, 이상할 것 없는 행동 속에서 아버지의 판결과 그 판결의 이행 ‘게오르크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어떤 명쾌한 논리적 연결도 찾을 수 없다. 카프카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해석과, 프로이트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여러 해석들을 봤지만 명쾌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 작품은 1913년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다.
표현주의를 말하기엔 조금 이른 시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표현주의적으로는 볼 수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불과 여덟 시간 만에 앉은 자리에서 하룻밤 만에 써진 것이라는
사실을 참고한다면 이 작품 속에 숨겨진 수수께끼는 오이디푸스 이야기나
카프카의 개인사가 아닌‚ 작가의 ‘직관적 표현‘이라는 열쇠를 통해 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