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야 유키코 '난폭과 대기'


무대는 야마네 히데노리와 오가와 나나세가 사는 집이다.
6년 동안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는 히데노리를 위해, 나나세는 개그를 연구하며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히데노리는 가끔 마라톤을 한다며 외출을 하는데, 실은 몰래 천장 위 다락으로 올라가 나나세를 훔쳐보고 있다. 나나세는 그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어느 날 히데노리의 직장 후배인 반조가 집을 찾아오고, 매 순간 남의 얼굴을 살피는 나나세의 독특한 행동은 반조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나나세의 미모에 관심이 생긴 반조는, 어떻게든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애인인 아즈사를 소개해 히데노리와 나나세의 비밀을 파헤치려 한다. 알고 보니 그 비밀은 12년 전 한 사건에 의한 것이었다. 사이가 좋았던 히데노리 가족과 나나세 가족은 함께 여행을 갔는데, 히데노리의 아버지가 운전하던 자동차가 철길 건널목에서 멈춰버리고 말았다. 뒷좌석에 있던 히데노리와 나나세는 구조되었지만, 그 일로 히데노리는 아버지를 잃고 본인도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이 그때 나나세가 말한 무언가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히데노리는 나나세에게 최악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나나세는 그의 복수를 기다리기 위해, 6년이라는 동거생활 을 계속해온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복수가 이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그러는 사이 단지 거절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나나세는 반조에게 몸을 허락하고 만다. 그런 두 사람을 훔쳐보는 히데노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알아 버린 아즈사, 이렇게 네 사람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괴상한 일상에서 위기를 맞이한다. 결국 나나세는 집을 나가기로 하고, 마침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한 히데노리는 반조와 아즈사와 파티를 하려고 하는데, 그 순간 히데노리는 12년 전 나나세가 말했던 무언가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낸다. 히데노리는 나나세에게 그때 차 안에서 "네가 '뒤로'라고 말했기 때문에 후진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라며, 다시 집에서 자신의 복수를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때 아즈사가 "앞으로 갔다면 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도 죽었음 거”라고 지적한다. 아니다, 분명히 내가 나빴다, 하고 외치는 나나세. 그 앞에서 모든 것이 자기 탓이었는지를 되묻던 히데노리는 갑자기 “네가 평생 네 자신을 원망할 복수를 해주겠다.”며 도로로 몸을 던진다.
암전이 되었다가 밝아진 무대에 양쪽 손의 손가락을 절단하고 목숨을 구한 히데노리가 나나세를 향해 말한다.
"실은, 나 예전부터 유화 그리는 게 꿈이었어. 다 너 때문이야.”라고.
두 사람이 희미하게 웃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것을 엽기적인 젊은 남녀의 로맨틱 코미디로 본다면, 네 사람의 굴절되고 비약된 성격들은 비교적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매우 다이내믹한 재미의 요소가 된다. 실제로 영화버전의 광고를 보면 "훔쳐보는 남자와 훔쳐봐도 가만히 있는 여자와 어쩌다 여기에 휘말린 부부(영화의 경우 연극버전과 달리, 반조와 아즈사가 부부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의 슬프면서도 이상한, 어떤 의미로 보면 러브 판타지” 라며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남기는 여운은 단순하지 않다. 이 네 사람은 다시 말해, 훔쳐볼 수밖에 없는 남자와 그런 남자의 미움과 관심에 안심하는 여자, 그리고 자신의 삶 속에서는 만족도 안도도 할 수 없는 또 한명의 남자, 상처를 주는 것에도 받는 것에도 익숙해진 또 한 명의 여자다. 어느 한 명 어른스럽게 살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이들의 미숙함은 같은 세대 관객들에게는 친숙하게 다가온다. 일본의 버블경제 시대에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 거품이 꺼졌을 때에 사회로 내몰린 지금의 30대들은, 열심히 일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한 세대다. 예술을 통해서도 이른바 '제로세대' 라는 이름으로 허무하고 개인적이며 시니컬한 세계관을 펼치는 이들은 기성세대들로부터 나약하고 고작 자기 주변밖에 관심이 없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지만, 스스로의 그런 모습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는 다양한 세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작, 연출가를 포함해 등장인물 네 명의 배우가 모두 비슷한 연령대로, 같은 세대가 쓰고 만들었다는 리얼함은 큰 무기가 된 다. 게다가 모토야 유키코의 작품에는 영상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강렬한 요소가 있다. 소극장연극과는 차별성을 가지지만 동시에 상업연극에서는 봄 수 없는 마이너 적 감수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읽고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난폭과 대기>라는 이 제목은, 영화 버전의 광고에서 이렇게 풀이되었다. "어지럽혀지고, 날뛰고, 기다리고, 이윽고 때가 찾아온다.”. 어지러울 난(難)과 사나울 폭(暴), 기다릴 대(待), 때 기(機)의 조합이다. 약하고 화내면서 울고 있다. 사회가 정해놓은 레이스가 있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네 사람은 도중에 주저앉거나 레이스를 벗어나 깊은 숨을 몰아쉬고 있는 중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진행 중인 무대에 우리 관객들도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폭과 대기>는 2005년 4월 <극단, 모토야 유키코> 제9회 공연으로 도쿄에 위치한 신주쿠 시어터 몰리에르에서 초연되었다. 주로 TV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하던 마부치 에리카(馬淵英里何)가 '노상 남한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만 고민하는' 나나세 역으로 캐스팅되는 등, 개성이 강한 단 네 명의 등장인물만이 출연하는 작품이었다. 당시 극단 작업으로서는 모토야 유키코가 1년 반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었다는 점과 더불어, 작. 연출가와 마부치 에리카가 동갑내기였다는 사실도 관객들에게 흥미로운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이후 사카테 요지의 추천으로 기시다 희곡상후 보작으로 노미네이트 되었고, 2006년에는 계간 희곡잡지 <대사의 시대〉겨울호에 게재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일본의 공익재단법인 세종문화재단(The Saison Foundation)과 미국 미네소타 주 미네아폴리스(Minneapolis) 아츠 미드웨스트(Arts Midwest) '컬처럴 트레이드 네트워크 (Cultural Trade Network)'와의 공동주최사업 으로 진행된 '일미현대극작가, 희곡교류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어, 미국의 연출가와 배우들에 의해 리딩 공연되었다. 2008년 2월 27일에는 작가 본인에 의해 동명 소설(미디어 팩토리 출판사)이, 2010년 10월 9일에는 영화감독 도미나가 마사노리의 각색 및 연출로 영화가 발표되기도 했다.
하나의 작품이 이렇게 다양한 통로를 봉해 계속해서 소개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06년 이 작품을 미국에 소개한 미네아폴리스 극작가 센터(The Playwrights' Center)의 예술 감독 폴리 칼(Polly K Carl)은〈난폭과 대기>의 매력을 "'다락'이라는 장치, 그리고 등장인물 중한 명이 천장 틈에 있는 그 다락으로 숨어들어가 몰래 훔쳐보는 상태에서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진행되는 것에서 커다란 연극적 가능성을 직감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모토야 유키코(本谷有希子)
1979년 일본 이시카와 현 출생
1998년 배우를 지망해 연극전문학원 ENBU세미나 연극과에 입학. 재학 중 애니메이션 〈그와 그녀의 사정〉의 성우로 데뷔
3000년 〈극단, 모토야 유키코>를 창단
2002년 소설 《에리코와 절대로〉를 발표해 소설가로도 데뷔
2005년 소설 버전 <바보들아 슬픈 사랑을 내보여라〉가 제18회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로 선정됨
2006년 <조난>으로 제10회 쓰루야 난보쿠 희곡상을 최연소로 수상. 같은 해, 소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제135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로 선정됨
2009년 〈행복해 최고야 고마워 진짜!>로 제53회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 수상
2011년 소설 (미지근한 독>으로 노마 문예신인상 수상
2013년 소설 <폭풍의 피크닉〉으로 오에 겐자부로 상 수상
모토야 유키코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극단, 모토야 유키코>의 대표로, 극작과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이 극단은 전속배우가 없는 상태의 유닛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모토야 유키코 연극의 중요한 특징을 꼽는다면 출연자가 무대 위에서 빛나도록 세심하게 캐릭터와 대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00년 <바보들아 슬픈 사랑을 내보여라>를 시작으로, 그동안 모토야 유키코는 장르를 넘나들며 평단과 대중들로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그 예로 <바보들아 슬픈 사랑을 내보여라>는 2004년 재 공연되었고, 2005년에는 소설로 발표되어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었다. 2007년에는 문고판이 출판되고 요시다 다이 하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참고로 소설 버전은 2009년에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판되었다. 2005년에 초연된 <난폭과 대기> 역시, 기시다 희곡상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호평을 받은 이후 2008년에 소설로 출판되었고, 2010년에는 도미나가마사노리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그밖에도 2011년 노마문예 신인상을 수상한 소설 <미지근한 독>이 요시다 다이하치의 각색 연출로 2013년 9월에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ENBU세미나 연극과 시절 스승이었던 마쓰오 스즈키가 그녀의 작가 인생에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곤 했지만, 영화보다 강렬하면서 섬세한 감성이 짙게 묻어나는 모토야 유키코 특유의 세계는 이미 구축되어 있다.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파르코(PARCO)극장에서 <행복해 최고야 고마워 진짜!>(2008년)를, 혼다 극장에서 <라 이라이라이라이라이> (2009년)를 올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검증받은 그녀는, 소위 탈진계(脱力系: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빠지게 만든다고 하여 붙은 이름으로> 일본어로는 '탈력 (脱力)계'라는 한자를 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애니메이션 작품의 장르로 설명 되면서 알기 쉽게 '탈진계'로 번역되었다. 2000년대 등장해 연극계를 이끈 30대 작, 연출가들을 가리키는 세로세대의 작품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라 불리는 제로세대와는 차별되는 독보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라 불리는 제로세대와는 차별되는 독보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