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셰익스피어) 여로의 끝'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613년 귀향하여 1616년에 죽었다.
28년 만에 돌아온 고향 스트랫포드.
아내 앤과 혼기를 놓친 작은 딸 주디스가 New Place 집에 살고 있고
큰 딸 수잔나는 결혼 후 근처에 살고 있다.
아들 햄닛은 작은 딸 주디스와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11살 때 전염병으로 죽었다. 윌의 부모도 이미 다 죽었으며
뉴 플레이스에는 부부와 딸 주디스만 남게 된다.
윌에게 아내 앤은 이제 낯선 여인이다. 너무나 오래 떨어져 있어서,
윌은 고향에서 자신을 타자로 느낀다.
에이번 강가에 홀로 앉아 그는 런던에서의 삶을 반추한다.
자신이 쓴 시와 비극, 같이 작업했던 배우들, 극단 후원자 사우스햄튼 백작,
자신의 수많은 애인들.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죽음을.
돌아온 땅은 윌에게 잊었던 앤과의 옛사랑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 사랑이 언제 식어버렸을까? 얼어붙은 앤의 마음을 죽기 전에 녹여주고 싶다.
세 자녀와 부모를 다 그녀에게 떠맡기고 혼자 런던으로 가버린
과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그토록 오랜 세월 외롭게 살게 한 점에 대해서도.
늙은 윌은 자신이 마치 리어가 된 것처럼 느낀다.
사실 고향으로 돌아온 건 딸 수잔나와 가까이 있고 싶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디스의 마음의 그늘을 알게 되면서 그녀에게 더 관심을 가지며
정을 붙인다. 이 딸을 코딜리어라 부르며 결혼하지 않고
부부 옆에 같이 살기를 원한다,
주디스는 가족을 버려 두고 떠난 아버지 윌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고
또 엄마 앤의 외로운 삶에 공감을 느끼지만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좋다는 윌의 뜻에 점점 마음을 연다.
그녀는 햄닛의 죽음에서 딸인 자기 대신 아들이 죽었다는 주변의 안타까운
시선을 의식한 이후로 여자로서의 삶에 예민하다.
그래서 자유로운 주체적 삶을 살기 원하며 글을 배우고 싶어 하고
런던으로 가서 윌처럼 자기 인생을 한번 던져 보고 싶다.
형부 존 홀로부터 윌의 비극에 나오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또 에밀리아 라니어라는 최초 여성 시인에 대해서도 알게 되며
그녀의 의식은 자라간다. 수잔나는 주디스와는 달리 세상에 순응한다.
세상이 남자의 것임을 알고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했고
다행히 남편 존 홀과 원만하게 지낸다.
윌이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것에 대해 이해의 시선을 가진다.
그녀는 극에서 세 번 정도 잠깐 비켜 나와 드라마 전체를 조망하게 해주는
해설자의 역할을 겸한다.
나이 60이 다 된 앤은 28년 만에 돌아온 윌을 침묵으로 지켜보며 받아들이지만
그녀의 마음 속 깊이 오래 억압된 말과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그녀는 그 못 다한 말을 품고 이 말을 토해 낼 그 날을 기다리지만
부부는 겉돌기만 한다. 30년 전 앤은 미혼모가 될 처지였다.
만일 윌이 결혼을 회피하고 도망 가버렸다면
그녀는 마을 공동체에서 따돌림 받고 태어난 자식은
사생아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윌은 결혼에 응했고 우스터 주교의 특별 허락으로
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30년 전 일어났던 그 일이
그녀의 생애에 다시 한 번 발생한다.
딸 주디스가 갑자기 결혼을 한다며 서두른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자유롭게 살겠다던 주디스의 주장이 급변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이 시기는 사순절 기간으로 결혼식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식을 강행한다. 윌은 코딜리어 처럼 곁에 있으리라 믿었던 딸에 대해
씁쓸한 배신감을 느끼고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앤은 딸이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반복하는 것에 대해 더 충격을 받고
다만 신랑 토마스가 (과거 윌처럼) 딸을 떠나지 않기만을 바란다.
사순절임에도 결혼식은 감행되어 주디스와 토마스는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한다.
그런데 결혼식 후 한 달 만에 놀라운 일이 마을에서 벌어진다.
마을 처녀 마가렛이 출산을 하다 죽게 되는데
이 아기의 생부가 토마스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토마스는
그녀와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주디스와의 결혼을 서둘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일로 윌은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 된다.
이 작품에는 셰익스피어 명작들의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대사들과 싯귀들이 윌과 앤, 딸들에 의해 상황에 맞게 섞이는데
어디 선가 보고나 들었던 그 대사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이지훈 작가의 변
“사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태어났다, 결혼했다, 자녀 낳았다, 런던으로 가 연극인으로서 문학인으로서 성공했다, 고향에 돌아와 죽었다 정도입니다. 가족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성격의 남편이었는지 아버지였는지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요. 그래서 더욱 셰익스피어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신비화해서 바라보게 되는데요. 37편의 명작을 쓴 대문호임을 벗어나서 한 인간으로 한 남자로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떻게 죽었을까에 관해 관심을 지니게 됐습니다. 인생 말년에는 떠났던 가족에게 돌아가 그들에게 주었던 상처를 어루만지고, 관계를 풀고, 가족의 마음을 얻고 싶은 한 명의 짠한 사람일 수 있다는 거죠. 사실 그것은 우리의 아버지일 수도, 남편일 수도, 가족일 수 있는… 보편적 한 인간에 관한 탐구를 윌을 통해 한 것이지요. 희곡 ‘여로의 끝’에서 윌은 자신이 썼던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고 복잡한 사건들을 고향에서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극본, 신이 쓴 극본이라 믿게 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통해 관객분들이 ‘고독’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 그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