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온 부시코 '옥토룬'
흑인 노예 문제는 미국 역사의 중요한 단면이다. 노예 문제를 논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작품은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 부인의 소설 <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 (1852)으로 노예문제를 수면 위로 부상시킨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동시대인 1859년 발표된 <옥토룬>은 한 혼혈 여인의 삶을 처절하게 그려낸다.
흑인 혼혈 조이(Zoe)의 삶을 통해 미국 사회와 노예제도를 깊이 있게 다룬 <옥토룬>에선 특히 작가 디온 부시코의 극작술이 빛을 발한다. 이 극은 19세기 후반 미국 멜로드라마의 전형으로 칭송되었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미국 최고의 반 노예제 극(Anti-Slavery Play)으로 평가되었다.
희곡의 토대는 메인 레이드(Mayne Reid)의 소설 옥토룬(The Quadroon)>(1856)이다. 부시코는 이 소설을 각색하면서 루이지애나 주의 대농장(pilantation)을 배경으로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의 노예로서 삶을 촘촘히 그려낸다. 일생일대의 정체성 혼란에 빠진 주인공 조이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이 극에는 미국 남부의 삶, 노예제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이 깃들어 있다. 조이는 옥토룬이지만 평생 백인과 다름없이, 신분적 구속 없이 페이턴 판사의 딸로 살아왔다. 하지만 대농장이 팔리게 되는 위기상황에서 드러나게 된 현실은 페이턴 판사의 조치가 실현되지 않아 노예신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노예신분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 하지 못했던 옥토룬 조이는 결국 조상 즉 흑인의 피 한 방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대농장에 속한 노예라는 실상에 좌절한다. 농장이 팔리면 농장 노예들까지 넘어가던 때라 조이도 매매대상이 되고 만다. 농장주 페이턴 가문의 몰락은 페이턴 판사의 죽음 이후 농장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탓이라 볼 수 있다. 페이턴 부인은 농장 매각이 현실이 되자 노예들이 자신의 삶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거듭 깨닫고, 가족과 다름없는 노예들을 가엾게 여기며 농장을 구할 방책을 다각도로 모색한다.
페이턴 부인의 조카 조지는 조이에게 누구보다도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어떻게든 조이를 구할 방법을 찾으려 한다. 가령 부유한 도라와 결혼한다면 매클로스키에게 농장과 노예가 전부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조지는 농장을 구하기 위해 도라에게 마음에도 없는 청혼을 한다. 매클로스키 역시 조이를 사랑하고 있다. 조이가 노예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매클로스키는 조이를 소유하고자 농장매각을 유도하려 갖은 수를 동원한다. 농장과 함께 노예소유권도 이전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매클로스키는 노예신분이 된 조이를 차지하려는 음흉한 속내를 드러낸다. 농장 매각에 방해가 되는 요인을 모두 제거하기 위해 매클로스키는 농장을 구원할 서류가방을 가져온 흑인소년 폴을 토마호크로 때려죽이는 무자비한 면모를 보인다. 모두가 폴의 실종에 의혹을 품자 매클로스키는 인디언 와노티가 풀을 죽였다고 거짓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살해 현장에 있던 카메라에 매클로스키의 잔혹한 범행이 담겨 있었다.
폴의 죽음이 알려지기 전 농장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비인간적인 노예경매 장면이 여과 없이 묘사된다. 노예가 탁자 위에 올라서면 곧바로 몸값이 매겨지고, 입찰과 낙찰이 이루어진다. 조이 역시 낙찰가로 몸값이 결정된다. 조이는 농장 매각으로 인해 갑작스레 자신이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작품은 흑인 혼혈 여인의 처지를 묘사하며 흑인의 피 한 방울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작품이 발표될 당시는 노예제 폐지 운동이 일어나던 때였는데, 남북갈등이 최고조였다고 전해진다. 도망 노예송환법(Fugitive Slave Acts, 1850)이 발효된 상태였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갈등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864년 폐지된 이 법안은 노예탈주를 돕는 것, 탈주한 노예를 원래 속한 주로 송환하지 않는 것을 범죄로 보았고 탈주노예를 놓친 연방보안관에게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또한 도망 노예에게는 증언할 권리와 배심원 재판을 받을 권리도 박탈되었다. 갈등 상황의 주요 기점으로 꼽는 1860년은 흑인 노예폐지를 주장하던 공화당 소속 정치인 링컨(Abraham Lincoln)이 대통령 당선을 앞둔 때였다. 부시코는 루이지애나 주지사에게 편지를 보내 이 작품이 정치적 의도로 쓰인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부시코는 <옥토룬>이 남부 플랜테이션 농장의 삶에 대한 묘사(picture of plantation life)"로 의도된 것이며 그 이상, 이하도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흑인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북부 공화당과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 민주당의 정치적 대립이 전쟁으로 비화하던 시기였다는 점, 북부 정서의 거점인 뉴욕에서 <옥토룬>이 초연되었다는 점, 남부와 북부에서 각각 정치적 목적으로 이 작품을 활용했다는 점 등에서 <옥토룬>은 사회 문제의식이 농후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민감한 시기, 흑인 노예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룬 논쟁적인 작품임에도 부시코의 극은 원작의 정치적 뉘앙스와 문제의식을 대폭 축소해 남북 모두에서 흥행에 성공했고 그 결과 영국으로 수출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쿼드룬', '옥토룬'이란 표현에서 보듯 흑인 혼혈을 지칭하는 말에는 흑인 조상이 어느 정도 비율을 차지하느냐가 반영되어 있다. 흑인의 피 한방울로 타고난 피부색이 사회신분의 한계를 결정했다. 흑인의 '피 한 방울 (one drop of blood)'이 섞이는 순간 혼혈인으로 규정되었고, 흑인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사회신분은 노예에 머물러야 했다.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그 상흔은 미국 내 인종차별 문제로 지속되고 있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진일보한 현 시점에도 흑인에 대한 편견과 역사적 선입견이 발동한 사건들이 무수히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옥토룬>의 문제의식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중 한 명인 브랜드 제이 콥스 젠킨스(Branden Jacobs-Jenkins)는 부시코의 <옥토룬>을 각색해 <혼혈(An Octoroon)>(2014)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자신의 이름 첫 자를 딴 'BJJ'를 내레이터로 등장시킨 것 외에 극 전체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부시코의 <옥토룬>과 같아서 마치한 작품을 거울에 비춰 보는 듯하다. <옥토룬>이 발표된 지 150여 년이 흘렀지만 미국 사회에 흑인차별, 흑백갈등이 여전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부시코의 작품 제목 'The Octoroon'과 제이콥스 젠킨스의 극 제목 'An Octoroon'을 비교해 보는 것도 유의미하다. 문법적으로 전체 다수를 지칭하는 두 제목은 그 많은 옥토룬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조이는 자신의 현존을 극복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자살을 감행함으로써 자기결정권을 발휘하고 만다. 옥토룬이라는 타고난 몸을 벗어날 유일한 해결책이 '자살'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옥토룬이기에 사랑하는 조지와 맺어질 수 없고, 설상가상 매클로스키의 과도한 욕망으로 인해 여전히 노예신분임이 드러나게 되면서 이 모든 비극이 벌어진 것이었다. 농장뿐 아니라 조이를 차지하겠다는 매클로스키의 집착 어린 욕망은 무고한 소년 폴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결국 조이마저 자살로 이끄는 요인이 된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배우이자 극작가다. 특히 멜로드라마로 유명세를 떨쳤다. 배우로 경력을 시작했으나 글쓰기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기존 연극을 광범위하게 각색하고 수정하면서 상업적 성공을 이룬 부시코는 특히 희극, 로맨스, 소름 돋는 플롯이 가미된 멜로드라마에서 역량을 발휘했다. 또한 부시코는 더 사실적인 무대, 특수 효과, 무대 매커니즘 등에서 뛰어난 극적 혁신을 보여 주었다고 평가된다. 부시코의 치밀한 세부 묘사, 리얼리즘을 표방한 극작은 당시 연극 산업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로 인해 연출 기준이 새롭게 확립될 정도였다. 1838년 첫 희곡 〈레즈비언 악마의 전설(A Legend of the Devil's Dyke)〉(1838)이 브라이튼에서 초연된다. 3년 뒤 발표된 희극 〈런던 어슈런스(London Assurance)〉(1841)는 부시코에게 극작가로서 큰 성공을 안겨 준다. 이외에 사극 〈쇼륜(Shaughraun)〉(1874), 〈콜린 본(The Colleen Bawn)〉(1860) 역시 주목할 만하다. 부시코의 삶은 그의 희곡만큼이나 극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여러 풍문에도 불구하고 극작가로서 성공했고 영국과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 탁월한 스토리텔링, 매력적인 등장인물, 사회 문제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점 덕분이다. 부시코의 깊이 있고 폭넓은 주제 의식은 오늘날에도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여전히 무대에서 가치를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