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자크 가브리엘 '아메리카의 이브'

clint 2023. 11. 30. 11:50

 

 

 

이 작품은 삼류 연극배우시절의 한 장면과 대부분은 페론이 대통령이 된 이후

남편보다 인기가 좋은 부인 에바가 부통령이 되고자 남편을 설득하고

군장성, 교황청 특사까지 만나 설득하고 대화하는 내용이 그 대부분을 이룬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부통령 후보지명을 받자

다시 대통령과의 갈등, 반대 세력의 공격이 거세지자

돌연 부통령 후보지명을 철회한다.

그리고 자궁암이 급속도로 번져 죽게 되는 과정의 에바 페론의 민낯을 보여준다.

예전부터 마리 앙트와네트역을 해보고 싶었던 그녀가

무명배우 시절, 그리고 병으로 홀로 남았을 때 거울을 보며

마리 앙트와네트 연기를 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 작가 자크 가브리엘의 글.

 

"미국인들은 에비타 페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마를린 몬로, 에디트 피아프보다 더 많은 향수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억압받는 사람들과 여성, 약자를 위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권력을 위해 더이상 싸우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인 남편이 불안정한 관계에 빠지자 그녀가 희생하기도 합니다이 작품의 공연에 붙여 "아메리카의 이브의 에바는 어쩌면 제일의 지식계급인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그녀의 귀족계급과 교회 권력에 대한 악용과 환각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회환경의 실질적인 원형을 전달해야만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에바 페론, 1919 5 7~1952 7 26)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을 지낸 후안 페론의 두 번째 부인이다. 애칭인 에비타(Evita)로 불린다어느 시골마을, 가난한 집안의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 페론은 15살 무렵 가출을 감행했다. 이후 온갖 역경을 딛고, 삼류 연극배우로 시작해 마침내 연예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그러던 1944년 대지진 구호기금 마련 운동 중 훗날 대통령이 되는 후안 페론을 운명처럼 만났다. 에바 페론은 남편 후안 페론의 선거 유세 자리에 동행하며 아름다운 외모와 확신에 찬 연설로 아르헨티나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영부인이 된 후 대통령보다 더 사랑받는 대통령 부인이 되었고. 우선, 남편과 함께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내놓았다. , 여성에게 선거 투표권을 부여하고, 친권과 혼인에서 남녀평등을 헌법으로 보장해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켰다. 그런 인기에 편승하여 부통령이 도려고 무척 공을 드렸지만, 남편과, 군부, 교황청의 반대로 임명받은 부통령 후보 직을 사퇴한다. 그후 건강악화로 1952년 서른셋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에바 페론

 

 

 

페론의 개혁은 장점만큼이나 문제점들도 있는 개혁이었단 평가도 있다. 이른바 '페론주의'로 알려진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 부부의 정책은 '중산층을 육성하고 개혁을 시도했던 선구자'라는 칭송에서부터 '대중의 인기를 권력 유지에 이용한 독재정치'라는 신랄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다. 페론주의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에바 페론과 후안 페론이 남미 포퓰리스트의 시초이며, 우고 차베스 등의 지도자들도 거슬러 올라가면 페론주의가 모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후안 페론이 에바에게 권력을 향한 길을 열어주었다면, 에바는 노동자와 농민들을 본능적으로 이해하여 후안 페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페론 부부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권력을 지닌 부부였지만, 그들의 부부 관계가 원만했던 것은 아니며, 그들이 남긴 발자취로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은 커플로 기억된다. 에바 페론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크게 공존하고 있으며, 세상을 떠난지 5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추모 열기는 계속되고 있다. 약자를 위한 복지 정책을 내놓아 대중의 칭송을 받았으나,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친 장본인이며, 후안 페론의 독재를 위한 방패막이었다는 비판도 많다. 실제 '빈민 계층을 위한 정치'를 명분으로 삼아 남편인 후안 페론과 종신통치를 하려는 낌새를 보이기도 했다. 후안 페론은 정당간의 토론과 협상을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불신했으며,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계층간 갈등을 표면화시킴으로써 훗날 아르헨티나의 사회적 불안정을 유도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꼰 뮤지컬이 바로 <에비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