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게보르크 바흐만 '말리나'
나’라는 인물은 이름이 없다. 그냥 ‘나’(자아)이다.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인물이다. 작가인 ‘나’ 는 삶의 의미이자 삶 자체를 ‘이반’에게서 찾는다. ‘나’에게 사랑은 종교와도 같다. 하지만 이반에게 ‘나’는 ‘유희’다 아니, ‘유희’여야만 한다. 이반은 헝가리인이며 지식인이다. 자녀가 둘 있다. 사랑도 어느 한쪽이 더 사랑하게 되면 힘이 생기면서 복종하게 되듯이 남, 여가 각자 객체로서 대등한 관계가 성립되지 못한다. 남성 중심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아버지는 딸(‘나’)을 성폭행과 폭행을 일삼으면서도 죄책감은 없다. 어머니를 폭행하고 여동생을 살인한 ‘살인자’다. 꿈에서 주인공은 여성에게 강제로 요구되는 가치를 수용 당하며 저항할 목소리를 잃고,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결혼’이 ‘근친상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예 같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구원하고자 한다. ‘나’와 함께 생활하는 ‘말리나’, 그는 이반을 향한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주인공 ‘나’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존재이며 미스터리한 존재이다. 이반과 헤어진 후 더욱 의존하게 되고, 말리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나’는 불안한 정서를 가진 여성 자아(Anima)이다. 말리나는 그녀에게 질서를 촉구하며 이성적인 사고를 갖고 판단하라고 충고한다. ‘나’는 말리나에게 길들여지게 된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이 죽기 2년 전에 발표한 소설 〈말리나〉는 프롤로그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프롤로그에서는 마치 연극에서처럼 주요 등장인물인 '이반', 이반의 아이들 '벨라와 안드라스' 그리고 '말리나'와 '나'를 소개하며, '오늘'이란 시간과 '빈'이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설정해 놓았다. 서술자인 '나'와 말리나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빈에 살고 있는 작가인 '나'는 헝가리 출신의 이반을 사랑한다. '나'에게 이 사랑은 오로지 삶의 의미이며 삶 그 자체이지만, 이반은 이 사랑을 한낱 유희로 간주하고 '나'에게도 유희에 머물기를 강요한다. 이런 이반을 곁에 붙들어 두기 위해 '나'는 자신의 감정을 가벼움으로 포장하고, 무심함으로 가장한다. 그러나 이반의 두 아이를 알게 되고 조심스럽게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반은 '나'에게서 조금씩 거리를 유지하고 '나'는 절망하게 된다. '나'가 꾸는 악몽 속에는 딸인 '나'를 죽이려는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그런 아버지에 대해 '나'는 한편으로는 증오와 공포를, 다른 한편으로는 연민을 느낀다. 이런 양 감정으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옆에서 보살펴주는 말리나는 아버지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라고 말한다. 어쩌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는 나에게 피와 살을 나누어 준 실체가 아니 어떤 다른 존재인지도 모른다. 같이 살고 있는 말리나는 전적으로 이반에게 의존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를 보살피고 꾸짖으며 위로 해준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강박적인 관념과 이반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말리나에게 조언을 구하고 대화를 나눈다.. 말리나는 '나'에게 이제 진실을 들여다보고, 고통을 끝내기를, 이반을 죽이기를 강요한다. 여기에서야 비로소 말리나가 '나'의 또 다른 자아라는 걸 깨닫게 된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폭력속에서도, 빈의 거리에서도 말리나는 때때로 스쳐 지나가기도 '나' 앞에 나타나기도 하면서 언제나 침착한 모습을 보여줬다. '나'의 여성적인 자아와 '나'속에 내재된 남성성인 '말리나'의 대화를 보며 진정한 자아는 누구였을까? 주체적인 자아는 남성으로 표현되어야만 하는지? 여성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자아는 실현이 불가능한 것인지?
마지막을 향하는 끝무렵엔 말리나가 '나'에게만 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로 불러준다. '나'가 벽 속으로 소멸하며 듣는 말리나의 전화 받는 소리 더 이상 어떤 소리도 새어 나갈 수 없는 벽 속에서 소멸해가는 '나'의 독백… 그건 살인이었다.
이반을 향한 사랑과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억, 마음속의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지만 아름다운 시어를 갈구하며 아름다운 책을 쓰고 싶은 불합리한 여성적인 자아인 '나'와 '나'에게 냉정한 판단력을 갖기를 충고하는 남성적인 자아인 말리나 음악적인 지문이 들어가며 나누는 둘의 대화는 같은 나이면서 전혀 다른 인격체 같다. 유태인이면서 '쇼와'에서 살아남은 '파울 첼란'과 유태인을 죽인 나치 장교였던 아버지, 그 무시무시한 비밀을 파울 첼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했던 바흐만의 사랑을 떠올린다.
작가와 작품
잉게보르크 바흐만(Ingeborg Bachmann)은 1926년 6월 25일 오스트리아 캐른튼 주의 수도인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나 잘츠부르크, 그라츠, 빈, 뮌헨, 베를린, 뉴욕, 로마 등지에서 작가로서의 화려하고 전설적인 삶을 살다, 1973년 9월 26일 오랫동안 살았던 로마에서 화재로 인해 사망하였으며, 클라겐푸르트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녀는 언젠가 작가로서의 삶을, 사회적이지 못하고 외롭고 저주받은 독특한 존재방식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녀 문학의 주제는 언제나 한 사람과 한 시대, 혹은 한 사회의 정신, 즉 겉으로 드러난 형식이 아닌 내면구조였다. 그리고 그 같은 구조 속에서 고통 당하는 개인들의 내면이었다. 2차대전이 끝나고 공공연히 문학의 죽음이 선언되었을 때, 그녀는 1952년 47그룹 모임에서 파울 첼란과 함께 시를 낭송함으로써 전후문학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극단의 찬사와 함께 독일문단에 데뷔하였다. 이후 그녀는 대표적인 남성세계인 문단에서, 작가로서보다는 여자로서 그녀를 흠모하는 남성 비평가들과 신문, 방송매체에 의해 신화화되고 살아있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녀의 시에 매료되었던 문학비평가들은 “말리나”의 주인공 ‘나’에게 불행에 관한 어두운 책이 아니라 ‘아름다운 책’을 쓸 것을 요구하는 이반처럼, 그녀가 시에서 산문으로 몸을 돌리게 되고 더 이상 아름다운 시를 쓰지 않는 것을 용서하려 들지 않았고, 초기부터 일관되게 그녀의 시와 산문을 관통하는 혹독한 시대 비판과 사회- 및 문명에 비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폭력적인 몰이해를 눈앞에 하고 인생의 위기를 겪어야 했지만, 바흐만은 그러나 ‘대대적인 살인전시장’으로서의 사회의 본질을 밝히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그녀에게 글이란 존재방식이고,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는 전략적인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10여 년간 바흐만은 “죽음의 방식들”이라는 제목 아래 3부작 연작소설을 준비했는데, 그 중 “프란차 경우”와 ”화니 골드만을 위한 레퀴엠“은 미완성으로 끝나고, 오늘 한국 무대에 처음으로 연극 작품화되어 소개되는 소설 ”말리나“만이 유일한 완성작으로 1971년에 출간되었다. 바흐만은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프란차 경우“를 3부작의 서곡으로 소개하면서,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살해되고 있다고, 우리의 감각이 아닌 우리의 정신을 흔들어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을 뒤흔드는 범죄가, 내면세계를 무대로 한 피를 흘리지 않는 대대적인 도살이 사회적 도덕의 허용된 틀 안에서 행해지고 있다‘고 하였다. 연작소설에서 그녀는, 인생의 모든 드라마가 이루어지는 내면에서 정신세계의 어떠한 구조들이 한 정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지를 표현해 내고자 하였다.
바흐만은 "말리나"를 일종의 총보처럼 썼고, 작품의 처음은 마치 연극작품의 대본처럼 구성되어 있다. 작품의 처음에 먼저 등장인물들이 소개되고 시간과 장소가 명시된다. 소설은 1장 "이반과 행복하게", 2장 "세 번째 남자 ', 3장 "마지막 일들에 관하여'로 이루어져 있다. 편지글, 동화, 전화통화, 인터뷰, 악보, 대화, 독백, 에피소드, 꿈의 장면들이 언뜻 두서없이 산만하게 모자이크처럼 엮어져 있는데, 모든 장면들과 이야기들이 꼭 같이 현재적 가치를 지니고 병렬적으로 묘사된다. (시간은 '오늘')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총합은 다분히 독백의 성격이 강하고, 실제로 바흐만은 이 작품을 일컬어 ‘깊은 밤 시간, 의미 없이 부산스런 낮 시간의 노예생활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왔을 때 생겨나는 독백들’이라 하였다. 사건의 전후 없이 나열되는 다양한 장르의 단편적인 장면들은 광기에 휩싸인 주인공 ‘나’의 분열된 자아들이고, 자기 존재의 기억된 편린들이다. 바흐만에게 삶은 질병이었고, 그녀가 진단해 낸 우리 시대의 병명은 정신분열증이었다.
“말리나”는 여자이며 작가인 ‘나’가 일상적인 남녀관계와 문학세계, 그리고 그 밖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다양한 형태로 폭력적인 힘을 행사하는 남성적 논리와 이성에 대립하는 모습과, 결국 사랑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 ‘오늘’, 여성적 주체성을 남성적 분신인 말리나에게 양도하고 세상과 결별하고 이성의 세계와 결별하기까지의 죽음에 이르도록 고통스런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은 크게 ‘나(Ich)'와 이반(Ivan)과 말리나(Malina)이다. ’나‘는 여자이고 작가이다. 이반은 ’나‘와 한 골목에 살며, 부산스럽고 피곤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나‘가 첫눈에 반한 사랑이며, ’나‘가 그 동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훼손되고 파괴된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을 혼신을 다해 고대하는 메시아와 같은 존재이며,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성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작가로서의 창조적인 정신을 무시하고 그녀의 외양에만 신경 쓰며, 그녀가 필요할 때만 잠깐씩 들를 뿐이고, 그에게 ’나‘ 는 머리에 든 것이 하나 없는 어리석고 무능력한 결핍투성이 일 뿐이다. ’나‘는 이반을 통해, 불가능했던 언어생활이 다시 가능해지고, 무너졌던 단어와 문장과 문법체계에 새로이 든든한 뼈대가 구축되고 근육이 생겨나기를 고대했으나, 그들 사이에 가능한 대화는 온통 피곤하다는 문장이나, 이반이 ’나‘를 훈계하거나 야단치는 문장, 혹은 명령하는 문장들뿐이고, 감정을 토로하는 문장만은 결여되어 있다. 순전히 일방적으로 이반이 ’나‘의 존재와 그녀의 여성성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나‘의 본질, 특히 지적이고 창조적인 예술가적 능력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둘 사이에 이루어지는 토막 난 전화 문장은 남녀 사이의 사랑이 아름다운 완성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지배-피지배의 불평등한 불구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반은 타산에 능하고 사랑에 무능력하다. 두 사람이 두는 장기에서 볼 수 있듯이, 그에게 사랑은 유희이며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나’의 퀸의 부동성은 전통적으로 남자 앞에서의 여자의 상태를 암시한다. 그에 반해 ‘나’는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고 직접적이며 타산에 무능하고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규칙이나 유희가 아니라 삶이며, 이분화 된 정신세계의 불완전함을 넘어선 온전한 자유의 상태를 갈구한다. 이성과 감성, 예술과 철학, 육체와 정신, 언어와 세계, 사회와 개체로 이분화된 것들이 서로에게 흘러들어 사랑이 완성되고, 분리된 남성성과 여성성이 불평등 관계를 극복하고 온전하고 아름다운 새로운 성이 되기를 병적으로 소망했던 ‘나’는 이반과의 사랑이 불가능함을, 그럼으로써 그녀를 굴욕스럽게 했던 이반으로 부터의 이별이 진행중임을 알고 있다. “말리나”는 ‘순수가 불필요해진’ (니체) 시대의 ‘사랑의 (장렬한) 몰락’ (니체)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반과의 이별이 진행되면서, ‘나’와 이반과의 관계가 시작되기 이전에 체험된 역사적 맥락의 가부장적 정신구조 및 사회구조가 다양한 아버지의 성폭력적인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그녀의 언어를 탈취하려 하고 그녀의 창조적인 능력을 억누르고 사장시키려 위협했던 오랜 사회적 관습, 아버지가 쓴 듀엣 곡에는 애당초 남자의 역만 들어 있고, 여자의 목소리로 부를 수 있는 그녀의 파트는 들어 있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말리나와의 심리 분석적인 대화를 통해 살인자의 모습으로 꿈속에 나타나는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 가는 동안 ‘나’로서는 말리나와의 이별 또한 자명해져 간다. 예술가로서의 그녀의 여성적 주체성이 사회를 지배하고 역사를 지배해 온 아버지의 율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부수적이고 결핍되고 불필요한 존재로 잊혀져 온 Eros의 세계를 대변한다면, 말리나는 Logos의 세계를 인격화한 것이고, 그녀는 문학세계에서 여성성이 수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석적이고 냉정한 말리나식의 이성적 글 쓰기, 즉 남성적 글 쓰기만 생존할 수 있을 뿐, 그녀의 여성적 글 쓰기, 광기의 미학을 위한 자리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한, 그녀는 자기 식의 글 쓰기와 사유- 및 체험방식을 말리나에게 모두 양도하고 ‘이곳’과의 이별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침내 그녀가 오래 되고 단단한 남성적 정신세계의 벽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감으로써 말리나와 ‘나’의 분열은 최종적인 것으로 고착화되고, 그녀의 죽음, 곧 그녀의 언어적 실존이 침묵하게 되는 과정은 결국 이반과 말리나, 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을 한 어머니와 수많은 자매들이 공모해서 이루어 낸 살인인 것이다.
전통적인 소설 기법과는 달리, 서술적인 측면이 약하고 수많은 에피소드의 모자이크 처리를 통해 영상미가 뛰어나고 언어 및 음악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이 작품의 경우 어떤 형식보다도 연극무대에서 가정 그 메시지와 효과가 잘 나타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들어 독일어권 문학에서 여성문학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말리나”가 발표되었을 때, 남성 비평가들은 다만 ‘불행한 사랑 이야기’쯤으로만 생각했으나, 지난 30여 년간에 걸쳐 바흐만이 복합적이고 강도 높게 비판한 철학적, 문학적, 역사적, 문화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맥락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동안 이제는 독일어권 여성문학의 선구자로 자리를 굳힌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