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정궈웨이 '좋은 날'

clint 2023. 8. 2. 12:32

 

극작가 정궈웨이는 <최후의 만찬>(2011년 초연) <최후의 죄악> (2015년 초연)에 이어 2018 3 <좋은 날>을 무대에 올려 가정 해체 3부곡을 완성했고, 2019년 제28회 홍콩 드라마어워드에서 최우수 작품 프로듀서상, 최우수 연출가상,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여우주연상, 최우수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최후의 만찬>은 총서에서 이미 대본을 출판하였고, 2018년 우리 협회의 제1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에서 극단 바람풀이 낭독공연을 했고, 이후 정식으로 무대 공연이 이뤄지면서 2020년 서울연극인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좋은 날> <최후의 만찬>처럼 집안의 좁은 공간에서 소수의 가족 구성원 간에 집중도 있게 벌어지는 장면을 엮어내었다. 또 어린 자녀에게 가족- 가정이란 울타리- 공간은 끔찍한 폭력의 장이 되고, 이를 엄마가 외면하거나 방관하다가 결국 각성하고 엄마와 자녀는 함께 아버지를 응징한다. 반면 <최후의 만찬>의 엄마는 아버지의 폭력에 의한 피해자로 다소 연민을 자아내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좋은 날>의 엄마는 자녀의 말에는 귀를 기울일 줄 모르고 길러줬다는 명목으로 아빠와 한통속이 되어 자녀의 돈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가정 해체' 3부곡이라는 말에 걸맞게 어느 한 구석도 정상적인 가족 같지 않다. <최후의 만찬>에서 궈슝은 외동아들로, 오롯이 아버지의 폭력 과 무기력한 엄마를 이겨내야 했다면, <좋은 날>은 자매를 등장시켜 서로 간의 연대감을 부각시켰다.

 

 

언니는 아버지의 지속적인 성폭행을 견딜 수 없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났다. 오랜만에 친정에 온 언니는 동생에게 결혼 축하의 말을 건네지만 이들 관계는 여느 가족과는 달라 보인다. 동생과 결혼할 상대의 이름도 이제 막 알았을 정도로 왕래가 없다. 언니와 동생은 점차 어릴 적부터 쌓아왔던 자매 간의 정- 믿음을 발판으로 아버지의 만행을 확인한다. 아버지의 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언니는 결혼 후에 성생활이 불가능했고 형부의 매춘을 용인하다가 남편의 매춘 상대가 십대의 어린 여자아이임을 알고 남편도 자기딸을 범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 잡힌다. 동생도 아버지의 성폭행-성추행(어느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음)을 당했으며 꼬박꼬박 부모에게 생활비를 지급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지옥같은' 집을 벗어나기 위해 직장 동료이자 상사인 동성애자와 위장결혼을 하려고 한다. 엄마는 두 자매가 결혼했던- 하려는 이유를 여태 모르고 있다가 '좋은 날'을 앞둔 밤에 남편의 악행을 전해 듣지만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하고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자 남편을 죽이려 한다. 두 딸은 엄마와 함께 행동한다.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생의 방안이다. 갈등을 야기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고, 다른 등장인물의 대사를 듣고 아빠가 술을 먹는 군, 노래를 부르는 군을 파악할 수 있고 그간 어린 딸애들에게 몸쓸 짓을 한 끔찍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후의 만찬>에서처럼 이 가정은 남보다 못한, 끔찍한 폭행이 벌어졌지만 여태 그 누구도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이가 없었다. 가장 어린 동생은 그런 엄마와 언니, 형부의 비겁한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고 언니와 엄마는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고 아빠를 살해할 마음을 굳혀간다.

 

 

아버지의 친딸 성폭행, 형부의 미성년 원조교재, 결혼할 막내딸 신랑이 게이... 부친 살해... 막장드라마도 이런 막장은 없을 것 같다. 이 <좋은 날>이 그런 작품으로 먹먹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어린 나이에 폭력을 당하고도 도움을 받지 못했고, 그런 상황을 항변하지 못하는 자매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작품을 읽으면 아주 재밌게 쓰여진 걸 알 수 있다. 곳곳에 웃음유발 대사가 포진되어 있고, 장소 변경 없이 좁은 방에 모여 암전 없이 이어지는 이 작품은 언니, 동생, 엄마, 형부의 긴장감 있는 대사로 작가 정궈웨이만의 장점이 보여지는 문제작이라 하겠다.

제목 '좋은 날'(好日子)도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과 같이 좋은 날이 망친 날의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