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자연의 딸'
<자연의 딸>은 괴테가 1803년에 발표한 5막 비극이다. 사생아로 태어난 오이게니가 왕족이라는 신분을 되찾기 직전, 이복형제의 계략에 휘말려 국외로 추방당하고 시민 계급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그렸다. 아름다운 언어, 수준 높은 비극성을 갖춘 문학작품으로 평가된다.
공작은 울창한 숲속에서 사냥하는 도중에 조카인 왕에게 숨겨 놓은 사생아 딸 오이게니가 있다고 고백한다. 딸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오이게니의 생모인 후작부인이 최근 세상을 떠나자 이 기회에 공작은 왕에게 비밀을 털어 놓고 딸을 왕실 혈육으로 인정받게 하려고 한다. 오이게니는 왕실 가족으로서 누릴 새로운 행복을 꿈꾼다. 그러나 곧 그녀의 이복 오빠가(작품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숨겨져 있던 이복 누이를 인정할 생각이 없음이 밝혀진다. 그는 공작의 비서와 공모해 간계를 꾸미고, 오이게니를 길렀던 가정교사를 협박해 오이게니를 유인하고 납치해 국외로 추방하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인 공작에게는 딸이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거짓 보고한다. 매수된 교구신부는 그녀의 시신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게 망가졌다고 허위보고하면서 딸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려는 아버지를 막는다. 오이게니와 가정 교사는 추방될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어느 항구에 도달한다. 오이게니는 자신의 운명을 명확히 알려고 하고 자신을 입증하려고 여러 방면으로 구출되기를 시도해 보지만 실패한다. 가정교사는 오이게니를 외딴 섬으로 데려가라는 왕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를 갖고, 추방을 피하기 위해서는 높은 혈통과 권리를 포기하고 신분 낮은 시민 계급의 남자와 결혼하는 수밖에 없다고 오이게니를 설득한다. 이때 이 항구 도시의 시민으로 고매한 젊은 법관 하나가 그녀에게 구혼한다. 오랜 망설임 끝에 오이게니는 조 국에 남고자 법관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지만 법관은 그녀에게 "순수한 애정을 가진" 오빠로서 그녀를 받아들이고, 그녀가 조용히 숨어 살 수 있도록 해준다고 약속해야 한다. 오이게니는 이러한 방법으로 위기에 처한 조국에 남아서 언젠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심지어 아버지인 공작과 왕이 구원자로 나타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괴테의 5막 비극 <자연의 딸>(혼외자의 비유적 표현이다)은 1803년 4월 2일 바이마르에서 작가의 지도 아래 철저한 독회를 거쳐 초연되었다. 이때 관객은 비록 거부감을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침묵했다. 공연에 대해서도 시작할 말이 많지 않았으니, 우선 언어와 문체도 그렇고 계획된 삼부작의 제1부로서 줄거리의 목적과 의미가 불분명해 생소하게 느끼기 충분했다. 프랑스 혁명과의 관계도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 문학계의 친구들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헤르더는, "자네의 <자연의 딸>이 자네의 자연의 아들(괴테가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와 정식 결혼하기 전에 태어난 아들 아우구스트를 암시)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든다네!"라고 말했는데, 긍정적 평가라고 할 만한 농담이었으나 괴테는 언짢아 했으며, 결과적으로 괴테와 헤르더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괴테는 말년에도 "사랑하는 오이게니"를 최종 완성할 때까지 숨겨놓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보물을 완전히 꺼내기 전에 침묵을 깬 도굴꾼에 자신을 비교했다.
그에게 소재를 제공한 작품은 1798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스테파니-루이즈 드 부르봉콩티가 직접 저술한 역사적 회고록(Mémoires historique de Stéphanie-Louise de Bourbon-Conti, ecrit par elle-même)≫이었다. 괴테는 이 작품이 발간된지 1년 후 1799년 11월 실러를 통해 작품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회고록은 특별히 수준이 높지도 않고, 특별히 신빙성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무엇보다 개인의 운명과 정치적 사건의 상호 작용 때문에 괴테의 관심을 사로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1798년 파리에서 자비로 출판된 <스테파니루이즈드 부르봉-콩티가 직접 저술한 역사적 회고록>을 읽은 괴테는, 1799년에 벌써 비극 삼부작 한 편을 계획했는데, 이 비극이 "프랑스혁명과 그 결과에 대해 오랜 세월 써 왔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진지하게 기록하여 담으려는 그릇"이 될 것으로 의도했다. 회고록 원본은 1773년경부터 1797년까지 일어난 일을 상세히 기록한 자서전인데, 독자는 거기서 오직 저자인 부르봉 왕가의 서녀(庶女) 스테파니-루이즈의 한 가지 생각, 즉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려는 생각, 자신이 왕실 혈통이고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가문에 합법적으로 속한다는 생각만을 발견하게 된다. 스테파니는 전력을 다해 목숨을 희생할 각오까지 하며 자신의 출생과 신분에 대 한 권리를 찾으려고 한다. 그녀가 계속 왕실의 약속을 요구하지만 매번 거부당하다가 결국은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괴테의 비극 삼부작 중 제1부 <자연의 딸>의 사건 진행은 계속되는 과정도 그렇고, 세부적인 것까지 회고록에 묘사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괴테가 계속하려던 삼부작의 뒷부분, 2부와 3부에서 오이게니는 완전히 숨어살며 농장을 개선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마침내 혁명이 발발한 시기의 정치적 사건들 덕분에 수도로 들어가 왕의 곁에 불려 간다.(원본의 저자 스테파니는 시민과 강요된 결혼을 한 후에도 루이 16세로부터 합법적 인정을 받으려고 시도했으나, 거의 성공직전에 실패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루이16세가 처형당했기 때문이었다. 스테파니는 남장을 하고 왕실 기병대에 입대한 적도 있었고, 그 후에는 혁명 세력의 필요에 의해 "국가의 서기"가 되기도 했다. 말년에 그녀의 신분이 밝혀진 후, 그녀는 신분에 합당한 생존연금을 청구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으므로, 1부에 예시된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괴테의 비극 <자연의 딸>과 그 소재가 된 스테파니 루이즈의 원본을 연구하고 두 작품을 비교한 베른하르트 뵈셴슈타인(Bernhard Böschenstein)은, 괴테가 이 희곡으로 프랑스 혁명에 대해 대답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힌다. 괴테가 쓴 5막극 <자연의 딸>은 그가 구상했던 삼부작 가운데 제1부다. 1부의 기본 줄거리는 중심 줄거리와 지엽적 사건들에서 대부분 원전을 따르지만, 시대는 루이 15세 시절 즉 1773년에 머물고 있고, 후속작에 포함될 프랑스 혁명 시대까지는 이르지 않고 있다. 괴테는 계획에 그쳤던 2부나 3부에 가야 비로소 프랑스혁명에 대해 자신이 전념했던 "그릇"을 내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딸>은 전적으로 암시의 의미를 나타내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이 극은 처음 1, 2막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보다 암시의 기호언어가 훨씬 중요한 극”으로서 뒤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괴테가 모범으로 삼은 작품은 친구 빌헬름 폰 훔볼트가 번역한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이다. 아이스킬로스는 드라마의 마지막에 자행될 아가멤논 살해를 예언하는 기호 언어를 도입한다. 관객들은 드라마의 결말을 알고 있고, 숨겨진 암시와 은유를 이해하고 있어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승리하고 돌아온 귀향자의 발 앞에 핏빛 양탄자를 펼쳐 놓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고 있다. 이 살해는 필연적 결말을 초래한다. 즉 오레스테스의 모친 살해, 복수의 여신들에게 쫒김, 아테나 여신에 의한 사면, 아레오파고스 회의의 새로운 질서다.
괴테는 신화적 비중도 정치적 비중도 없는 한 운명을, 오히려 그 인물의 완전한 무기력과 성과 없음을 묘사하기 위해 이 고대 비극의 구조인 예시의 기법을 모방한다. 독자들은 희곡 작법상 가장 의도적으로 연출된 의식(儀式)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의식은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고 오히려 성과 없는 일의 조건들을 묘사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다.
그러면 왜 괴테는 이 주변적 소재에서 프랑스혁명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반영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는 작품에서 대립되는 양편을 소개한다. 즉 아버지인 공작이 우상화 하는 여주인공 오이게니 편과, 공작의 유산과 가문의 명성을 우려해 음모를 꾸미는 이복오빠와 그에게 조종되는 앞잡이인 가정교사, 비서, 목사로 구성된 또 한 편이다. 그들이 납치에 성공해 여주인공의 죽음을 선언하고 왕족인 그녀를 시민 계급인 법관과 결혼시키는 일들은 소재로서는 중요하지 않지만, 새로운 정치적 행동방식을 나타내는 기호 언어의 구실로서는 중요성을 갖는다.
빌헬름 셰러는 이미 <자연의 딸>을 괴테의 "가장 고상하고 독특한 문학"으로 분류했다. 헤르더도 이 작품을 “이 시대의 엄청난 사 건들을 자신의 가슴에 담아 보다 높은 견해로 발전시키고, 깊이 숙고하는 정신이 맺은 매우 훌륭하고 함축적이고 완숙한 열매"라고 일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