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아이스킬로스 원작 김영무 재창작 '엘렉트라 인 서울'

clint 2023. 6. 29. 19:27

 

서울 근교의 어느 산 정상 부근에 세업사란 절이 있는데, 그 절은 이른바 참회 도량으로 유명해서 기도원도 겸하고 있다. 어느 날 그 절로 우공스님이 찾아오는데, 그의 얼굴은 심히 일그러져서 본래의 자기 얼굴 모습을 찾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주지인 노승 무법이 그 우공스님을 맞아, 강원도 일지스님으로부터 우공스님 과거의 모진 인연들을 모두 전해 들었다는 말을 한다. 잠시 후, 우공스님은 그 절에서 참회 기도를 올리는 류여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녀는 우공스님의 생모였으며, 15년 전에 정부(情婦) 박기수와 공모하여 남편을 교통사고로 위장 살해한 여인이었다. 비로소 우공스님은 노승 무법이 '또 다른 뜻을 품고 자신을 그 절로 불러 들였음을 인식하게 된다. 한편 류여사의 정부였던 박기수는 최근 들어 술에 취하면 류여사를 학대하는가 하면, 그녀의 뒤를 밟아 세업사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노승 무법의 주선으로 우공스님은 실로 오랜만에 옛날의 가정교사였던 민선생은 물론 가련한 누이동생 애라까지 만나게 되면서 참혹했던 그들 과거사를 토로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우공스님은 생모의 정부 박기수에 의해 절벽 아래로 던져지는 등 유괴, 살해될 뻔했다가 일지스님의 손에 의해 간신히 소생된 바 있었고, 애라는 창녀로 부산까지 팔려간 몸이 되었다가 불과 3년 전에 민선생의 헌신적인 애정에 의해 구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애라의 가슴 속에는 생모와 박기수를 언젠가는 죽여 버리고 말겠다는 복수심만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우공스님은 오빠로서가 아닌 스님의 입장에 서서 누이동생에게 생모에 대한 원한이나 증오심을 버렸으면 한다. 노승 무법의 뜻도 그러했다. 왜냐면 현생의 불행은 전생의 죄업에 따른 과보이며 현생의 죄업은 후생에 다시 업장으로 나타날 것이니, 모름지기 인간은 선택의 매순간마다 보살심을 발휘해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애라는 우공스님의 그러한 설법을 비웃기만 한다. 이윽고 애라는 류여사를 만나게 되고, 칼을 뽑아 들기는 하지만 차마 복수를 결행 하지는 못한다. 류여사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었다. 비로소 애라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민선생의 애정을 주체하지 못해 절망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다못해 민선생에게 후생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우공스님의 뜻대로 애라가 생모를 용서할지도 모를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박기수가 등장하여 난폭하게 류여사를 학 대한다. 그 순간 애라는 무의식이 폭발한 듯 박기수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전에 창녀 생활에서 누적되었던 남성에 대한 증오심이 폭발했던 것이다.

 

 

불자인 김영무 극작가는고대 그리스의 비극 엘렉트라를 오늘날의 서울로 데려온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상상하며 집필을 했다. 그는 반야심경으로 보는 불교 사상을 저술할 정도로 불교에 심취해 있는데, 그리스의 비극 구조를 불교의 윤회 사상을 대입해 극을 풀어냈다. 그리스 비극의 미학 구조는 신의 짓궂은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충돌함인데 오늘날의 서울 환경과는 맞지 않아불교의 윤회 사상을 환경적 배경으로 대입했다. 그래서 서울 근교 업을 씻는다는세업사라는 사찰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했고, 이 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화해, 그리고 복수, 다음 생애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엘렉트라> 그리스의 영웅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딸이며 오레스테스의 누나다.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귀국하던 , 그는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에게 피살되고 만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원수가 엘렉트라는 그후 7 동안이나 어머니와 계부 아이기스토스로부터 끊임없는 학대를 받는다. 그녀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있는 유일한 희망은 머나먼 타국을 떠도는 동생 오레스테스뿐. 마침내 오누이는 극적으로 다시 만나 복수에 성공한다. 작품은 주인공 엘렉트라가 '혼자서'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기로 결심하는 데서 시작하여 유랑하던 오레스테스가 친구와 함께 귀국길에 올라 변장한 모습으로 궁정으로 잠입한 누이와 함께 거사를 완수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리스의 시인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으로 발표되었고, 20세기에는 아누이와 싸르트르가 재창작해 발표하고,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호프만슈탈의 각본을 기초로 오페라 "엘렉트라" 작곡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창시한 정신분석학에서의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용어 때문에 현대의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작가의 글 김영무

1,998년 경. 소위 연극 정신의 충전을 위해, 나는 작심을 하고 1,974년에 도서출판 「현암사」에서 발행한 바 있는「희랍극 전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저간에는 필요에 따라 해당 부분만 읽어 보던 책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나는 가령 고대그리스의 엘렉트라를 오늘날의 서울로 데려 온다면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하는 상상을 해 보게 되었다. 물론 엘렉트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가멤논의 딸로써 동생 오레스테스와 힘을 합쳐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하는 인물인데, 희랍의 작가들인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비극으로 작품화 되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막연했던 나의 그 상상력이 결국은 <엘렉트라 인 서울>이란 이 작품의 탄생을 향한 원동력이 되었다. 거의 모든 작품이 그럴 테지만 처음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여겨졌기에 도전욕을 불태울 수가 있었는데, 막상 작업하려다 보니 역시 세상에는 쉬운 일이 있을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서양은 신권중심주의 사회였음에 반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의 사상적 맥락은 결국 무신론이 그 주류가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고대그리스 비극의 미학적 구조는 짓궂은 신의 의지와 발가숭이 인간 의지와의 부딪침인데, 엘렉트라를 서울로 데려와서 다시 무슨 신적 의지와의 다툼으로 형상화한다는 건 별다른 재미가 있을 턱이 없다는 논리로 귀결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해서 이른바 무신론을 극명한 논리로 설파하고 있는 불교의 윤회적 사상을 작품의 환경적 배경으로 대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반야심경으로 보는 불교사상이란 책을 집필했을 만큼 나는 꽤나 집요하게 불교를 탐구해본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자력 신앙이랄 수 있는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해탈을 하게 되어 윤회(輪廻)의 흐름에서 벗어나기 위함인데,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애라(엘렉트라)는 순수한 사랑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해탈(解脫)을 거부하며 후생에 다시 태어나길 원한다.”는 절규까지 하게 되는데, 과연 그녀의 절규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어필 될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한다. 정욱 선생과 윤상현 씨는 금년 1월에 공연된 <노자 일기>에 이은 두 번째의 만남이 되는 셈인데, 특히 무법스님 역을 맡은 정욱 선생이 삭발까지 자청하며 작품에 임해 주는 모습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민경옥 여사는 「오토바이 옆에서(2,004)」와 「(악극)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2,004. 2,006)에 이은 세 번째의 만남이 어서 반갑기 그지없었다. 애라 역의 이윤희, 우공스님 역의 김세홍, 기수 역의 송수영, 애리 역의 박미정 제씨와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는 데, 저마다 열의를 다하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후배들을 자상하게 지도해 주는 송수영 씨의 모습에서는 연극이 집체 예술이란 사실을 재삼 인식할 수가 있어 흐뭇함을 느꼈다. 송훈상 연출가와 나는 「매화마을 스토리(2,008), 「노자일기」에 이은 세 번째의 만남이어서 일단 신뢰가 전제 되어 있었다. 다만 극단 대표이자 연출가인 문고헌 형의 건강이 이전 같지 못해 세월의 무상함 만은 지울 길이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