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 작 윤백남 각색 '희무정'
1923년에는 윤백남(尹白南)이 각색한 <희무정>이 민중극단(民衆劇團)에 의해 공연되었다. 많지 않은 수이긴 하나 1920년대 중반에는 영문학이나 불문학을 전공한 이들에 의해 빅토르 위고의 시가 번역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짐작컨대, 빅토르 위고에 대한 1920년대 번역자들과 독자 대중의 관심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윤백남은 <박명희의 죽엄>, <영겁의 처>, <루이 십육세>가 외국희곡 텍스트의 번역, 번안의 시도였다면 '재각색'으로 제시한 <희무정>은 원작 <레미제라블>의 일부분을 취하면서도 작가만의 독창적 무대구성과 대사 창작을 시도하고 있다. <희무정>의 원작 <레미제라블>은 당시 민태원의 번역소설 <哀史>(「매일신보』, 1918.7.28-1919.2.8), 무성영화 <噶無情>(중부청년회관, 1920.5.11-13) 등에 의해 이 미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으로, 윤백남 역시 무성영화로 널리 알려진 제목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희무정>은 1922년 11월 6일 조선극장에서 윤백남이 주재 하던 '만파회'에 의해 초연된 이후 1923년 2월에 민중극단에 의해 재공연된 작품이며, 희곡집 《운명》에 수록되었다. 대중적 문예물의 각색을 시도한 이 작품에 서 주목할 것은 원작의 어떠한 지점을 극의 핵심으로 삼았는가 하는 작가의식의 측면과 번역, 번안희곡 창작을 통해 축적된 이 시기 작가의 극작술이 창작과 다 름없는 '재각색'본의 구성에서 어떠한 식으로 발현되었는가 하는 지점이다. 특히 극작술의 양상은 이 작품이 발표된 1922년이 작가가 민중극단의 창단을 기점으로 수많은 작품의 번역, 번안에 착수한 시기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항이다.
윤백남은 <희무정>에서 원작 소설의 전반부를 대상으로 극화를 시도한다.
어느 겨울의 석양무렵, 19년간의 감옥생활을 마친 ‘장발장’은 행로에서 머문
소도시 '페이'의 '콜스酒店'에서 전과자라는 이유로 쫓겨난다.
소녀 ‘마데일드’의 도움 으로 짠발짠은 마리엘 승정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된다.
장발장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승정에게 털어놓고, 승정은 그를 친절로 보살핀다.
그날 밤, 자신의 일곱 형제들의 꿈을 꾼 장발장은 세상에 대한 분노로 승정의 은접시를 훔쳐 달아난다.
다음 날 아침, 마리엘 승정은 헌병에게 잡혀온 장발장의 죄를 감싸고 은촛대까지 주어 그를 마중한다.
아침 교회 종소리와 찬미소리에 장발장은 무릎을 꿇는다.
2막으로 극화된 희곡 <희무정>은 마리엘 승정의 용서와 장발장의 깨달음이 극의 절정부분에서 드러나도록 각색한다.
원작 전체의 각색이 아닌, 영화와 소설 을 접한 관객들이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만을
의도적으로 극화한 사실은 원작의 대중성에 기대어 각색을 진행한 윤백남의 극작의도를 보여준다.
극작술의 측면을 살펴보자. 우선 <희무정>에서 주요 등장인물의 전사는 극의 서두에서 제 3자간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극의 서두에서 극적 사건의 주동인 물이 아닌 제3자간의 대화를 통해 전사(前史)와 주동인물의 성격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극적공간은 주로 '주점/주막'이 되며, 이같은 제3자의 대화를 통한 설명의 방식은 윤백남의 대중소설에서도 나타난다. <희무정>에서는 1막의 '콜바스 酒店'을 배경으로 원작에 없는 ''과 'Z', '老兵'간의 대화를 통해 19년 만에 출옥한 장발장의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독특한 점은 이들 제3자의 대화가 극적 정보의 전달과 함께 희극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