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론소 델 캄포 '그리스도 수난 소시극'
톨레도에서 상연한 극작품들 - 그리스도 수난 소시극
15세기에 들어오면 톨레도 성당을 중심으로 많은 종교극이 상연되는데, 1418년 성령강림 축제를 기념하기 위한 연극이 행렬 행사와 함께 있었고, 최후의 심판을 그린 일인극이 1453년에 있었다. 1461년에 성모 승천을 무대에 올렸는데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465년에 '상연(representaciones)'이란 말이 등장하고, 1476년에는 실제 그러한 이름에 걸맞은 연극을 상연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극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보면 이렇다. 먼저 등장인물들 중에서 중요한 역은 승려와 합창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맡았으며, 이외의 인물들은 승려회에 관여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이전에 비해 특히 주목을 끄는 요소는 의상이다. 예수에겐 가발을 씌웠고 세례 요한에게는 희고 주황빛 나는 쇠꼬리가 달린 가운을 입혔으며 가브리엘 천사에게는 주석으로 된 박을 입힌 화려한 옷을 입혔고, 악마들에게는 끝이 뾰족한 복면을 씌웠으며 방울이 달린 털옷을 입혔다. 악역인 악마나 유대인 사형집행인, 그리고 그 밖의 인물들은 자기 역할에 걸맞은 가면을 썼는데, 이는 그림에서 따온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상연되었던 극에 대한 통계를 보면 성령강림절을 기념하기 위해 상연했던 시극이 1493년에서 1510까지 1년에 걸쳐 33개나 된다. '성자들의 시극'과 '황제 시극’ 또는 '산 실베스테 시극'은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몇 부분이 남아 내려오고 있다. 물론 완전한 상태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작품은 없다. 하지만 당시 연극이 어땠는지를 알게 하는 작품으로, 그때 연극 상연에 직접 관여했던 알론소 델 캄포가 1486년과 1499년 사이에 편집해 작품화한 <그리스도 수난 소시극>이 있다.
이 작품은 톨레도 성당의 성 블라스 예배당에 소장되어 있는 장부에서 발견되었다. 원작자는 알지 못하며 작품 또 한 초고 육필 본인데다 상당부분이 지워져 있어 그대로 상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장면으로 연출하기 어려운 몇 부분을 제하고 작품의 윤곽은 잡을 수가 있었다. 알론소 델 캄포는 전문 극작가는 아니지만 이것을 바탕으로 성서 <마태복음> 26장과 38장, 그리고 디에고 산 페드로(Diego de San Pedro, 1437~1498: 스페인 카스티야 태생의 작가다)의 <시로 읊조린 예수의 수난>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완성했다. 이런 이유로 알론소 델 캄포를 이 작품의 작가로 보기도 한다.
내용은 산상 기도와 예수 체포, 성 베드로의 부인, 빌라도의 재판, 성자 요한과 성모 마리아의 만남을 골격으로 한다. 장면 사이사이에 서정적 여운을 주는 한탄이 세 번에 걸쳐 나오는데 이는 성자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것으로, 예수 수난의 순간들을 생각하게 한다. 장면이 바뀜에 따라 각운이 다양하게 변하며 작가는 성서에서 말하지 않는 부분들을 자세히 묘사했다. 변사가 맡아 해야 할 부분을 등장인물들이 직접 연출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예수 수난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지켜본 산증인들로 생생하게 되살렸다. 이로 인해 작품이 의도한 대로 애절함이 느껴진다. 이 작품 또한 고메스 만리케의 작품처럼 당시 회화에서 영향을 받아 한 사건을 보는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