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라 M. 라구소 '에코와 나르시스: 자기애'

나르시스는 강의 신 케피소스가 물의 요정 리리오페를 겁탈해 얻게 된 아들이었다. 리리오페는 나르시스라 이름 지은 아들의 운명을 묻고자 눈 먼 예언자 티레시아스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에게서 아들이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한, 오래 살 것이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듣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르시스는 어느덧 열 여섯 살이 되었고, “소년 같기도 하고 성인 남자 같기도 한” 아름다운 외모에 반해 수많은 젊은이들과 소녀들이 그를 열망했다. 그러나 차가운 나르시스는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루는 그가 사슴 사냥에 몰두해 있을 때, 한 요정이 그를 보고 단숨에 사랑에 빠졌다. 그녀의 이름은 에코, 헤라에게 벌을 받아 스스로는 먼저 말할 수 없고 오로지 상대방의 마지막 말만을 되풀이 하는 숲의 요정이었다. 사실 벌을 받기 전의 그녀는 엄청난 수다쟁이여서 남의 말을 들을 새도 없었다. 이런 에코에게 마침 제우스가 요정들과 노닥거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헤라가 그 현장에 대해 묻자 에코는 끝없는 수다로 헤라의 정신을 쏙 빼놓았고, 그 사이 제우스와 요정들은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말았던 것.

헤라의 저주를 받은 에코는 첫 눈에 반한 나르시스에게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어 애가 탄다. 그녀는 함께 사냥 나온 동료들을 애타게 부르는 나르시스의 마지막 음성만을 숨어서 따라 할 뿐이었다. 에코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나르시스는 “여기서 우리 만나자”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에 “우리 만나자”라고 말하며 달려 나온 에코는 용기를 내어 나르시스의 목을 와락 끌어 안았다. 그러자 나르시스가 “손 치워, 껴안지 말고! 그 전에 내가 죽는 게 낫지” 라고 진저리 치며 그녀를 떼어냈다. 이 마지막 말마저 따라 할 수 밖에 없었던 에코는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숲속 깊은 동굴로 숨어 버렸습니다. 이렇듯 매정하게 에코를 뿌리친 나르시스에게 역시나 거절당한 요정과 젊은이와 소녀들 가운데 한 명이 마침내 람누스에서 섬기는 네메시스 여신에게 대신 복수해줄 것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도 이렇게 사랑하다가 사랑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여신은 기도를 들어주었다.

어느날 나르시스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너무도 아름다운 이를 보게 되었고, 마치 운명처럼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느날 나르시스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맑은 샘물 앞을 지나다 물을 마시기 위해 몸을 엎드렸고, 그 순간 나르시스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물속의 아름다운 이는 자신을 바라만볼 뿐, 가까이 가려 물 속으로 손을 뻗치면 마주 손을 내미는 듯싶더니 오히려 사라지고 또 잠시 후 안타까운 얼굴로 다시 나타나 애를 태우는 것이었다. 나르시스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그렇게 그의 곁에서 메말라갔다. 이런 나르시스를 애처롭게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목소리만 남은 에코였다. 나르시스는 분명 그 자신과 사랑에 빠졌고, 그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아, 헛되이 사랑 받은 소년이여! 잘 있어!”라고 말하고는 고개를 떨군다. 에코 역시 “잘 있어!”라는 사랑했던 이의 마지막 말을 되돌려 보내며 그의 죽음을 애도란다.
나르시스의 망령은 스틱스강을 건너면서도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요정들은 그가 죽은 자리에서 시신 대신 물가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수선화 한 송이를 발견했다.

결국 에코와 나르시스 신화는 요즘 말로 쌍방이 아닌 철저한 일방통행이었기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이야기이다. 이 두 남녀는 묘하게 닮아 있다. 에코는 남의 말을 듣기보다 오직 자신만의 말을 내뱉기에 바쁜 수다쟁이였고, 이로 인해 헤라의 분노를 샀고, 나르시스는 다른 이들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을뿐더러 잔인하기까지 한 자기중심주의자였다. 에코와 나르시스 신화는 모든 것에 있어 그 적절함의 정도를 아는 것, 정해진 경계를 알고 결코 초과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절대적 가치로 여긴 고대의 사유에 관해 논하고 있다. 경계를 넘어선 에코와 나르시스는 가차없이 신들의 심판을 받았다. 에코는 자신의 말을 잃게 되었고, 나르시스는 결국에는 자신과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