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조안나 머레이 스미스 '러브 차일드'

clint 2023. 3. 8. 13:42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었던 빌리가 혼자 사는 어머니 안나를 25년만에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딸은 어머니가 엉엉 울면서 자신을 반길 것으로 생각하지만, 방송편집인인 어머니는 냉랭하다. 안나는 이제 자신을 억누르는 성격이 돼버렸다. 그녀는 17세에 사생아를 낳았지만 일하기 위해 딸을 찾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딸은 어머니의 지독한 이기주의에 마구 대들지만 어머니는 나는 시대의 희생물이었다고 변명한다. 대조적인 모녀가 벽을 허물고 하나로 합하는 과정을 추적하는데, 결국 사람은 그들이 못다한 딸과 엄마로서의 역할을 확립하기에 이르지만 과정에서 어머니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으려는 딸과 자식 없는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안정된 생활과 자기영역을 지키려는 어머니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지속되면서 극적인 긴장감을 한껏 북돋운다.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리는 게 여자에게 가장 쉬운 일이라고 믿는 딸과 아이를 기르는 사육사의 역할로 인생을 마치긴 싫다.”는 어머니는 서로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낀다. 둘이 대립에서 화해로 다가갈 무렵 빌리는 나는 진짜 아니다.”라고 고백한다. “생모가 너무 보고싶어 비슷한 사람을 어머니로 삼을 생각이었다.”는 말로 극의 흐름을 뒤집는다. 그러나 다시, 모성애를 억지로 누르고 있었던 안나가 빌리를 딸로 삼음으로써 극은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

 

Love Child, 사생아란 제목의 이 작품은 호주 여성연극으로 여류작가 조안나 머레이 스미스의 작품으로 화려한 언어와 심리적인 갈등이 전편 내내 넘쳐난다. 일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가를 진지하게 묻는 작품이다. 어머니와 딸의 대화가 시종 날카롭게 부딪치면서 박진감 있게 전개되는데, 그 안에서 일하는 여성의 쓰라림과 모녀간의 원초적인 정이 진하게 느껴진다. 러브 차일드는 강렬하고 교훈적이다. 이 작품은 많은 이슈를 부각시키는 복합성을 갖춘 연극이고, 입양과 페미니즘이 두 여성에 의해 탐구된다. 이 연극이 야심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안나가 자신의 고통을 감싸줄 피난처가 있는 지적인 세계를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과정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강렬한 이 작품은 인물들 간의 긴장과 복합성을 수반하고 있다. 이 연극의 묘미는 본능적인 인간의 복합성에 있다. 또한 작품은 젊고 호기심 많은 딸의 열정에 사로잡힌 애정이 결핍된 중년 여성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번역자의 글 - 곽경희

이 시대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우리 어머니 시대의 그것과 비교해 과연 얼마나 달라 졌을까. 자신의 성공과 미래를 위해 모성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한 여인(안나), 그 여인의 단단한 아성을 깨고 참다운 사랑에로의 본능을 일깨우기 위해 25년만에 찾아온 한 딸(빌리)의 만남을 통해 작가 조안나 머레이 스미스는 새로운 여성성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려 한다. 억압, 종속, 굴레같은 상투적인 표현들을 피하면서도 작가는 60년대 사회의 가부장적이고 금욕적이었던 분위기의 희생물인 주인공 안나가 결국은 자신의 관념 속에 갇혀 더 큰 희생을 스스로에게 자초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유도하고 있다. 안나의 논리는 상당히 급진적이다. 그녀는 아이를 양육하는 것을 '여성적이고 본능적인' 일이 아닌 '사육자'의 역할로 빗대는가 하면, 남성의 이기심이 다음 세대로 전이될 통로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임신에 대한 꿈을 버리기로 했다고 고백한다. 언제나 원칙을 위해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그녀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꿈을 '어린 소녀용 사이비 종교'라 일축해버린다. 이렇듯 자기만의 틀 안에서 스스로 구축해 놓은 질서와 평온에 기대에 살던 안나는 자신이 지워버렸다고 믿은 과거로부터 솟아나온, 열정적이고 삶에 대한 희열에 이 가득 찬 빌리로부터 자기 전 존재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그 도전이 너무나 강력하고 확실해서 안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눈을 감아버릴 수도, 자신의 삶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부분을 삭제해 버릴 수도 없음을 깨닫게 되고 어쩔 수 없는 갈등과 분노에 휩싸인다. 그리고 마침내 둘 사이에 화합의 장이 마련될 때 안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최후의 선택에 대해 인색하지 않기로 한다. 작가는 이 극을 통해 극단적인 페미니즘의 단면을 보여주려 하기보다는 시대의 희생물로서 안나를 그리고, 그녀의 입장에 대해 긍정적이고 동정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다. <러브 차일드>는 이혼율이나 미혼모 출산율이 서양 어느 나라 못지않게 높은 호주 사회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접한다 해도 어쩌면 우리 현실에 조금은 생경하게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주제에 신랄함에도 불구하고 구성의 탄탄함과 밀도 있는 대사로 인해 초연작이 주는 생소함을 극복하고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대와 사랑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 작품을 계기로 보다 많은 호주 극이 소개되어 미지의 정서와 예술성을 우리 관객들이 폭 넓게 감상할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안나 머레이 스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