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섭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아이의 겨드랑에는 날개가 있었다. 아이의 부모가 그 비범함을 두려워해 죽이려 하자 아이는 유언으로 콩과 팥 닷 섬을 함께 묻어 달라고 청했다. 시간이 지난 후 관군이 찾아와 아이의 무덤을 파헤치자 무덤 안의 콩과 팥이 병졸들로 변하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아이는 부활 직전에 들켜서 실패하고 만다."
우리 나라에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아기장수 설화'의 줄거리다. 역사는 다른 세상을 꿈꾸다가 좌절했던 인물들과 사건들의 연속이다. 우리 현대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나라의 안위가 풍전등화와 같았던 20세기 후반에 서양사상과 문물을 들여와 나라를 부강 시키자는 개화파의 개혁정책이 수구파에게 짓밟혀 3일 천하로 끝난 갑신정변도 아기장수 설화의 데자뷰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는 개화파의 리더로 갑신정변을 이끌었던 김옥균과 그와 대척점에서 개혁을 저지하고 끝내는 김옥균을 암살까지 하는 홍종우의 삶을 여러 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책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등이 단발령보다 훨씬 이전에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입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들은 제국열강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급했고, 정체된 조선과 불화하며 다른 조선을 꿈꿨던 몽상가'로 묘사한다. 홍종우는 황국협회 주역인 수구파로 기억되지만 한국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고 파리 사교 무대에서 한복을 고집한 민족주의자였으며, 프랑스 체류시절의 경험으로 제국주의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실주의자로 표현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 두 사람을 제국주의 격랑에 휘말린 조선이 취할 수 있는 두 반응의 양극단에 서서 변혁을 시도했지만, 한쪽은 제국주의 일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어설픔으로, 다른 한쪽은 기득권 수구세력에 밀려 실패한 개혁가로 평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