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섭 '서찰을 전하는 아이'
한 줄의 역사 기록에서 시작된 이야기.
서찰을 전하는 열세 살 아이가 본 1894년 조선의 모습, 조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 편의 동화 같은 어른들의 이야기다.
1894년, 보부상의 아들인 소년은 열세 살이다.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장터를 떠돌아다닌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중요한 서찰을 전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전라도로 떠나게 된다. 아버지는 소년에게까지 서찰의 내용을 비밀로 한다. 다만 세상을 구하고,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중요한 서찰이라는 것만 알려준다. 그렇게 전라도로 향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된다. 고아가 된 소년은 갈 곳이 없었다. 결국, 소년은 아버지의 서찰을 혼자서 전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서찰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서찰 어디에도 수취인이 누구인지 적혀 있지 않았고, 내용 또한 모두 암호처럼 한자로 되어 있었다. 글을 모르는 소년은 포기하지 않고 서찰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소년은 그 길에서 1894년, 조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작품 소재는 1894년대 전면에 등장한 일본의 무력침략, 부패한 조선 관리들의 수탈에 조선 농민들이 마주친 민생의 위기를 동학(東學)으로 저항했던 농민혁명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의 순국 이야기다. 이 작품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시기에 보부상인 아버지를 따라 장터를 떠돌던 소년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세상을 바꿀 만큼 중요한 서찰을 전하는 임무를 맡게된 여정을 그리고 있다.
1894년 당시의 조선백성들은 ‘이중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었다. 안으로는 삼정문란(三政紊亂)이라 하여 지배층에 억압당하고 왜곡 당하면서 국가체제가 뿌리에서 흔들렸고, 밖으로는 일본의 침략 야욕에 굴복하는 조선의 운명을 맞서야 했던 피지배 민초들의 생명과 생업이 전면적으로 위기에 빠져들었다. 동학농민들은 도둑들로부터 생명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봉기하는 이른바 ‘민란의 시대’를 주도한다. 역사의 객체로만 취급 받아왔던 민중들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각성함으로써 역사의 주체로 일어선 것이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에서 소년은 열세 살이다. 소년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보부상의 아버지를 따라 장터를 떠돌아다닌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중요한 서찰을 전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전라도로 떠난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서찰의 내용을 비밀로 한다. 다만 서찰이 세상을 구하고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만 알려준다. 그렇게 전라도로 향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된다. 고아가 된 소년은 갈 곳이 없어지자 아버지의 서찰을 혼자서 전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서찰 어디에도 수취인이 없고 내용 또한 암호처럼 10자의 한자로 되어 있었다. 소년은 한글은 조금 알지만, 한자는 전혀 모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서찰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중요한 서찰이라는 아비의 말을 떠올리면서 편지의 글을 조금씩 나누어서 한자를 알 법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전라도길을 따라간다. 수중에는 아비의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이 조금 있다. 한 달 정도 숙식할 돈이다. 처음에는 길거리 양반이 두 글자를 가르쳐주는데 몇 냥을 받아 챙긴다. 그 글은 감탄사 ‘오호(嗚呼)’이다. 소년은 돈과 바꾼 글자를 잊을까 봐 “오호 오호”를 외치면서 걸어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년은 보부상의 아들답게 장사 셈을 하는데, 두 번째 글자를 배울 때부터 가격 흥정을 해서 조금 더 많은 글자를 더 낮은 금액으로 획득한다. 두 번째 글자는 ‘피노리(避老里)’ 이다. 글자를 알려주는 어른들이 혼자 남은 아이의 주머니까지 털어야 하는 장면에서는 어른들이 야속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소년은 돈을 지불하고 배웠기 때문에 글자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 중에서는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전국 장터에서 익힌 ‘춘천 샘밭 타령’, ‘문경 박달나무 타령’, ‘예산 새우젓 타령’, ‘장타령’, ‘뱃노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등의 민요를 신명나게 때로는 구성지게 부른다. 마치 마법처럼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말끔히 낫는다. 힘없는 조선에서 태어나 부정부패한 탐관오리들과 외세 휘둘리며 살아가는 백성들은 소년의 소리에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극 중 중간중간에 만난 등장인물들은 “아이야, 네 소리에 약이 들어있구나”를 건넨다. 서찰의 뜻을 알아차리기까지 소년은 보부상 길을 돈 대신 노래를 불러 글 값를 치르고, 앓는 이들의 건강 회복을 돕는 신비로운 경험까지 하며 나아간다. 모든 대가를 치르고 ‘경천매녹두(敬天賣綠豆)’를 알아낸 소년은 마침내 수수께끼 같은 서찰의 의미를 밝혀낸다. ‘오호피노리경천매녹두(嗚呼避老里敬天賣綠豆)’ 그것은 ‘슬프구나, 피노리에서 경천이 녹두를 판다’이다. 지금껏 아이는 녹두장군과 서찰을 연관시키지 못하다가 드디어 깨닫는다. 이 서찰이 녹두장군과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목숨을 걸고 서찰을 전하러 간다. 동학의 우두머리를 잡기 위해 현상금을 내걸고 있다는 절박해진 상황이지만 소년은 깊은 밤을 이용해 장군을 만나러 강을 건넌다.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한 동학농민군들의 주검을 목격하며 후퇴한 녹두장군을 찾아 내장산 백양사에 들렀다가 느닷없이 만나게 된다. 소년은 천신만고 끝에 녹두장군에게 김경천의 배신이 적힌 서찰을 전하였지만 오래지 않아 녹두장군은 김경천의 밀고로 붙잡히게 된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열세 살 아이가 본 1984년 조선의 모습을 묘사한다. 피범벅인 채로 붙들려 가는 녹두장군에게 소년은 피노리에 오면 안 된다고 서찰을 전하였는데 왜 잡혀 왔느냐고 울면서 항변한다. 소년에게 녹두장군은 “동지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을 것이며, 그렇게 해서 목숨을 구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며 지친 육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소년은 장군의 마지막 길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구성지게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