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정인(情人)'
최혁인, 서른여섯의 이혼남이다. 10살난 아들 동협과 함께 산다.
가끔 군인 22나, 관광객 8정도로 나오는 엑스트라 영화배우다.
이정인, 서른 둘 동협의 담임 선생님이다. 참하면서 헤픈 여자다.
혁인과 정인은 학부모면담을 하면서 첫눈에 반한다.
만난지 20일 만에 금반지 하나를 휙 던지며 청혼을 하는 혁인.
둘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다.
혁인은 집에서 가사를 돌보고 정인은 사회생활을 한다.
운전도 못하고, 못도 못 박는 혁인. 요리책에 써 있는 '갖은 양념'이 상표이름인 줄 아는 정인. 하지만 둘은 너무 행복하다. 혁인은 정인을 위해 김치 순두부찌개를 맛있게 끓일줄 알고, 정인은 매니큐어로 혁인의 손톱에 예쁜 꽃을 그릴 줄 안다.
그렇게 3년이 흐른다.
어느 겨울날 저녁, 혁인에게 배달된 편지 한통....
정인을 울리지 않으려는 혁인의 아픈 사랑. 그 사랑이 눈물겨워, 결국 울고 마는 정인.
깜깜한 어둠을 향해 가는 혁인과 정인의 그 먼 길...
동행할 수 없는 여행길을 아프게 배웅하는 여자와,
웃으며 떠나는 남자의 눈물. 빛. 사랑 이야기다.
2001년 얼아리 극단에서 윤영선 연출로 초연됨.
많은 관객들로부터 웃음과 눈물이 범벅된 극찬을 받았던 작품이다.
작가의 글
참 맑은 가을 아침이었는데, 운전수와 나, 둘 밖에 없는 13번 버스 우측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우연히 음악 듣다가 아주 잠깐 신문을 펼친 것뿐인데.. 하필, 그걸 봤을까. 누군가의 작별인사를….. "여보, 당신이 남은 인생에서 어떤 결정을 하든, 꼭 행복해야 해. 난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 결정을 존중할 거다.” -제르미 글릭; 세계무역센터 충돌 UA-93편 탑승 충돌직전 부인과의 마지막 작별인사, 그 작별인사 때문에 그 여자가 생각났다. ‘그 여자 살아 있을까? 살아 있겠지’ 하고. 3달이었나 4달이었다. 난 그 여자와 그 남자의 함께 살았다. 그들과 사는 내내 거짓말만 늘었다.
‘안 울어요.’ ‘안 아파요’ ‘안 미워요.’ ‘그러니까 헤어져요’ ‘따뜻하게..’ 거짓말, 따뜻한 헤어짐이라니...내가 그들을 떠났는지, 그들이 날 떠났는지...
참 맑은 가을, 혹은 겨울, 어쩌면 봄날 아침. 운전수와 나, 둘 밖에 없는 13번 버스 우측 창가에 앉아 그 여자 이야길 들었으면 좋겠다. 오래된 풍문처럼 살아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가슴이 뭉클 이어졌으면….
그걸 핑계삼아 많이 울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