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란 헐리 '마우스피스'
극작가 리비는 솔즈베리 언덕의 절벽에 서서 떨어질 때의 기분을 상상한다. 같은 장소에서 그림을 그리던 데클란은 리비가 자살하려는 줄 알고 구해낸다. 데클란은 책임져야할 사람이 없냐며 이기적인 짓이라고 힐난한 뒤 늦게 귀가하면 게리에게 죽는다며 불안해한다. 그 와중에 리비는 데클란이 그리던 그림에 관심을 보이고, 데클란은 갖고 싶으면 가지라며 건네준 뒤 서둘러 자리를 떠난다. 집에 돌아온 리비는 데클란의 그림을 꺼내 본다. 도시 뒤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입과, 손을 뻗은 여동생 시안을 그린 그림이다.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 리비는 데클란의 그림에서 깊은 감명과 새로운 의지를 얻는다. 리비는 다시 솔즈베리 언덕을 찾아가 데클란을 만난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들려준 다음,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와 색연필 선물을 준다. 데클란은 자신만의 공간을 침범한 리비에게 화를 냈지만, 예술 이야기에 마음이 동해 결국 연락한다. 리비는 데클란이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으며, 함께 현대미술관에 가자고 제안한다. 데클란은 이러한 리비의 태도가 시혜적이라고 느껴 반감을 표하면서도 그녀의 풍부한 예술 지식에는 호기심을 가진다. 리비는 스스로를 '극작가였던 사람' 이라고 소개한 후 주목받던 신예에서 퇴물로 전락하기까지의 인생사를 들려준다.
다소나마 마음을 연 데클란은 리비의 제안을 승낙한다. 데클란은 미술관을 구경하고 무척 행복해한다. 그리고 리비에게 자신의 불안장애와 가난, 사랑하는 동생 시안 등에 대해 말해준다. 리비는 그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고, 데클란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생겼음에 기뻐한다.
리비와 데클란은 점점 가까워진다. 리비는 연극의 아이디어를 위해 데클란에게 이야기를 더 들려 달라고 부탁하고, 데클란의 말을 고스란히 연극 대사로 옮겨 쓴다. 이후 데클란의 이야기는 데클란역 배우가 1인 다역을 소화하며 독백과 연기로 진행된다. 데클란은 게리의 가정폭력 속에서 시안을 보살피며 살아간다. '마우스피스'라는 회심의 작품을 완성하여 벽에 붙여 두는데, 데클란이 그림 그리는 것을 못마땅해 했던 게리와 그 일로 심하게 싸운다.
데클란은 리비와 함께하며 이러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는다. 데클란은 목을 매어 자살한 아버지에 대해 말해주며 자신은 절대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데클란이 처음으로 꺼낸 아버지 이야기에 리비는 몰래 녹음기를 꺼내 동의 없이 녹음을 한다. 녹음했느냐고 묻는 데클란에게 리비는 부인하고, 데클란은 이를 선뜻 믿어준다.
리비의 직업에 대해 궁금해하는 데클란을 위해 두 사람은 함께 극장에 가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데클란의 반항에 감정이 상한 게리가 집을 떠나고 엄마가 자신을 원망하자, 데클란은 절망에 빠져 약속에 나가지 않는다. 대신 리비에게 자신의 집에 와 달라고 부탁한다. 리비는 자책하는 데클란을 위로하고 두 사람은 충동적으로 키스한다. 관계를 가지기 직전 리비는 현실을 자각하고 급히 헤어진다. 그리고 초고를 완성한 후에, 데클란을 만나 우리는 예술적인 동업자이자 친구라고 확실히 선을 긋는다. 데클란은 마지못해 납득하고 리비가 보여준 초고를 읽어보는데…. 결말이 자신의 자살임을 알게 되자 격분한다. 작품에 맞는 결말을 쓴 것뿐이라고 설명하는 리비에게 데클란은 동의를 철회하겠다며 욕을 퍼붓는다.
이후 리비는 데클란과 헤어져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 데클란이 마지막으로 '다들 사라져버렸다' 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너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라며 다른 연락처들만 몇 개 알려주고 번호까지 바꿔버린다. 엄마가 시안을 데리고 연락처나 주소를 남기지 않은 채 게리에게 가버렸기 때문에 데클란은 홀로 남는다. 시안의 전화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리비의 연극 <마우스피스>의 개막 소식을 접한다.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극장으로 찾아가지만, 안 그래도 좌절해 있던 데클란을 무너뜨리는 일들만 연이어 벌어진다. 돈이 없어 곤란해 하다가 직원에게 동정을 받아가며 간신히 입장권을 산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철저히 이용한 공연을 보며 환멸을 느낀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사실 리비도 극도로 불안한 상태였지만 데클란은 리비가 행복하고 안정되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데클란은 관객과의 대화 도중 난입해 이것이 자신의 이야기임을 밝히고 리비의 기만을 비난한다. 그리고 커터칼로 리비를 위협하며 이야기의 대가로 시안과 함께 사는 데 필요한 9천 파운드를 요구한다. 리비는 데클란의 요구를 거부하고 두 사람의 충돌은 절정에 이른다. 이후 리비와 데클란의 독백이 교차되며 각자 다른 결말을 들려주기 때문에, 둘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관객의 해석에 맡겨진다. 리비의 이야기에서 데클란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커터칼로 목을 그어 자살한다. 반면 데클란의 이야기에서 그는 솔즈베리 언덕으로 달려가 그림을 찢어 날려버리며, 다음에 일어날 일은 당신들이 아닌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삶을 대변한다는 소재로 예술의 창작윤리와 진정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직품이다. <마우스피스>는 한때 촉망 받는 작가였지만 슬럼프에 갇혀버린 중년작가 ‘리비’와 예술적 재능을 가졌지만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이를 펼칠 수 없었던 ‘데클란’의 만남을 그린 작품으로 시대를 꿰뚫는 주제로 ‘예술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자연스럽게 요하는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입을 대는 부분’을 칭하는 용어이자 ‘대변자’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제목의 <마우스피스>는 2018년 영국 에든버러 초연 당시 사회적 불평등과 예술적 책임을 첨예하게 그려내며 ‘우리 시대의 정치극’으로 주목 받았다.
‘이야기의 주인은 누구인가?’ ‘데클란’의 목소리로 시작되어 ‘리비’의 글로 완성되어 가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한다. 관객은 ‘리비’가 쓴 작품을 보는 동시에 그 작품의 소재로 이용된 ‘데클란’의 실제 삶을 마주한다.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메타씨어터’ 형식을 통해 관객은 연극을 ‘본다’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 극장으로 대변되는 예술의 진정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데클란’의 삶과 목소리를 세상에 전한 ‘리비’는 대중에게 ‘궁핍한 세대를 위한 대변인(Mouthpiece)’이라는 평을 받지만, 역설적으로 ‘데클란’은 가정과 극장 그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한다. 작품은 ‘데클란’과 ‘리비’의 계층차를 통해 문화 향유의 격차를 보여주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외 계층의 존재를 담아낸다. <마우스피스>는 관객에게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옳은지, 나아가 예술을 다룰 권리는 누구에게 있으며 그 권리는 누가 부여하는지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