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안정민 '초록빛 물고기'

clint 2022. 12. 19. 11:13

 

 

신비, 수민, 지선은 밤마다 도깨비 굴로 간다. 그곳에서 신나게 소리 지르며 논다. 도깨비가 되면 신비는 마음껏 수민을 사랑할 수 있다. 수민은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를 고래고래 부를 수 있다. 지선은 굴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된다. 그들은 힘을 모아 재개발로부터 신비의 굴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제는 역부족이다. 도깨비들에게 공포를 느낀 인간들은 얼른 재개발을 추진해서 굴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인간들을 쫓기 위한 마지막 카드로 신비, 수민, 지선은 도깨비 굿을 한다. 그들은 과연 아지트를 지킬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친구들, 정말 도깨비일까?

 

 

작가의 말 - 안정민

이것은 도깨비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도깨비가 '되기로' 결정한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큰 사람, 개성을 기꺼이 여기는 사람, '사람다운 사람'은 인간세계에서 그 사랑의 맨살을 깎아야 했죠. 깎여나가는 맨살을 부여잡고 포기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신비는 자기답게 살기로 다짐하고 자기다움을 지키기 위해 굴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가장 자기다운 인간이 도깨비가 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위대함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람의 아름다운 예술성과 찬란한 개인성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출의 글 - 이래은

도깨비짓 좀 그만해!” 제가 십대였을 때, 내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한밤에 혼자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뭔가를 쓰거나, 꼬물짝 만들고 있으면, 갑작스레 방문을 열어 재끼면서 말이죠. 왜 그걸 하필 도깨비짓이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도대체 왜 그만하라고 한 걸까요. 매일 밤 도깨비짓을 하는 십대였던 제가, 이번 겨울, 안정민 작가가 쓴 도깨비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본을 읽고서 나만 도깨비짓을 한 게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고, 도깨비짓을 그만 두라는 대본 속 목소리에 마음 아팠습니다.

<초록빛 목소리>는 도깨비짓을 하는 다섯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의 도깨비짓은 무엇인가요? 안정민 작가의 희곡 <초록빛 목소리>를 함께 듣고서 여러분과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초록빛 물고기>가 왜 '청소년극'일까. 청소년 시기는 정체성 대 정체성이라는 불안정 상태에서 정체성 모색의 과정을 겪는 시기로 자율성과 책임성이 있는 권리와 참여가 강조된다. 아동기보다는 추상적 논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이 향상되었지만 완성된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청소년극에서는 청소년(youth)만의 문화적 차원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하여야 한다. 청소년이 등장한다고 해서 혹은 청소년의 이야기로 잠깐 전개된다고 해서 '청소년극' 이라는 타이틀로 개발될 수는 없다. 청소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이 작품은 촘촘하고 개인성 있게 잘 연결된 13장의 희곡이지만 "막 개발된 희곡의 신선함과 가능성에 흠뻑 빠지는 경험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맛볼 수 없었다. 배리어 프리 방식으로 진행한 부분은 훌륭했다. 배리어 프리는 약자들도 보듬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운동이다. 허나 이 낭독공연이 청소년들의 눈높이와 호흡으로 배리어 프리 운동을 이해시키고 희곡이 가진 의미를 잘 표출하고 있는지 상당히 의문스럽다. 무대, 조명, 음향, 의상, 음악이 보다 조화로워진 무대공연의 감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몇몇 배우는 입체낭독공연에서 '입체에 방점을 두어 연기하는 바람에 대사를 놓쳐 진행 흐름을 깨트리기도 했으며, 주객이 전도된 무대 양산은 관객을 희곡에 집중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