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유원지'

유원지의 풍경을 서로 상반된 성격의 구성으로서 짜임새 있게 엮은 산뜻한 小品이다.
남편의 모델이 되기 싫어 달아나버린 아내,
피크닉이 싫어 부부끼리 유원지에 왔다가 아내를 홀로 두고 술 마시러 가버린 남편...
이래서 아내가 없어진 남편(화가)과 남편이 사라진 아내(시인)의 두 男女가 서로 얘기를 나누며
결혼생활에 이해할 수 없는 점 등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모델이 싫다고 가버린 아내가 와서 보니 화폭에 있는 자기가 아닌 여자가 그려져 있자
칼로 찢어버리고 남편을 끌고 간다.
한편 술 마시러 갔던 남편이 돌아와 보니 자기 아내가 그려진 그림이 찢겨져 있었다.
다행히 옆에 있던 청춘남녀 한쌍이 자기들이 그린 거라고 해서 위기를 모면시켜주는 짤막한 얘기이다.
부부란 생활의 이해가 없어도 살 수밖에 없는 굴레 속에서 형식적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는
인생의 부조리한 단면을 재치있게 표현하는 작품이다.
전혀 시대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 작품은 1949년 작이다.

김진수(金鎭壽.1909.3.3∼1966.8.31)
극작가ㆍ연극이론가. 호 춘담(春潭). 평안남도 중화(中和) 출생. 1935년 일본 릿쿄(立敎)대학 영문과 졸업. 대학 시절에 이미 도쿄학생예술좌(東京學生藝術座)에 참가했고, 졸업 직후인 1936년에는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가 공모한 현상희곡에 장막극 <길>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단했다.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극작에 전념했으나 <종달새>를 발표한 정도이다. 은진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있다가, 1947년에 월남하여 경기여자중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유원지> <코스모스> <불더미 속에서> 등을 발표했다. 6ㆍ25전쟁 때에는 종군작가로 활약하면서 <이 몸 조국에 바치리> 등을 발표했는데 이때 가장 왕성하게 극작을 했다. 휴전 이후 신흥대학(新興大學. 지금의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유일한 작품집인 <김진수희곡선집>을 펴냈다. 그는 극작 외에도 희곡작법ㆍ희곡론 등 여러 편의 연극론과 연극비평에도 손을 대었다. 비교적 과작(寡作)의 작가였던 그는 30여 년에 걸쳐서 아동극 7편을 합쳐서 겨우 21편의 희곡을 남겼는데, 그중 성인극 14편 중에서도 장막물은 6편에 불과하다.
그는 민족 항일기로부터 시작해서 광복 직후의 혼란과 6ㆍ25사변을 겪는 동안의 사회변동을 작품 속에 투영했다. 그가 그 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다른 점은 시대고(時代苦)와 윤리적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 언제나 우회적으로 다룬 점이다. 소박한 인정의 세계를 다룬 작품경향으로 알려졌다. 그는 민족항일기로부터 시작해서 광복 직후의 혼란과 6·25사변을 겪는 동안의 사회변동을 작품 속에 투영했다.
한국 자유문협 희곡분과위원장, 한국연극협회 창작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희곡】<길>(조광.1937.4) <종달새>(아동극) <향연(饗宴)>(조광.1938.11) <코스모스>(장막극.백민.1949.1) <유원지(遊園地)>(단막극.백민.1950.1) <바람을 잡아먹은 아이들>(아동극.1952) <바다의 시(詩)>(펜.1955.12) <청춘>(아동극 5막 6장. 자유문학. 1956.12) <아들들>(사조.1958.11) <제국일본(帝國日本)의 마지막 날>(자유문학. 1959.8)
【희곡집】<김진수 희곡선집>(성문각.1959)
【평론】<작금(昨今) 연극계(演劇界)의 인상(印象)>(백민.1948.1) <연극운동의 당면과제>(大潮.1948.8) <연극담희(演劇談戱)>(전선문학.1952.4) <극장(劇場)의 독재적 모리(謀利)>(새벽.1955.3) <연극운동자 대망(待望)>(새벽.1955.5) <대학연극의 지행할 길>(고황.1957.10) <작가의 발언>(자유문학.1958.2) <학생극에 대하여>(자유문학.1958.8) <한국희곡의 불모성(不毛性)>(자유문학.19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