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우 '고향마을'
안산의 고향마을로 영구 이주한 세 명의 할머니, 미옥, 순영, 인숙은 국회의원인 박상구가 처음엔 일본, 나중엔 소련에 붙어 자신들과 동포들을 착취하는 데에 앞장섰던 조선인 반장이었다고 확신한다. 박 의원을 납치, 감금한 그녀들은 고문을 해서라도 그에게서 자백을 받아내려 한다.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그가 과거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
그러는 사이, 이 상황을 '헌법기관에 대한 테러'로 간주한 경찰 지휘부는 경찰특공대의 진입을 지시한다. 형사들의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몰래 구한 러시아제 권총을 쏘며 투항을 거부하는 할머니들. 결국 실탄을 장착한 경찰특공대가 할머니들이 박 의원을 감금하고 농성 중인 아파트로 진입하는데....
‘고향마을’은 우리들에게 잊혀져버린 사할린 동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고향마을’은 동포들이 사할린에서 영구귀국할 때 보금자리로 내어준 안산의 아파트 단지 이름이다. 이를 배경으로 세 명의 사할린 동포 할머니들이 저지르는 한바탕의 인질극은 유쾌하지만, 고향 땅을 밟고도 웃을 수 없는 이들의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작가의 글 - 신성우
'용서한다'는 말의 의미를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용서하면 더 이상 화가 나지 않는 건지, 그래서 악인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도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반드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못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남은 건 응징 혹은 복수뿐인가요? 저는 쉽게 답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고민은 '과거사에 대한 용서'라는 단어 앞에 설 때도 마찬가지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악행에 대해 분노하고 단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에 대해 고민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이 증오로 가득 찬 채 굳어버리는 것은 바라지 않기 때문이며, '분노와 증오'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을 피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용서'에 대한 고민을 통해 '화해'가 가능해지고, 그 위에서 '새로운 관계의 희망이 피어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