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우진 '정오'

clint 2022. 12. 5. 20:07

 

 

희곡 <정오>는 작품의 배경으로 공일(空日)과 공원(公園)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단순하지 않다. 근대적 시간에 대한 인식과 함께 수용된 공일(空日)과 근대적 공간에 대한 인식과 함께 수용된 공원(公園), 근대의 산물로서 조선에 도입된 것이다. 김우진은 바로 이와 같이 근대적 산물로 도입된 공일(空日)과 공원(公園)이 오용(誤用)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우진은 하오리와 굴네수염을 통해 구시대적 인습의 부정성과 순사를 통해 근대적 제도의 부정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김우진은 이러한 그의 인식을 단순히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희극(喜劇)이라는 방법을 통해 하오리와 굴네수염 그리고 순사의 속성을 비웃음으로써 그의 탈식민적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근대가 마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던 당시, 근대의 제도가 가진 부정성과 근대 수용에 있어 나타나는 구시대적 인습의 부정성을 드러냄으로써 근대 수용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였다. <정오>가 짧은 습작 정도의 작품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그의 이러한 남다른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서연호는 <정오>일련의 잡다한 사건과 특이한 분위기를 소묘형식으로 엮은 이 작품은 플롯보다는 상황이 더 중시된 희곡으로” “기존세대나 사회현실의 우스꽝스러운 모순을 비판하는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오>에 대해 양승국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철모르는학생들의 빈정거림을 통하여 표출해 내고 있는 점은 은연중 작가 자신의 현실 인식을 드러내 주고 있는 점이어서 흥미를 끈다고 평가한다. 홍창수는 이 작품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의 갈등뿐만이 아니라, 고리대급업자인 일인과 그에게 기생하는 친일조선인에 대한 비판 및 그 비판을 통해 정당한 노동으로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이 갖는 건강성을 역설적으로 암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은경은 흡연문제로 인한

신구세대의 갈등과 학생ㆍ모군으로 대표되는 민족 세력과 굴레ㆍ하오리로 대변되는 일제세력과의 대립이 중심 사건이 된다고 보고 있다. 김미라는 <정오>가 제목을 통해 주제를 상징하면서, “공간적 배경은 어느 대도시의 공원으로 사회의 일상성과는 동떨어진 휴식과 나태의 공간이며 이러한 공간 설정은 지배계층인 나태한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 첨예화된 갈등이 아니라 공원이라는 무대 공간처럼 한가하고 느슨한 갈등임을 암시한다고 논의한다.

기존 논의들을 보면, 대체로 상황이 중심을 이루는 <정오>, 구세대와 신세대 또는 일제와 민족 세력 간의 갈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우스꽝스러운모습이나 빈정거림으로 현실을 그리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작품의 내용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고 얻어낸 경향이 크다. 오히려 작품을 통해 작가의 현실 인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갈등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의 상관관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우진이 <정오>에서 택한 희극순수한 지성에 호소하기 때문에, 대상의 특징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 그 웃음의 대상이 누구이며, 그들의 어떠한 점이 웃음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정오>는 갈등하는 대상을 희극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려낸다. 그리고 이는 두드러진 상황 속에서 웃음을 사는 대상의 속성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이 상황은 대상이 놓인 시공간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작품에서 그려지는 이 시공간은 우리에게 근대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것들이다. 결국, <정오>근대라는 문명이 도입된

당시 조선과 그 속의 인물들을 김우진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는 작품이다. 덧붙여, ‘희극이라는 방식을 통해 웃음의 대상과 그 웃음의 출발이 된 상황을 분석한다면, 그것들의 부정적인 실체를 인식하고 있었던 김우진의 탈식민적 의식의 단면도 함께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순사는 근엄한 척 자리를 떠났지만, 그의 위엄이라는 것은 그가 그 장소에 존재할 때만 유효한 것이다. 순사가 없음을 인지하고 다시 같은 자리에 가서 눕는 모군은 마치 근엄한 척 일장 연설을 했던 순사를 비웃는 듯하다이상에서 보듯, 학생들과 모군에 의해 하오리와 굴네수염 그리고 순사는 웃음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웃음은 김우진이 <정오>라는 작품의 제목 앞에 희극(喜劇)’ 이라는 장르를 명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저자 : 김우진金祐鎭(1897.09.19.~1926.08.04 ) 극작가·연극이론가 ·연극인

전남 장성 출생. 호는 초성(焦星수산(水山).

필명으로 소춘(小春), 정로생(正路生)과 함께 S. K라는 영어 이니셜도 사용하였다.

목포공립심상고등소학교, 일본 구마모토 현립(態本縣立) 농업학교를 졸업. 1920년 와세다(早稻田)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0년 최초의 근대극 단체 극예술협회를 조직. 1921년 동우회 순회연극단을 만들어 연출가로서 활약했다. 1924년 이후 정오》 《산돼지》 《이영녀》 《두덕이 시인의 환멸》 《난파5편의 뛰어난 희곡작품을 발표했다.

같은 시기에 시· 희곡창작· 평론에 몰두해 48편의 시와 5편의 희곡, 20여 편의 평론을 썼다.

한국 최초로 유진 오닐, 피란델로, 차페크 등 극작가를 소개했으며 최초로 표현주의 희곡도 썼다. 19268월 가수 윤심덕(尹心悳)과 현해탄에서 동반자살 했다.

김우진은 해박한 식견과 선구적 비평안을 가지고 당대 연극계와 문단에 탁월한 이론을 제시한 평론가이며, 최초로 신극 운동을 일으킨 연극운동가로 평가된다. 특히 희곡은 주로 가정과 사회의 인습에 의해 불행한 결말을 맞는 여성 혹은 예술가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표현주의극의 요소를 도입하여 새로운 극 형식의 창출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