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구운몽'
1장 연화도량, 돌다리. 연화도량의 큰스님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가 시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돌다리에서 예불을 마치고 돌아가는 용궁의 팔선녀들과 만나 희롱한다. 사라지지 않는 팔선녀로 향한 욕망으로 번민하는 성진이를 윤희의 업보를 거쳐 보라며 지옥으로 보내는 육관대사.
2장 풍도옥(지옥) : 염라대왕 앞에 끌려온 성진과 팔선녀.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그리 크지 않다고 애걸하는 팔선녀와 성진이 인간세계로 내려보내는 염라대왕, 아홉 구비 구름을 다 돌고 깨쳐야만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운명을 안고(수도승 성진이 깨쳐야 하는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는 성진)
3장 어미의 집 : 아비없는 유복자로 태어난 양소유(성진) 남아로 세상에 한 번 태어났으니 부귀공명을 이루어 대장부의 높은 기상을 세상에 펼쳐보겠다며 모친과 작별하고 과거 길에 오른다.
4장 진채봉의 누각 : 남전산 상상봉 길에서 우연히 만난 미소년(적백란)과 동행하고자 하나 서로 갈 길이 다르다며 둘은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늘어진 버들가지를 보며 풍류가 돋아 시를 읊는 소유에게 반한 진채봉이 만약 아직 미혼이라면 한번 만나보자고 청한다. 기왕에 맺음 연분이라면 한시가 급하니 이 밤이 어떠냐는 소유를 방으로 들게 하는 진채봉 그날 밤 역적이 일으킨 난리 때문에 둘은 헤어진다. 남전산으로 피한 성진은 부친의 친구였다는 도사로부터 음률을 익히고 악기를 받아들고 진채봉 집을 다시 찾아온다. 폐허가 된 진재봉의 집에서 소식을 알 수 없는 그녀를 그리며 꼭 다시 만나리라 다짐하는 소유.
5장 낙양의 풍류정 : 문물이 번성한 도시 낙양에 다다른 소유가 낙양에서 이름난 기생 계섬월과 한량들이 즐기는 시모임이 끼어든다. 자기들이 쓴 시 가운데 으뜸을 정하여 그 주인과 하룻밤 인연을 맺자는 한량들의 제외를 허락한 계섬월은 소유의 시를 노래한다. 계섬월과 꿈같이 달콤한 하룻밤을 지새운 소유 앞에 미소년 백란이 나타나 앞으로 동행하며 돕겠다고 나선다. 둘을 배웅하는 계섬월
6장 정사도의 집 : 나라의 수도 장안, 장안에서 제일가는 규수가 정사도의 외동딸 정경패란 소문을 들은 소유가 여자 악공으로 가장해 정사도 집에 들어간다. 거문고를 타며 정경제의 미모와 재색을 엿보던 소유가 본색을 드러내며 청혼한다. 소유의 늠름한 패기와 재주를 높이 산 정사도는 과거만 급제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다. 과거에 장원 급제한 소유는 혼례를 치르기 전까지 정사도의 집 별당에 기거하게 된다. 정경패의 몸종 가춘운이 선녀와 귀신으로 가장하여 소유의 잠자리에 찾아들어 골탕 먹이면서 남녀의 정분을 쌓는다. 모든 것이 쓸쓸히 지내는 소유를 위해 정경패가 일부러 꾸민 짓임이 밝혀지고 소유는 앞으로 가춘운과 더불어 자기의 배필이 되겠다는 정경패의 뜻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7장 궁궐 : 한림학사 양소유가 부는 피리소리에 반한 난양공주가 그와 혼인하겠다고 태후에게 떼를 쓴다. 황실의 부마가 될 것을 권유하는 황제에게 이미 정경패와 혼인을 하였으니 난양공주와의 청혼을 거둬 달라는 상소를 올리는 소유, 태후의 노여움으로 옥에 갇힌 죄수가 된 소유를 구하고자 궁녀가 된 진채봉이 계책을 마련하여 태후를 설득한다.
때마침 변방의 오랑캐들이 일어나 황실과 나라를 위협하나 이를 막아 큰 공을 세우라며 소유에게 대장군의 직책을 내리는 황제, 대장군이 된 소유는 군사 삼만을 거느리고 외적을 쳐부수러 진군한다.
8장 전쟁터의 누각 : 적장이 보낸 자객, 여검객 심요연, 양장군의 장부다운 기개에 반해 암살을 포기하고 한 여인으로 자기를 거두어 달라고 청한다. 심연으로부터 알아낸 비책으로 적과 싸워 승리하는 대장군 양소유.
9장 반사곡, 용궁 : 적과 싸워 이기고 돌아가는 길에 반사곡에 갖힌 소유와 군사들 독수를 마시고 신음하는 군사들에게 먹일 샘물을 구하고자 치성드리던 소유는 꿈결에 용궁으로 들어간다. 대장군을 맞이하는 남해의 용궁부인과 백파, 사해바다를 더럽히는 피어들을 물리쳐 달라는 이들의 청을 수락하면서 용궁선녀 백파와 인연을 맺는 소유, 때마침 나타난 괴어들을 물리치던 소유는 꿈을 깨고 그 자리에 샘을 파게 하여 군사들의 기갈을 풀게한다. 10장 계섬월의 방 : 황궁으로 개선하던 길에 들른 계섬월의 방. 섬월과의 단꿈에서 눈을 뜬 소유 앞에 앉아 있는 하북의 명기 적경홍, 여태껏 소유를 따라다니며 돕던 적백란의 본 모습임이 밝혀진다. 뜻맞는 사내대장부가 나타나면 그를 도와 입신양명케 하고 낭군으로 섬기고자 소꿉동무 계성원과 약조했다는 그간의 사정을 밝히는 적경홍. 계성원과 적경홍 두 명 모두가 자기의 사랑임에 흡족해하는 소유
11장 궁궐 :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양소유에게 좌부인 영양공주(정경패) 우부인 난양공주를 맞아 온 나라와 궁궐이 이를 기뻐하며 경축한다. 그동안 연분을 맺었던 진채봉, 계섬월, 적경홍, 가춘운, 심요연, 백능과가 나타나 기쁨을 나눈다. 대승상 양소유는 두 부인과 여섯 첩을 거느리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게 된다.
12장 취미궁의 후원 : 수십 년이 흐른 뒤 늙은 양소유는 평생의 모든 일이 흡족하건만 다가올 죽음만이 원통하다며 술잔을 기울인다. 육관대사가 나타나 아직 봄 꿈을 깨지 못했다고 책망한다. 이것이 꿈이라면 꿈 밖의 나는 무엇이냐고 묻는 소유를 꿈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육관대사
13장 연화도량 : 여덟 미인들과 누리던 세상의 온갖 풍류 영화가 하룻밤 꿈이었다는 걸 깨닫는 수도승 성진. 꿈속의 양소유와 지금의 성진이 중에 어느 것이 참이며 허망한 꿈이냐고 묻는 대사의 물음에 모두가 티끌이며 꿈도 없고 나도 없는 절대 공(空)의 세계만 있다고 답하는 성진, 대사는 성진에게 외법을 전하며 이로써 중생을 깨우치라 하고 사라진다. 성진은 자기와 같은 수도승이 된 팔선녀와 함께 끝없는 구도의 노래를 부른다. 이윽고 이들도 모두 사라진다.
작가의 글 - 문정희
이 땅에 태어나 모국어로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또 국문학도로서 <구운몽>을 극화하는 작업은 가슴 벅찬 일이었다. <구운몽>은 일찍이 게일박사에 의해 영역되어 유럽에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명실공히 우리 문학사의 최고의 고전이라 할 작품이다. 우리의 고전이라고 하면 흔히 <춘향전>이나 <심청전> <흥부전>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이야말로 주제나 구성 어느면으로 보아도 우리의 고대소설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작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숙종 15년 민비 폐출 사건에 관련되어 남해로 귀양 가서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썼다는 제작 동기도 아름답거니와 전생과 이생, 꿈과 현실, 혹은 현실과 꿈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주제를 표출해내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감탄에 비해 이 소설을 오늘날의 관객을 위한 무대에 극을 통해 형상화하는 작업은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학계의 쟁점이 되어오기도 했던 원전의 문제라든가, 중국적인 배경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주제에 대한 끝없는 논란도 곤혹스러웠고, 더구나 여성의 자아와 개성이 극도로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 여덟 명의 여자를 어떻게 한 남자에게 자연스럽게 등장시키고 어우러지게 하느냐 하는 문제는 크고도 높은 벽이었다. 극은 고전에 바탕을 둔 패러디가 생명이라는 말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면서도 좀더 세련되고 새로운 것을 어떻게 첨가하는가 하는 문제 또한 내내 나를 갈등하게 했다. 팔선녀가 주인공 성진이 도에 이르는 여덟 계단이었듯이 이 모두가 오히려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좋은 계단이었다고 생각한다.